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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주말의명화]윈윈

토마스 맥카시, 2011

[신판주말의명화]윈윈 대표 이미지

영화 <콘택트>가 아닌 <컨택트Arrival>를 본 관객이라면 오늘 소개할 이 영화의 제목을 듣자마자 ‘논 제로섬 게임’이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나올 텐데 (아쉽게도) 하등의 관계없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지겨울 정도로 자주 만들어지는 ‘가족 영화’이며 스포츠 물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믿고 보는 배우 폴 지아마티가 시작하자마자 러닝을 한다. 집에서는 귀여운 딸이 엄마에게 질문한다. “아빠 뭐 해?” “달리기(Running.)” “왜?(From What?)”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 뜻이 잘 살지 않지만 엄마는 그저 달린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 딸은 그것을 ‘도망’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무엇으로부터?’라고 되물은 것이다. 어쩌다 보니 설명충 같은 이야기를 쓰게 됐는데, 어쨌든 이 간단하면서도 다소 철학적인 조크로부터 이 영화는 시작된다. 관리하지 않아 부러진 관상수도 보여주고, 단란한 가족의 평이한 일상을 보여준 뒤 주인공 마이크, 그러니까 폴 지아마티의 출근길을 배경으로 무심히 감독 크레딧이 뜨는데 그 이름은 토마스 맥카시다. 토마스 맥카시. <스포트라이트>로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바로 그 양반이다. 

미국은 워낙 변호사가 많은 나라니까, 우리나라의 편의점만큼 많은 게 변호사 사무실이니까 그 대단해 보이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때로는 생활고에 허덕이기도 한다. 여섯 살짜리 딸, 그리고 이제 말하기 시작한 딸. 그리고 현명해 보이는 아내와 함께 생활하는 마이크는 취미 삼아 봉사 삼아 동네 레슬링팀의 코치를 맡고 있다. 이 중년 남성은 웃기는 감초 캐릭터인 친구 테리와 함께 조깅을 하다가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스트레스 때문이다. 스트레스의 이유는 돈이다. 

마이크는 레오라는 어느 노인의 변론을 맡았다. 노인은 치매 환자다. 하나 있다는 딸과는 연락조차 하지 않은 지 오래 됐다. 법원에서 금치산 판정을 하고 노인을 요양원에 보내려 하는데 마이크는 자청해서 이 치매 노인의 후견인이 된다. 왜? 돈 때문이겠지. 변호사 사무실에는 돈 들어갈 일 천지. 그리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현재의 수입으로는 턱도 없다. 이 노인의 후견인이 되면 달마다 돈이 나온다. 마이크는 레오를 그의 집에 살게 하겠다고 증언하고는 곧장 요양원에 집어넣어 버린다. 그런데 누군가 마이크를 찾아온다. 바로 레오의 손자 카일이다. 카일을 요양원으로 데리고 가지만 이 노인은 자기에게 손자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마이크는 카일을 자신의 집에서 하루 재우고는 고속버스에 태워 보낸다. 하지만 얼마 후 연락이 온다. 경찰서다. 소년은 골초인 데다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 불량소년이었건 것이다. 그리고 귀찮은 일이 연속으로 생긴다. 마이크는 정의감 넘치는 아내 덕분에 갈 데 없는 미성년자 소년을 떠맡게 된다.

마이크는 할 일도 갈 곳도 없는 카일을 데리고 자신이 운영하는 레슬링팀의 연습장에 간다. 이런 영화의 주인공이 맡고 있는 팀이라는 게 다 그렇듯이 오합지졸에다가 지지리도 말을 안 듣는 녀석들이다. 이런 영화가 다 그렇듯이 카일은 감독이 정해놓은 대로 레슬링에 관심을 보이고 팀에서 함께 훈련을 하게 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카일은 레슬링 천재였다. 

할리우드에서 한 700편쯤 돌아다닐 만 한 이런 설정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묘한 집중력을 가진다. 그 이유는 현재 할리우드 최고의 각본가 중 한 명인 토마스 맥카시가 구성한 시나리오의 힘이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뻔한 플롯 안에 재치있는 농담과 비범한 복선들을 설치하고 또 폴 지아마티를 비롯한 베테랑급 연기자들의 설득력 있는 연기로 봉합한다. 소년 카일 역을 맡은 알렉스 샤퍼는 마치 숀 펜의 어린 시절처럼 보인다. 

원래 레슬링 선수였던 카일은 다시 레슬링을 하게 되면서 담배도 끊고 새벽 구보도 열심히 하는 등 성실한 모습을 보이며 불량소년 이미지를 벗어버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마이크의 팀은 이 소년 덕분에 승승장구를 거듭하게 된다. 마이크의 아내 재키는 처음에 좀 꺼려하던 카일에게 자신의 문신을 보여주며 마음을 연다. 부러진 나무도 함께 정리하며 그들은 그렇게 가족이 된다. 

이쯤 되면 장애 요소가 하나 등장해 극을 다른 방향으로 틀어 줘야 하는데 그 아이템은 바로 카일의 엄마, 치매 노인 레오의 딸인 신디다. 마약 재활원에 들어가 있던 이 여인은 등장하자마자 가련한 딸 액팅을 하며 2막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 이 글의 목적은 영화의 리뷰가 아니라 영화를 볼 것을 꼬여내는 것이므로 더 이상의 내용 소개는 좋은 감상에 방해만 될 뿐이다. 

감독이자 각본가인 토마스 맥카시는 미국에서 흔히 일어나는 가족관계의 상실과 그 회복을 잔잔하면서도 결코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로 조판한다. 언제나 엉뚱한 소리를 해 대는 친구 테리를 이용한 클로짓 게이 농담들이 다소 거슬리는 면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가족 윤리에 대한 짙은 동감을 불러일으킨다. 선한 의도와 악한 의도가 동시에 존재하는 어른들의 지질한 사정을 그 상태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극의 중요한 맥락으로 활용하고 또 수습한다. <스포트라이트>를 감명 깊게 본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 역시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토마스 맥카시는 오래된 차로 캐릭터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기법을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마이클 키튼의 신형 캠리와 마크 러팔로의 구형 캠리를 대조하는 방법을 썼다면 이번엔 마이크의 구형 스바루를 등장시키는 것만으로 그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드러낸다. 소박하고 또 귀여운 유머 감각은 영화 전편을 휩싸고 있다. 감독은 <스포트라이트>에서, 널리 알려진 사건을 관객들에게 환기하고 다시 주목하게 만든 바 있다. 전형성 강한 스토리라인을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볼만한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토마스 맥카시는 잘 알고 있다. 훔치고 싶은 재능이다. 

PS. 존 본 조비를 좋아하는 분들이 보면 대폭소를 터뜨릴만한 장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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