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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곽규석 - 배우 - 아흐!! 후라이보이 곽규석 선생님!! 뵙고 싶어요!
내가 후라이보이를 처음 만났던 것은 1969년경이었다. 초등학교 어린 시절부터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다. 배우가 되고 싶어서 중학교 3학년 때 아동극단 시험 보러갔다가 떨어지고 고등학교 때 연극부를 학교에 만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말하는 억양이 이상하다고 너는 배우가 안 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심지어는 빳다를 치는 선배도 있었다. 배우가 안되더라도 이바닥(?)을 떠날 수 없었다. 대학교는 연극과에 입학하여 전공을 연출로 바꾸었다-연출전공자에겐 억양을 가지고 시비하지 않는다- 그래도 배우 꿈은 못버리고 학교를 다니면서 탈렌트 시험을 보러 다녔다. 4번이나 떨어졌다. 챙피해서 죽고 싶었다.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탈렌트 시험에 턱턱 붙는 거다. 내가 연출할 때 정말 재능 없어 보이던 아해들까지 탈렌트가 되어 여기저기 엑스트라로 나오는데 정말 미치지 않은 게 세계평화를 위해서 다행이었을 거다. 방송국 불지르고 싶었으니까! 뭐야 갑자기 이런 얘기는?????????????????/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도 TV에 출연하는 길은 탈렌트. 가수, 코미디언이다.
지금은 리포터까지 합해서 한 가지 더 늘었지만!!! 탈렌트는 각 방송국마다 돌아가며 떨어졌으니 텄고 가수도 노래를 못하니 텄다. 한 가지 남은 게 코미디언이었다. 중학교 때 알고 지내던 여학생이 졸업 즈음해서 돌린 사인지에 나에게 부쳐주고 싶은 별명이 있다면에 '후라이보이 2세'라는 별명을 부쳐주고 싶었단다. 그래 결심했어! 후라이보이를 찾아가는 거야! 후라이보이는 지금도 쇼의 대명사가 되어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는 동양방송의 간판프로그램 ''쇼 쇼 쇼''의 명사회자, 대사회자였다. 그 사람을 어떻게 만나는가? 동양방송의 ''쇼 쇼 쇼''는 그 당시 지금의 운형궁이 되어버린 자리에 운현궁스튜디오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녹화를 했었다.
지금도 방송국 출입하는 게 일반인들에겐 어려운 일이지만 그때는 더 했던 것 같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경비와 말다툼도 여러 번했던 거 같은데 경비의 이름이나 혈액형, 출신학교를 물어본다면 하나도 모르겠다. 하여튼 후라이보이가 녹화하는 운현궁스튜디오에 가보니 김상희, 최희준, 패티김, 윤복희 등등을 구경하게 되었고 그 가수들을 가까이에서 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꿈결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후라이보이에게 말을 걸 수는 없었다.
주위에 워낙 사람들도 많았고 대기실에선 포카 같은걸 하고 계셨다. 포카를 안하고 있은들 내가 어떻게 말을 걸 수 있었겠는가? 녹화날만 되면 찾아가기를 일고 여덟 번!!!!!!!!!! 화장실을 가시는 거다. 소변보시러. 나는 무작정 따라가서 옆에 섰다. 볼일도 없으면서 볼일보는 척하면서 나의 첫 대사가 시작되었다.
'선생님 코미디 원고는 누가 쓰세요?' 볼일보시다 말고 그자세대로 나를 쳐다본다. 아무말도 없으시다.'제가 써올께요'하고 대답도 안 듣고 바로 화장실을 나왔다.
아흐! 후라이보이 곽규석 선생님 처음뵙을때의 얼굴이 생각나네요!!!
''쇼쇼쇼''는 ''쇼쇼쇼'' 주제가가 나오면서 무용단의 무용이 시작되고 멀리서 뛰어나오는 후라이보이가 카메라 앞에 와서 멈춰 서면서 골프스윙을 맨손으로 한 번하시면서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후라이보이 곽규석입니다'로 오프닝을 시작하고 봄이면 봄에 관해 어쩌구 저쩌구 다음에 가수의 노래! 노래 중간중간에 꽁트가 3~4개 나온다.
나오는 사람은 후라이보이 곽규석에 장고웅, 양영일, 세 사람이 꽁트를 한다. 주로 세태풍자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가끔 특집일 땐 후라이보이 혼자 마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꽁트 대본을 내가 써가지고 간 거다. 잔머리 머리 굴려서 20여 개를 써가지고 갖다 바쳤다. 경비가 '어디가?'하고 물으면 '후라이보이 원고가지고 왔어요' 하면 무사통과다. 기다렸다. 어떤 반응이 나올까? 내가 써준 원고를 어떻게 하는가를 집에서 토요일 ''쇼쇼쇼'' 시간에 하는가 안하는가를 숨죽이고 기다렸다. 얼씨구 !절씨구! 내가 써다드린 원고를 가지고 꽁트를 하는 거다(물론 더 재미있게 고쳐서!)그러나 내가 써준 원고에 나온 대사 몇 마디는 오리지널 그대로 하시는 거다.
지화자! 좋네 !풍년이 왔네! 조바심이 생겼지만 이삼 주인가를 안갔다! . 왜? 그냥 쑥스럽기도 하고 날 못 알아보면 어떻하나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얼마 만엔가 ''쇼쇼쇼'' 녹화장을 갔다. 쭈빗거리고 복도에 있는데 '야!임마! 왜 안왔어' 하시는 게 아닌가? 날 알아보다니! 풍년이 또 왔네!!!! 인연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아흐! 짠돌이 이시던 후라이보이 곽규석 선생님 !!!
그 당시 택시비 기본 요금이 90원이었다. 같이 택시를 타고 내리면서 백원을 내고 내리신다. 택시비는 기본요금 90원이 나왔다. 백원을 내시고 방송국 안으로 사라지시면 나는 잔돈 10원을 받아 들고 후라이보이 뮤직프로덕션이 있던 정동사무실로 간다. 바쁘시니까 매일 만나지는 못하지만 사무실엔 출근해서 여러 가지 잡다하게 할 일이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야 10원줘!' 하시는거다. '10원이요? 왜요?' '야 임마 3주 전에 택시비 90원 나왔을 때 내가 100원내고 내렸잖아! 잔돈 안 받았어?' '받았는데요!' '그럼 내놔!' 하시는 분이다. 아주 오래된 일인데도 10원을 기억하시고 달라시던 분! 정동사무실에서 남산KBS까지 시간 남으면 자가용이 있는데도 걸어가시던 분! 다방에서 약속 안하고 꼭 중국집에서 약속하시면서 커피값에 조금 보태면 한 끼 먹을 수 있는데 다방에서 커피는 왜 마시냐고 핀잔주시던 분! 가끔 점심식사로 샌드위치를 싸와서 정동사무실에서 드셨는데 -그때만 해도 샌드위치로 식사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서양스러운 일이라 멋있고 앞서 나가시는 분이구나 하며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봤다
- ' 야! 너도 좀 먹어' 아이고 황송해라 이걸 어떤 방법으로 먹어야하나? 고민하던 시절! 어느 날은 ' 유성이 점심 안 먹었지? 빵 사다 먹을까?' '네' 하고 달려나가 빵을 사오면 맛있게 드시던 후라이보이 곽규석 선생님- 빵은 간식이지 식사대용이 아니었다. 나는 - 얼마가 지나 월급날이었다. 월급에 꼬리표가 붙었다. 지금은 월급이 생각 안나지만 예를 들어 만원이라면 만7백원을 주시는 거다. '선생님 7백원이 뭐예요?' '응 얼마 전에 니가 나가서 니돈으로 빵 사왔잖어! 빵 값이야' 그걸 기억하시고 챙겨주시던 후선생님! 이렇게 짠돌이셨지만 후라이보이 곽선생님의 기사는 내게 자랑하는 말이 있었다. '연예인 기사중에는 내가 월급이 제일 많아!'
아흐! 가까이하기엔 너무 어려웠던 곽선생님!
외국오케스트라 지휘도 하셨고 외국의 유명연예인이 오면 국적불문하고 사회를 도맡아 하셨던 5개 국어를 하신 명사회자 ! 총소리, 대포소리, 기차소리 못내는 소리가 없었던 원맨쇼의 개척자!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종합광고대행사를 차렸다가 징그럽게 운영이 안 돼어 부도나서 일본으로 도망가셨다가 다시 돌아오신 곽선생님! 다시 돌아오자 채무자들이 용서해줘서 놀랐던 일! 어느 날 목사님이 되었다는 소문과 함께 진짜 목사님이 되어 나타나신 선생님!
우리나라에 전자라이터가 처음 나왔을 때 그 전자라이터를 처음 수입하신 분의 아버지 환갑잔치에 사회 보러 갔다가 출연료 외에 보너스로 전자라이터를 선물로 받았다. 아버지가 달라고 해도 안 주던 전자라이터였다. 스위치를 누르면 타타닥! 하고 불꽃이 튕겨져 나와 가스에 불이 붙던 지금은 흔해 빠져서 담배 피우는 고등학생들도 가지고 다니는 전자라이터가 그 당시에는 너무너무 신기한 물건이었다. 누구나 그 라이터를 보면 탐내고 켜보고 뺏어 볼려고 하던 전자라이터였다. 어느 날 녹화장에 가지고 갔더니 장고웅 선배가 라이터에 눈독을 들인다. '안돼요! 아버지꺼라!!'일단 고비는 넘겼다. 다음 관문은 후라이보이 곽규석 선생님차례다. 타타닥! 불붙는 게 신기해 보였던지 던힐 라이터주시면서 바꾸자고 하신 곽선생님! 역시 아버지를 팔아서 안된다고 했는데 그 라이터를 집에서 뒷주머니에 넣고 갔다가 재래식화장실에 빠트렸다. 얼른 건져내어 씻고 또 씻고 또 씻어 말려서 그 다음날 자진해서 곽선생님에게 바쳤다. -이 사실은 처음으로 밝히는 나만의 비밀이다-지금은 금연운동이 한참이라 상상도 못하지만 전자라이터로 불을 타타닥 부치면서 ''쇼 쇼 쇼'' 마지막을 장식하시던 선생님! 대신 당신이 사용하시던 던힐 라이터를 나에게 주셨다. ( 그 비싼 던힐 라이터를 장고웅에게 빼았겼음) 언젠가 꽁트 원고를 갖다드리니까 원고를 읽어보시고 구봉서 선생님께 갖다주라는 겁니다. 왜 그러셨는지 이유를 몰랐지요! 나중에 물으시는 겁니다. 구봉서선생님이 하는 그 원고의 코미디를 봤냐는 겁니다. 물론 저는 봤다고 대답했지요! 봤으니까! 우리팀이 했으면 그만큼 재미있게 못했을 꺼야! 하시던 후선생님!
아흐흐! 곽규석 선생님 뵙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만지고 싶어요.
미국가실 때 제가 쓴 원고를 다시 한번 읽으셨대요! 감격했지요! 한 마디 하시더군요!
'유성이 니가 쓴 원고를 보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돈이 없어서 생긴 일만 썼냐?'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 울립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돈이 없었던 시절이니 렇뭬티? 생기는 일은 상상이 안 되었던 거지요! '전유성이가 내 마지막 제자야' 하시던 말씀! 원맨쇼도 못하고 외국어도 못하고 노래도 못하고 억양도 이상한데 ! 마지막 제자라니요! 황공무지하지요. 한국에 가끔 나오시면 찾아가면 잘 있니? 예수 믿어라 널 위해 기도 많이 한다. 그 기도 덕분에 아직도 버티고(?)있습니다. 지금도 사회자들이 가수나 누구를 소개할 때 누구 씨하면 씨자를 도르를 말아 이름보다 씨자를 더 크고 높게 발음할 때면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보고 싶습니다. 대본 중에는 곽선생님이 '야 백 원짜리 한 개 가지고와' 전유성 '네'라고 써놓고 녹화 들어가서 '야 백 원짜리 한 개 가지고 와' 하시면 '저... 오십원짜리 두 개로 가지고 와도 되지요?'했다가 녹화 끝나고 장고웅 형한테 대본으로 뒤통수 맞던일! '야 임마! 한 마디라도 더하면 낫냐?' 하시면 죄송합니다 대답하면서 속으론 '그럼 자식아 한 마디 더하면 낫지!!!'
뒤통수 맞는 거 보시며 '유성이 한 마디 더하게 해줘라'하시던 곽 선생님 보고 싶어요 만지고 싶어요 한번 안겨 울고 싶어요 !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신 곽규석 선생님!
전유성(개그맨) / 2003년
<프로필>
1928년 11월 22일 경기도 안성 출생
1999년 8월 31일 타계
1951년 공군군악대창설로 데뷔
희극인으로 사회자, 악극, 영화 등 다방면으로 활동
<주요 작품>
후라이보이 박사 소동, 후라이보이 무전여행기, 식모 삼형제, 남자미용사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