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의 시네마테크
[2주의시네마테크]스크린 위에서 영원히 살다: 하라 세츠코 회고전 - 그녀를 다시 부른다면
오즈 야스지로, 1951
현재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는 ‘스크린 위에서 영원히 살다’라는 제목으로 배우 하라 세츠코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2012년 나카다이 다츠야, 2014년 가가와 교코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리는 일본 대배우의 회고전으로, 이미 잘 알려진 대표작 외에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까지 일별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다. 한국의 시네마테크들은 극장과 관객 모두 ‘작가’ 감독의 연출작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지라, 특정 감독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도 이 정도의 규모와 다채로움을 유지해 주는 시네마테크KOFA에 새삼 감사의 마음이 크다. (물론 이것이 바로 이어질 프랑수아 트뤼포 특별전을 폄하하는 발언이 아니라는 점은 다음 글에서 보여드리겠다.) 하라 세츠코는 분명 일본영화계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배우이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주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그리고 이따금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를 통해서만 거론되는 형편이다. 이번 회고전이 그런 감독들의 이름에 의지하지 않고도 배우를 중심으로 새로운 영화 지도를 그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건 그렇지만, 현재 한국영상자료원 공식 웹사이트에 올라온 하라 세츠코 회고전 소개에 대해서는 작은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이 소개에 따르면 하라 세츠코는 ‘일본의 전통적인 가치와 아름다움을 가장 잘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배우이자 ‘스크린 위에서 딸, 아내 혹은 며느리, 그리고 훗날에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일본은 물론 당대 보편적 시대 의식을 체현’한 배우라고 한다. 이와 같은 표현은 하라 세츠코가 일본의 전통 가족 안에서 순종적인 딸, 아내, 며느리, 어머니의 역할을 반복했을 것만 같은 보수적인 인상을 준다. 물론 웃는 모습이 온화하기 이를 데 없으며 오즈의 가족 영화에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로 거듭 출연한 배우를 그렇게 바라보기 쉽다는 점은 이해한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하라 세츠코에게 ‘영원한 처녀’라는 끔찍한 별명까지 붙여주었으니. 하지만 그것이 온당한 시선일까? 통상 한 감독의 영향권 아래에서 거론되던 배우를 주체로 다시 자리매김하고 새로이 소개하고자 하는 기획에서 그와 같은 시선을 재고 없이 반복해도 괜찮은 것일까?
오즈의 영화를 직접 본 적이 있는 관객이라면, 오히려 하라 세츠코가 전통적 가치관에 부합하는 순종적이기만 한 딸이나 어머니가 아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아니, 애초에 오즈의 영화에서 화목하고 단란한 가족관에 순순히 따르는 가족 구성원이 흔한가?) <만춘>과 <초여름>에서 그녀는 결혼을 두고 부모와 반목하며, 끝내 자신의 의지로 가정을 꾸린다. 시부모를 열심히 모시는 ‘착한 며느리’ 역할로 나온 <동경 이야기>에서조차 그녀는 ‘이기적인’ 자식들과 대척점에 놓이는 존재는 아니며, 부모 자식 간의 피치 못할 결별을 이해하며 자신의 이기심과 고독을 고백한다. 하물며 무정한 남편을 뒤로하고 틈만 나면 친정을 찾아와서 “나 가출했어.”라고 선언하거나(<밥> <딸, 아내, 엄마>), 한마디도 지지 않고 남편과 스크루볼 코미디 스타일의 전쟁을 벌이거나(<취우>), 시부모를 향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버리고자 노력하는(<산의 소리>)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는 이번에 처음 소개되는 낯선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푸른 산맥>과 <속 푸른 산맥>에서 그녀는 연애란 불건전한 것이 아니라면서 학생들의 연애를 적극 지지하는 교사로 등장하여 소도시의 전근대적 가치관과 맞서고 있고(그나저나 여기에는 <만춘>을 빼다 박은 근사한 자전거-해변 장면이 나온다), <아가씨와 건배>에서는 전근대적 상류층 집안의 아가씨로 나와 자수성가한 남자와 연애를 하며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프랭크 카프라식 코미디를 펼쳐 보인다. 이 영화들이 미군정의 영향 아래에서 서구적 가치관이 밀려들어 와 새로운 지각 변동을 일으키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작품들임을 생각하면, 하라 세츠코는 전통보다는 오히려 자기 나름으로 새로운 물결의 선두에 있었던 셈이다.
결국, 하라 세츠코는 손윗사람을 사랑하고 예의를 갖추는 밝은 캐릭터를 자주 맡았을지 몰라도 전통적인 공동체의 요구 앞에 순종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오히려 오랜 가치관을 체화한 공동체 안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개인으로 남기를 고집했다는 점에서, 하라 세츠코는 차라리 현대적인 이미지를 구가한 스타였다. 어쩌면 <추신구라> 이후 영화계를 떠나 은둔하며 반세기 이상을 하라 세츠코라는 예명과는 무관한 개인으로 살아간 끝에 심지어 별세 소식마저 석 달 가까이 늦게 알려졌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녀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알려주는 뚜렷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관객들에게 제안한다. 시네마테크KOFA의 프로그램을 실컷 누리되, 그 소개에는 의문을 품자. “영원한 처녀”는 걷어치울 때도 됐다. 새로운 하라 세츠코를 위한 새로운 별명이 필요하며, 이번 회고전은 바로 이를 위한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