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의 시네마테크
[2주의시네마테크]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① - 아내와 가족
나루세 미키오, 1953
이번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에서는 나루세 미키오가 만든 여든아홉 편의 영화 중 약 1/3에 해당하는 스물아홉 편을 상영한다. 몇몇 작품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줄거리나 배우를 보고 영화를 고를 필요 없이 무조건 많이 섭취하시라는 당부 말씀드리고 싶다. 한 감독의 영화를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며, 특히 나루세의 영화는 여러 편이 한데 모여 확장되면서 진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반드시. 많이. 보실 것.
우선 특별전이 구정 직후에 시작함에 착안하여 비교적 유명한 5~60년대 영화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들을 아내와 가족이라는 주제로 묶어 권하고자 한다. 나루세 영화 중에는 집념 어린 사랑의 이야기 <부운>이나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독립을 다룬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처럼 집단의 관념 바깥으로 이탈하는 여성들을 다룬 작품이 특히 유명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그 여성들을 안에서 붙잡는 가족의 존재가 있다. 나루세는 이 가족을 ‘어쨌든 우리는 가족’이라는 식으로 끌어안는 대신 안으로부터 생긴 균열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명절 가족 모임에서 원치 않는 내상을 입었다면 (현실 도피가 아닌) 살풀이로 이만한 영화들도 없다.
<아내>는 <밥>, <부부>를 잇는 ‘부부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세 편 모두 아이를 갖지 않은 채 권태기에 빠진 부부를 다루는데, 그중에서도 <아내>의 설정은 거의 진부하게 들릴 지경이다. 남편이 아내 귀한 줄 모르고 바람을 피운다. 끝. 그런데 핵심은 여기에 끝이 없다는 것이다. 남편이 상대와 다른 살림을 차리지도, 부부가 대판 싸우고 별거하거나 이혼하지도, 아내가 남편을 용서하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집을 나가고 들어오며 이 부부를 흔들어 놓는 세입자와 친구들의 참견이 뜻밖에 코믹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미결정과 불확실의 상태는 가실 줄을 모른다. 아마도 고통스러운 이야기일 테지만, 사건에 변화를 주어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 이전에 상황 자체를 세밀히 직시하는 담담한 시선이 주는 쾌감이 있다.

<아내의 마음>의 가족은 규모가 더 크다. ‘아내’에게는 남편뿐만 아니라 아이도 있고, 시어머니도 있고, 시동생도 있고, 동서도 있고, 조카도 있다. 게다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부부에게 시동생네 가족이 기약 없이 신세 지러 온다는 설정이다. 그렇다고 고성이 오가는 난장판을 기대하면 금물. 이 가족 중 누구도 ‘아내’에게 악의를 품지 않으며, 뒷공론을 하거나 서운함을 토로하는 데에 열을 올리지도 않는다. 막장 드라마에 단련된 관객에게 이 시어머니나 동서는 차라리 천사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집안 곳곳에서 상대를 마주치고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점점 더 이들을 견딜 수 없어진다. 급기야 두 인물이 한 화면에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비명을 지르고 싶어진다. 사건이나 인물의 성격 이전에 공간과 동선이 가족의 불편함을 전달한다. 이번 특별전의 포스터에 쓰인 사진이 바로 <아내의 마음>이니 궁금하셨던 분들은 참고하실 것. 참, 그리고 여기에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인 미후네 도시로도 출연한다. 목소리와 동작이 굵고 커서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배우에게 나루세가 어떤 역할을 주어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재미난 볼거리다.

<딸, 아내, 엄마>는 나루세 가족 영화의 총결산 같은 영화다. 가족의 규모는 더욱 커지고, 하라 세츠코와 다카미네 히데코를 필두로 과거 나루세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가 다수 출연한다. 이들이 이전에 맡았던 역할이 남긴 잔상을 끌고 들어오거나 변주하면서 안 그래도 큰 가족을 더욱 확장한다. 달라진 점이라면 젊은이들이 더 늘어났고, 그들은 가족이라는 관념 앞에 더욱 냉정하다는 것. 집안에 갑자기 닥친 위기 앞에 오 남매가 모여 모든 감정적인 반응을 배제하고 실리를 따지며 대책을 논의하는 대목은 나루세의 가족 영화 중 가장 지독하고도 상쾌한 순간이다. 또 아내라기보다는 거의 식모처럼 나와서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화면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다카미네 히데코가 불현듯 카메라를 독점한 채 그간 품어왔던 시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토로하는 대목은 가족을 폐기처분하지도, 숭앙하지도 않는 가운데 공존의 조건을 모색해 온 나루세의 결론처럼 들린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어떤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는 순간, 일본 영화가 빚어낸 전통 가족이라는 하나의 우주가 휘청거린다. 반드시, 하지만 가능하면 나루세의 다른 가족들을 일별하신 후에, 보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