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장르 독립영화
나는 독립영화 저술가이면서 판타지 소설가이고, 양쪽의 일을 모두 좋아한다. 좋아하는 일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어서 나름 운 좋은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독립영화나 판타지/SF 소설이나 둘 다 한국의 문화산업에서는 주류가 아니라는 공통점도 있기 때문에, 두 쪽의 소비자를 만나게 하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좋은 독립영화를 봤는데 그걸 장르 쪽 작가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때나, 판타지 독자들이 재밌는 독립영화를 봤고 더 많은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할 때도 그런 생각이 든다.
독립영화 중에는 장르적 성격의 영화가 많다. 이를테면 장형윤 감독의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판타지/SF 장르 매니아 중에서도 팬을 많이 만났다. B급 영화의 느낌을 의도한 몇 편의 독립영화들, 아마도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나 <브레인 웨이브> 같은 영화는 매니아들사이에서 <원더풀 데이즈>나 <예스터데이> 못지않게 유명할 것이다. 꼭 장르적인 요소가 중심인 영화는 아니더라도 매니아를 자극할만한 영화는 많이 있다. 예를 들어 김진만 감독의 <소이연>의 경우 장르 매니아의 시선으로 본다면 생태계에 온갖 변종들이 나타난 그로테스크한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감독의 상상력이 관객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경우라고 할까. 동물을 잡아먹는 식물이 지구를 돌아다니는 설정으로는 새로운 소설도 한편 쓸 수 있을 것이다.
전혀 장르적이지 않아 보이는 영화에서도 장르적 상상력은 가능하다. 나는 정재훈 감독의 다큐멘터리 <호수길>을 보면서, 이건 외계인이 지구에 내려와 바라본 것 같은 시선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E.T가 은평구에 도착했는데, 이곳은 개발 중이구나, 하고 깨달은 다음 (엘리엇을 만나지 않고) 떠나는 것이다.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2>를 보면서도 장르소설 기법에서 흔히 쓰이는 ‘몰락’의 플롯을, 즉 위대한 인물이 모든 것을 잃고 파멸하는 이야기의 전형적인 구조를 떠올렸다. 반대로 <경계도시2>를 부활의 이야기로 본 글을 읽은 적 있는데 그건 송두율 교수가 무죄 판결 받는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이해한다면 그렇다.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본다면, <경계도시2>는 현실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상승과 몰락의 이야기로 보인다.
작년에 접한 독립영화중 장르 매니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두 편 있다. 최진성 감독의 <고양이 입속으로 뛰어들다>와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이다. <고양이 입속으로 뛰어들다>가 보여주는 화려한 영상미는 한국 애니메이션 팬들이 지겹게 되풀이 하는 이른바 ‘퀄리티 논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만큼 훌륭하다. 순수한 사랑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에서만 재현 가능한 상상력을 덧붙여 하나의 근사한 이야기로 엮어낸 솜씨도 멋지다. 이 영화는 장르 매니아인 내 눈으로 보기엔 정말 근사해 보였다. <남매의 집>은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 좋다. 좁은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이지만, 영화의 상상력은 강렬한 드라마와 상승효과를 일으켜 극대화 되면서 집 밖으로 뻗어나간다. 남매의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일이 밖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건 훌륭하게 짜인 이야기에서만 가능한 상상력의 확장이다. 샤말란의 <사인>이 한 가족만을 보여주면서도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구성해냈듯이 <남매의 집>도 같은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얼마 전에는 정병묵 감독의 <영의 지점>을 온라인 영화 사이트 유에프오(yoUeFO)에서 봤다. 다시 본 영화는 SF 장르 영화로서 손색없는 훌륭한 영화였다. 그리고 몇 년 전 이 영화를 보고 싶은데 볼 방법이 없다는 글을 인터넷 어디에선가 봤던 기억도 떠올렸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불법이든 합법이든 영화를 접할 경로가 많아졌지만 독립영화는 이 부분에서 여전히 소외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유에프오나 상상마당 인디플러그처럼 단편/장편 영화도 쉽게 접근과 다운로드가 가능한 온라인 사이트도 생겼고 DVD도 꾸준히 발매되고 있다. 이런 유통방식이 더 활발해진다면 내가 판타지 소설을 쓸 때 작가 대 독자로서 만나곤 하는 장르 매니아를, 독립영화 애호가로서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위치로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