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독립영화는 계몽영화? 상영활동가는 빨갱이?
주말의 영화를 좋아해 토요일 밤이면 자정을 넘겨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졸린 눈으로 만화동산을 본 기억이 난다. 성인이 된 후에는 하루 10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이 끝나고도 늦은 밤, 이른 아침 할 것 없이 극장으로 들이쳐 의자 한 칸에 몸을 맡긴 채 영화 속 세상을 여행하던 철부지 청년이 한쪽 다리를 독립영화진영에 슬쩍 들여 놓았다.
상영활동가로 활동하기 이전에는 독립영화는 텍스트로만 만나 본 친구였다. 즐겨보던 잡지나 TV프로그램, 혹은 영화 사이트를 통해서 예술·독립영화로 명명되어지는 작품들을 접하고 종종 관심을 갖기도 했었다. 때론 작가주의 예술영화는 가끔씩 동네 극장에서도 상영이 되기도 했지만, 그나마 일주일을 넘기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그랬다.
지역에서의 상영활동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진주에서는 매월 다양한 주제의 독립영화의 상영으로 지역에서 독립영화의 저변을 확대하고, 문화다양성을 지키고, 지역민에게 선택의 권리와 수도권에 있는 사람들과 동등한 문화혜택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등의 의미들을 나열하며 상영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민들은 “독립영화”를 마치 민족의 독립의 뜻을 담은 계몽영화쯤으로 여기고 있는 형편이다.
정기상영회의 홍보를 위해 지인들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내일 모레면 서른이 되는 형에게 독립영화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리플릿을 건넨 내 손을 보며 돌아온 대답은 “너, 점점 빨간색이 돼 가는 것 같네.”였다. 순간 “영화에는 색깔이 어디 있어요?” 하고 내지르고 싶었다만 “원래 빨간색 좋아합니다.”하고 실없이 웃고 말았다. 또, 40대 커리어 우먼을 대표하는 모 증권사 과장님께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야길 드렸더니 “나는 독립 싫어한다.”라며 손사래 치는 모습이 반사적으로 나왔다. 헛웃음이 나왔다. 정답이다. 내가 만난 두 사람의 모습이 지역의 독립영화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안타까움이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부정할 수 없었다. 아니 부정하기 싫었다. 어차피 나도 그 사람들 중 한명이 아니었던가. 오기라고 불러도 좋을 의지가 생긴 시점이기도 하다.
경남지역의 20개의 시·군 중 창원, 김해 등 8개 지역 에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운영되고 있다. 그나마도 부산과 가까이 있는 김해나 양산, 그리고 산업 인구가 밀집된 창원, 마산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진주가 있는 서부경남지역의 11개 시·군을 통틀어 단관이라도 극장이 있는 곳은 진주시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상업영화, 독립영화를 막론하고 영화를 보기 위해선 짧게는 왕복 1시간, 길게는 왕복 3시간의 거리를 달려와야 하는 형편이다. 거기다 만원에 육박하는 관람료 역시 저 소득자나, 소외계층에게 있어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처럼 극장이 가진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독립영화는 “공동체상영”도 진행하고 있다.
공동체상영에는 늘 영화를 통해 이야기 거리를 찾는 특정 관객이 존재한다. 가령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영화에는 노조원이나 직장인, 공동체의 생활양식에 대한 다큐멘터리에는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이 관람 하는 식이다. 대부분 관객들의 상황이나 성향과 비슷한 영화들로 공동체상영을 진행하는 일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가끔은 앞의 전제가 뒤바뀌는 상황도 발생한다.
지난 해 여름 거창에 있는 산골마을을 찾았던 적이 있었다. 그 곳은 10개 남짓의 가로등이 서로 자리를 의식한 듯 띄엄띄엄 서 있는, 마을 주민은 채 100명이 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상영이 적합한 너른 터를 찾아 대형 스크린을 펼치고 관객들을 기다렸다. 해가 저물고 동네 꼬마들, 주부, 어르신들 할 것 없이 옹기종기 스크린 앞에 모여 앉았다. 심지어 이웃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깊은 산중 마을에서 스크린은 까만 밤의 별처럼 빛나고 있다. 스크린 앞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그보다 더 한 빛을 내 뿜고, 사방으로 뛰어 노는 아이들도, 한국말에 서투른 여성결혼이민자 분도, 잠든 손주의 등을 따뜻하게 쓰담으시던 할머니도, 함께 울고 웃으며 주민들이 하나가 되는 듯 했다. 그렇게 마을 주민들만의 추억거리를 하나 더 만든 셈이다.
상영이 끝나고 내 손을 꼭 잡으시며 “30년 만에 영화를 보네. 고맙다 총각.” 웃으시던 할머님의 모습에서 상업영화가 채워 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독립영화가 가진 희망과 상영활동의 의미를 엿볼 수 있었다.
어쩌면, 앞에서 언급했던 상황들이 현재 지역에서의 독립영화가 처한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독립영화의 가장 든든한 역할인 주류 사회의 견제와 비판의 기능의 강화와 함께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로 보듬을 수 있는 영화 본연의 역할을 발전시킨다면 독립영화와 지역사회는 종전의 관계 보다 한발 더 가까워 질 것이다.
더불어 지역에서 독립영화 상영활동가로 산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딱딱하고 조금은 난해한 이유들 보다 “독립영화와 지역관객의 사이를 이어주는 하나의 매개체로 존재”하는 것 이다. 관객을 상업 논리로 규정해 이윤으로 생각하게 되는 영화산업 속에서 지역민들이 소외받거나 차별 받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존재 하더라도, 충분한 역할이라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