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상상극장
[시나리오상상극장]공포의 여덟시간
김묵. 1962
사전정보 없이 읽고 있는 시나리오가 언제 쓰였는지 알아내려면 무엇을 체크해야 할까?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내 경우는 욕설을 먼저 보는 편이다. 많이들 무시하는데 욕은 수명이 굉장히 짧다. 그 때문에 요새 욕설을 7, 80년대 배경의 영화에서 쓰면 정말 이상해져 버리는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 속에 나오는 욕설들은 어느 정도 검열된 버전이었으니 아주 좋은 지표는 아니다.
다른 지표로는 에티켓을 들 수 있다. 특히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대한 기초적인 예의. 60년대 영화를 보면 ‘멋진 남자주인공’들이 이런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해서 (“야, 거기 보이!” “이리 와, 기사!”) 요새 관객들에게 재수 없게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엔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당연하다고 해서 그 때 옳은 일이었던 건 아니다. 당연하다며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뿐.
<공포의 여덟 시간>에서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것도 택시에 올라탄 악당들이 택시 운전사에게 던지는 반말이었다. (“이봐, 좀 더 빨리 달릴 순 없나?” “라듸오나 틀어.”)이 장면은 이들이 무례한 악당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놓고 악당처럼 굴고 있는 건 아니고 택시 운전사도 별 반응이 없으니 손님이라고 반말을 찍찍해도 그게 큰 문제가 안 되었던 시절의 작품이다.
다른 단서들도 있다. 이 영화의 경찰들은 종로 보석상을 턴 강도들이 이미 시내를 벗어났고 부평, 인천 방면이 가장 위험하다고 말한다. 지리상 당연히 언급되어야 할 부천이 쏙 빠져 있는데, 그건 이 영화가 부천이라는 도시가 존재하기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강도들이 턴 보석류가 시가 이억 환 상당이라니 화폐개혁 이전이기도 하다. 답을 말하면 김묵이 감독하고 김효천이 각본을 쓰고 유한철과 곽일로가 윤색한 <공포의 여덟 시간>는 1962년 작품이다. 화폐개혁 힌트 때문에 몇 년 앞으로 잡은 독자들도 있을 텐데, 그렇다고 크게 틀렸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낡은 호텔에서 예비역 소령과 마피아 일당이 대치했던 <키 라르고 Key Largo>(존 휴스턴, 1948)와 설정이 비슷하다. 한 무리의 강도가 경찰에 쫓기다 산장호텔에 몸을 숨긴다. 그냥 조용히 숨었으면 별일이 없었을 텐데, 뒤늦게 온 두 명이 산장까지 올 때 차를 세워두고 ‘LOVE에 취해있는’ 두 커플을 권총으로 위협해 인질로 삼아 끌고 오는 바람에 그들의 정체가 산장 내에서 탄로가 나고 만다. ‘LOVE에 취해 있는’. 다시 한 번 읊게 된다. 60년대 대한민국 청춘에게 사랑이란 대문자 영어로 쓸 수밖에 없는 외제 사치품이었던가.
자, 이제 강도들은 산장호텔의 주인 가족과 손님 전체를 상대해야 한다. <키 라르고>에서처럼 허리케인이 불어닥친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짐을 만든 것이다. 여기서부터 작가들을 믿을 수가 없게 된다. 이들이 반드시 인질들을 접선장소까지 끌고 가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경찰은 아직 그들의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 그냥 택시를 잡아도 된다. 택시를 잡기 어렵다면 전화로 연락을 해도 되고. 하여간 수많은 자잘한 해결방법이 있는데, 이들은 굳이 데려온 인질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호텔 사람 전체를 상대로 하는 바보짓을 한다.
일은 점점 커진다. 손님 중 한 명은 알고 보니 밀수업자다. 나중에 손님이 또 두 명 오는데 그 손님은 밀수업자와 약속이 있다. 회사원이라면서 죽어도 신분증을 내놓지 않으려는 손님이 하나 더 있는데 (당시는 주민등록증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던 때였다는 걸 잊지 말자) 그는 나중에 밀수업자를 미행하던 형사임이 밝혀진다. 여기에 임시 검문을 나온 또 다른 형사가 들어왔다가 잡힌다. 그러는 동안 강도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형사는 손님들에게 힘을 모아 강도와 맞서자고 선동한다. 하지만 밀수업자인 손님들은 또 자기만의 생각이 있다. 물론 이런 상황 속에서 악당들이 호텔 안 여자들을 가만둘 리가 없다. 그리고 강도 중 한 명인 백곰이 인질로 끌려 온 숙희에게 추근거릴 때 지문은 이 장면을 이렇게 찍는다. “KISS 하려 한다.” 하긴 사랑도 LOVE였으니 키스도 마찬가지로 수입품이었겠지.
이 정도면 심심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강도를 연기한 황해, 박노식, 구봉서의 연기가 궁금하다. 암만 봐도 이 영화는 무게 중심이 강도 쪽에 쏠려 있는 작품이며 가장 좋았을 부분도 강도들의 내분을 그릴 때이다. 하지만 이 부지런함이 영화적 재미로 이어졌을지는 알 수 없다. <키 라르고>에서는 험프리 보가트와 에드워드 G. 로빈슨의 대결로 드라마가 압축되었다. 하지만 <공포의 여덟 시간>에서 등장인물들은 브라운 운동을 하는 공기 입자처럼 사방으로 마구 튄다. 착한 편에 험프리 보가트가 맡았을 법한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가 없는 건 실수다. 밀수업자를 쫓던 형사 종국은 기능적인 역할 이외 어떤 개성도 없고 액션도 기계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하긴 당시엔 착한 편인 주인공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남자답고’ 정의의 편, 그러니까 사법부의 편이고 싸움을 잘하면 주인공 자격으로 충분했다.
결국 산장호텔의 전화선이 끊겨있다는 사실을 안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강도들은 한 명씩 끔찍하게 죽는다. 이 살상의 대부분은 거의 사람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은 종국에게 책임이 있다. 나중에 그는 “희생자 없이 해결을 못 한 나 자신을 괴롭게 생각합니다”라고 하지만 난 안 믿는다. 더 믿을 수 없는 것은 보석을 짊어지고 산장호텔로 들어와 난리를 친 악당들의 동기이다. 언제나 최악의 길만 일부러 가는 것 같은 자칭 강도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이 요란한 자폭을 계획한 자살 클럽의 멤버라는 게 거의 확실해지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