신판 주말의명화
[신판주말의명화]나는 파리다
SS 라자몰리, 2012
영화가 시작되기 전, 우린 코 위에 필름 릴을 올려놓은 멧돼지가 검푸른 바닷물에서 솟아오르는 이미지를 접한다. 제작사 ‘바라히 찰라나 치트람’의 로고 필름이다. 이때 이미 짐작했어야 했다. <나는 파리다>는 범상치 않은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오버’한다. 최근 <바후발리: 더 비기닝>(2015)으로 인도 박스오피스를 휩쓸었고 한국에도 알려진 S.S 라자몰리 감독이 2012년에 만든 이 영화는 ‘괴작’이라고 하기엔 보편적이고, ‘졸작’이라고 하기엔 상업적인 미덕이 상당하며, ‘걸작’이라고 하기엔 너무 노골적이다. 콘셉트 하나로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나가는 ‘뚝심작’이랄까? 코드가 맞는 관객만 조금 확보되면 충분히 후세에 컬트로 추앙받을 만한 영화다.

참신하면서도 충격적인 로고 필름이 지나가면 영화가 시작된다. 무지 화면 위로 아빠와 딸의 대화가 오간다. 딸은 잠자기 전에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고, 아빠는 귀찮아한다. “거 참, 파리처럼 앵앵거리네. 가만있자… 옛날 옛날에 파리 한 마리가 살았어. 그런데 파리 주변엔 악당도 살고 있었지.” <나는 파리다>는 아빠가 딸에게 해주는 ‘베드 타임 스토리’다. 하지만 따뜻한 동화 같은 걸 기대해선 안 된다.
첫 신부터 영화는 우리의 기대를 산산조각낸다. 한 남자가 클레이 사격을 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수딥(키차 수디파). 아빠가 말했던 ‘파리 주변의 악당’이다. 그가 등장한 첫 신부터 관객들은 견뎌야 한다. 라자몰리 감독의 악취미인지,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방식인지, 이 배우 특유의 향기인지, 인도 영화의 전반적인 관습인지 알 수 없지만, 영화는 ‘느끼함’의 극단을 보여준다. 중년 관객이라면 오래전 어느 개그 프로에 나왔던 ‘리마리오’라는 ‘느끼남’을 기억하실 거다. 놀라지 마시라. 수딥은 리마리오를 능가한다.

수딥은 근처에서 클레이 사격을 하는 칼라(함사 난디니)라는 글래머러스한 미녀에게 다가간다. 처음 보는 여성인 듯한데… 그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몸을 밀착하고 클레이 사격을 교습해준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맞다. 수딥은 악당이자, 그 어떤 여자도 무너트릴 수 있다는 자기 확신으로 살아가는 녀석이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사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여자가 먼저 도발한다. “여기 매일 오세요?” 남자, 기다렸다는 듯 받아친다. “오길 원해요?” 여자, 순식간에 진도를 나간다. “몇 시에?” 남자, 결정타를 날린다. “당신이 올 때.” 단 네 줄의 대사로, 시작한 지 5분도 안 된 영화는 관객을 강력하게 빨아들인다. 그리고 조금은 두려워진다. 과연 이 거대한 아우라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지만 당신은 아직 다음 신을 보지 않았다.
장면이 바뀌면 한 여성이 조심스레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다. 작은 세공품을 만드는 ‘마이크로아트’다. 그녀의 이름은 빈두(사만다 루스 프랍후). 이때 갑자기 정전이 된다. 그 모습을 길 건넛집 옥상의 나니(나니)가 바라본다. 나니는 2년째 빈두를 따라다니는 짝사랑의 주인공. 수딥 못지않게 느끼한 녀석이다. 정전이 그에겐 기회다. 재빨리 위성 접시에 은박지를 붙이고 그 위에 플래시 빛을 비추어 발광체를 만드는 나니. 그는 서서히 접시를 빈두의 창문 쪽으로 돌린다. 세상이 어둠에 잠기더라도 나만은 당신의 한 줄기 빛이 되겠다는 순애보의 행동이다. 낭만적이다. 마음을 표시하진 않지만, 빈두도 싫은 눈치는 아니다. 이후 둘은 결국 연인이 된다.

<나는 파리다>는, 궁금해 미칠 것 같은 제목을 뒤로 한 채, 일단 남자 캐릭터들의 과한 매력으로 시작한다. 정말 이 영화의 초반부는, 관객을 기어이 토하게 만들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쉴 새 없이 느끼하다. 모든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돈 많은 악당 수딥. 폭죽 만드는 일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순애보의 청년 나니. NGO에서 활동하는 아름다운 여인 빈두. 빈두는 기부금을 받기 위해 수딥을 찾아가고, 흑심을 품은 수딥이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이때 빈두와 나니 사이의 미묘한 기류가 수딥에게 감지되면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이런 관계를 해결하는 악당의 방법은 정해져 있다. 상대편 남자를 제거하는 것. 나니는 그렇게 목숨을 잃는다. 영화는 급변한다.
<나는 파리다>는 여기서부터 제목에 충실해지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죽는 순간, 나니의 억울한 영혼은 마침 근처에 있던 파리 알로 들어간다. 정말 놀라운 설정이다. 이후 알에서 태어난 파리. 나니의 환생이다. 여기서 몇몇 텍스트가 떠오를 것이다. 혹시… 카프카의 「변신」? 아니다. 이 영화를 실존주의와 연결시키는 건 수딥의 윙크하는 얼굴보다 더 ‘오버’다. 파리가 된 나니는 고뇌하지 않는다. 그는 의외로 빨리 적응하고, 나름 삶의 의욕에 넘친다. 그렇다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플라이>(1986)? 일견 통하는 구석도 있다. <나는 파리다>도 심각한 대목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 영화는 복수극이자 로맨스다. 그런 면에서 <나는 파리다>는 의외의 영화와 만난다. 바로 제리 주커 감독의 <사랑과 영혼>(1990)이다. 유령이 된 남자가 아내를 지키기 위해 곁을 맴도는 것처럼, 나니는 파리가 되어 빈두 곁을 머문다.

‘파리/나니’는 빈두에 대한 수딥의 야욕을 막기 위해 애쓴다. 그깟 파리 한 마리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고? 아니다. 영화는 파리와 수딥 사이의 ‘다윗과 골리앗’ 싸움을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여기서 라자몰리 감독의 놀라운 솜씨가 발휘된다. 앵앵거리면서 괴롭히던 수준에서 점증되어 차량 전복 사건까지, 둘의 대결은 버라이어티 쇼를 방불케 한다. 여기서 감독은 훌륭한 균형 감각을 보여준다. 대결에만 집중하면 영화의 감정은 메마르게 되는 법. 파리는 자신이 곧 나니임을 빈두에게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사랑과 영혼>에서 동전을 끌어올리던 샘(패트릭 스웨이지)의 안간힘을 연상케 한다고나 할까? 기회를 잡은 ‘파리/나니’는 빈두의 탁자 위에 물로 글씨를 쓴다. “나니에요. 다시 태어났어요.” 빈두는 받아들인다.
<나는 파리다>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적 요소는 ‘파리 CG’다. 약 2,000개에 CG 숏이 사용된 <나는 파리다>는 전형적인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exploitation film), 즉 ‘영화의 특정 요소를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상업영화’다(거의 모든 해상 신을 CG로 만든 <명량>(2014)도 1,500~1,600숏 수준이다). 굳이 신조어를 만든다면 플라이플로이테이션(flyploitation) 필름? 파리 등장 이후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결합처럼 느껴지며, 90% 가까이 인도 기술로 이루어진 컴퓨터그래픽은 과시하듯 드러낸다.

실제 소스 촬영 없이 오로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파리 캐릭터는 지나치게 큰 눈, 말벌 크기는 되어 보이는 볼륨, 강렬한 색감 등 꽤나 과장된 크리처인데 이후 점입가경으로 들어선다. 파리는 복수를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고글을 쓰고, 손엔 쇠로 된 무기를 장착한다. 모두 ‘마이크로아트’를 하는 연인 빈두 덕분이다. 그러면서 대결은 점점 화력을 더하고, 클라이맥스에 가면 거의 재난영화 수준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쉴새 없이 몰아치기 때문이다. 작위적 설정과 우연의 남발은 큰 흠이 되지 않는다. 놀라운 건, 이 영화가 절정 대목에선 감정적으로 자극한다는 점이다. 파리의 위대한 순애보와 희생을 접하는 순간, 아주 잠깐이나마 우린 장엄함을 느낀다. 파리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이것은 진정 예기치 못한 감정이다.
‘인도의 스필버그’를 꿈꾸는 S.S 라자몰리 감독이 ‘약 빨고’ 만든 듯한 <나는 파리다>는 ‘병맛’처럼 시작해 점점 관객을 빨아들이다가 결국엔 “발리우드 만세!”를 외치게 만드는 영화다. 인터넷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의 간증에 가까운 댓글들이 증명하듯,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의 흥겨운 반응이 이미 입증했듯, <나는 파리다>는 충분히 즐기고도 남을, 넉넉한 즐거움의 영화다. 여기에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후 3분도 안 되어서 엔딩 크레디트를 올려 버리는 그 성급한 엔딩이라니! 그런데… 이 영화의 시작이, 아빠가 어린 딸에게 해주는 베드 타임 스토리 아니었던가? 잠자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아빠라니… 후덜덜한 설정이다.
P.S. 1 안타깝게도 IPTV에선 만날 수 없어서 녹색 창이 유명한 포털 사이트를 통해 다운로드 받아 모니터로 볼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을 통해 IPTV의 조속한 서비스를 촉구한다.
P.S. 2 원래 버전은 145분이지만 국내에선 107분 버전으로 줄여서 유통되면서 과도한 편집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글을 통해 풀 버전의 공개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