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용삐용B무비
[삐용삐용B무비]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김기영, 1978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김기영 감독의 이상한 영화’라고 부르기엔 석연찮은 기분이 가시길 않는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 중 이상하지 않은 영화가 있었나? 그는 초기작인 <양산도>부터 ‘악취미의 영화’, ‘국산영화의 품위를 타락시킨 불성실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영화 인생을 시작한 감독이다. 그가 최고의 흥행사이자 ‘작가’로서 인정을 받게 한 작품인 <하녀>는 당시의 어떤 영화와 비교해도 지지 않을 뛰어난 작품이지만, 그래서 더 이상하다는 생각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당시 한국영화로선 상상하지 못할 놀라운 완성도와 뉘앙스를 구현해낸 걸작. 척박한 토양에서 이상하게 혼자 뛰어난 영화. 개인적으로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에 비교해도 전혀 꿀릴 것이 없는 영화라 생각한다.

네알 안경 김기영
그런 김기영 감독의 작품들이라고 해도,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는 개중에서도 특히 기괴하다. 감독의 괴상한 상상력이 만개한 작품인 것은 알겠으나, 관객이 영화가 진행되는 걸 따라가려 스스로 이야기를 꿰맞추고자 노력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멘-붕의 나락에 빠져버리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이 영화는 대학생 김영걸(김정철)의 이야기다. 그는 친구들과 MT를 간 장소에서 나비사냥을 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여인이 따라준 오렌지쥬스(스누피가 그려진 플라스틱 컵에 환타를 따라준다)를 받아마시고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 음료는 자살하려는 여인이 혼자 가기 적적해 영걸을 끌고 가려고 독을 타서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는, “약의 후유증인지 계속 비관적인 생각이 들고 죽고만 싶은” 증상에 시달리게 된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명장면들이 생각날 것이다. 우선은 ‘의지’로 죽음을 추방한 책 외판원 할아버지가 있다. 영걸의 자취방에 매일 찾아와 「의지의 승리」(레니 리펜슈탈의 나찌 선전영화하고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가져다 쓴 것 같다.)라는 책을 거의 강매 수준으로 권유한다. 그는 “나는 이 책을 통달하고 죽음을 추방했다. 의지의 승리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집요하게 의지의 중요성 혹은 ‘의지의 승리’의 중요성을 말하던 영감은 자살하려는 영걸을 방해한 대가로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의 삶 속에서 죽음을 추방했기 때문에, ‘세포는 죽었’지만 죽지 않고 입은 살아남아 계속 이야기를 한다. (정말로 죽은 것처럼 누워서 입만 나불거린다.) 영걸은 그를 매장도 해보고 화장도 시키지만, 종국에 할아버지는 해골이 되어 영걸을 찾아와 그의 자살을 방해한다. 의지! 의지만 있으면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의지다! 나는 영원히 산다! 의지다!!!!! 흡사 배우 김보성이 ‘의리’를 말하는 정도의 횟수로 의지를 이야기하는 이 할아버지는 영걸의 자살을 막는 데 성공한다.

내가 왔다, 죽지 않고 내가 왔다
이후 영걸은 친구 만호(김만)가 알고 있다는 종유굴 속에 2천 년간 묻혀 있었던 시체의 유골을 파내어 집으로 가져온다. 어느 비오는 날 밤, 비를 맞은 유골은 살이 붙어 사람이 된다. 그녀(이화시)는 신라시대 사람으로, 아버지가 마음에 안 드는 정혼자와 결혼을 시키려 하자 무당에게 방법을 물었더니 동굴에 들어가 30일간 단식을 하면 잠들었다가 2천 년 후에 깨어나 좋은 남자를 만나 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실행해 옮긴 스마트한 여성이었던 것. 모든 좋은 것에 그렇듯 하찮은 부작용이 있는데 열흘에 하나씩 인간의 싱싱한 간을 먹어야 하는 대단찮은 일이었다. 그러던 중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대사, 미장센을 포함한 이 시퀀스 전체가 전 세계 영화사를 통틀어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유례없이 독특하다.

2천년 된 여자의 간지나는 환생
여자 : 30일동안 단식했잖아요. 배가 고프다구요
영걸 : 여긴 라면밖에 없다. 빨리 먹을 수 있어. 인스탄트니까.
여자 : 서방님...
영걸 : 서방님이라니 난 김영걸이다
여자 : 김씨예요? 나도 김씨인데. 같은 성씨끼린 결혼 못 하잖아요
영걸 : 걱정 마. 금년에 동성동본끼리도 결혼할 수 있는 법이 생겼다
여자 : 정말요. 2천 년이나 걸렸으니 우리 백성은 너무 완고해요
(중략)
영걸 : 배가 고프면 내 간도 먹을 건가
여자 : 배고프면 가릴 것이 없잖아요
영걸 : 이것이 여자의 본 모습이다. 하여간 정직해서 좋다.
그리고 이어지는 섹스씬은,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뻥튀기 러브씬’이다. 용돈을 벌겠다고 뻥튀기 기계를 들여놓은 영걸은 신이 나서 기계를 작동시킨다. 그런 후 여자와 대화 도중, 쌓여있는 뻥튀기 위에 누워 사랑을 나눈다. 옛날 한국 영화에서 성적인 행위가 시작되면 타는 장작, 도는 물레방아를 보여주듯 카메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행각을 뒤로하고 뻥튀기 기계를 클로즈업 한다.

“욱” “아니 왜 그래” “무당이 그러는 데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도 싼 건 못먹는 댔어요.” (기껏 끓여주니까..!)

뻥튀기 러브씬. 중앙 좌측으로 날아가는 것이 뻥튀기.
영걸은 이 유골을 가지고, 오래된 유골을 분석하여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진 인간의 변화를 연구하는 고고학자 이박사(남궁원)에게 가져가 그의 조수가 된다. 그의 집에 들어간 영걸은 이 집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경미(김자옥)를 만나고 영화 초반 그에게 음료수를 건넨 여자는 경미와 동반자살을 약속했던 친구이며, 경미 역시 죽음에 매료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영걸은 이박사의 집에 죽은 자의 머리를 매주 하나씩 소포로 보내져 오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크게 세 가지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어 옴니버스 영화의 틀을 가지고 있는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는 영화 내내 ‘삶’과 ‘죽음’의 싸움을 보여주는 듯하다. 영걸은 의지로 죽음을 추방한 책 외판원, 이미 죽었으나 다시 삶을 얻어 영걸 앞에 나타나지만, 차마 영걸의 간은 빼먹지 못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랑을 얻었으니 됐다’고 말하며 다시 유골로 돌아가는 신라 시대 여자. 마지막으로 ‘죽음은 사랑의 극치요, 생의 절정’이라고 말하며 동반자살을 집요하게 권유하는 경미를 만난다. 그는 “난 언제나 라면 신세를 면하나. 하루 여섯 번을 먹어도 배가 고프니 성가셔서 얼른 죽어야겠다”고 말할 만큼 생에 가치를 두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만, 끝없이 자살을 ‘유혹’하는 경미에겐 “여자랑 죽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내가 죽고 싶을 때 원하는 사람 앞에서 죽겠다”며 자세를 바꾸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를 관통하는 영걸의 행동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단정적인 문어체 대사를 읊으며 개폼을 잡고는 있지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청년에 불과하다.
결국 영걸은 괴한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효수되어 이박사의 집에 소포로 보내지고. 그는 책 외판원 할아버지가 그랬듯, “의지가 있으면 죽지 않는다!”고 외친다. 이박사의 칼부림을 억척스럽게 이빨로 받아내는 그는 의지라고 보기엔 너무 살벌하고 광기로 보기엔 이상하게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며 크게 웃고 만다.

난 죽지 않아!
그리고 영화는 만호와 영걸이 쓰러져 있는 장면을 비춘다. 경찰이 나타나고, 이들이 만취하여 목이 잘렸다는 둥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는 영걸이 사건에 휘말릴 때마다 영걸을 심문했던 형사다. ‘내가 어릴 때 신 나게 놀아보지 못해 이 정도는 봐줄 수 있다’며 호기롭게 대신 계산을 마치는 형사를 보며 만호와 영걸은 외친다. “사나이는 의지다!! 의지야!!!”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마지막 장면은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이었는지도 모르게 하고, 검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남궁원을 쫓아가는 김자옥을 보고 있노라면 살인나비가 이박사였단 말인가? 하는 허탈한 충격에 휩싸이게도 된다. 대체 이 영화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검은 나비 남궁원

스틸은 좀 더 멋있음
영걸이 이런 모습인 이유는 아무래도 당시 김기영 감독의 상황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기영 감독은 생전에 이 영화를 회고하며 “생각하기도 싫은 쓰레기”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한다. 화려한 60년대를 보내고 맞은 1970년대는, <충녀> , <화녀>로 괜찮은 출발을 했으나 점점 더 심해지던 검열과 반공, 선전영화로 대충 편수를 채워 외화를 할당받으려는 영화 거간꾼들의 술수들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때였다. 걸작 <이어도>를 찍은 이듬해 만든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는 마치 예술적 에너지를 다 쏟고 난 후에 그간의 서러움과 불만을 폭발하듯 쏟아낸 영화처럼 보인다. 내내 나타나는 삶과 죽음의 대비는 영화 작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비유로 느껴진다.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찍으라는 대로 찍을 것인가, 찍고 싶은 대로 찍을 것인가. 김기영은 그 갈림길에서 결국 ‘의지’라는 답을 찾은 것 같다. 영화 속에 셀 수 없이 들리는 ‘의지’라는 말은 곧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다. 세월이 지나 그는 이 영화를 “쓰레기”라고 칭했지만, 78년 당시의 그에겐 반드시 필요한 배설이자, 스스로 만든 극약 처방이 아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길 위를 말 그대로 활보하는 만호와 영걸을 보면, 흡사 “이제 되었다. 나는 내 영화로 돌아간다.” 는 김기영 감독의 말이 들리는 듯하다.
P.S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는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1시간 57분의 놀라운 경험을 추천하는 바이다.
남궁원
김자옥
김정철
김만
감독: 김기영
각본: 이문웅
개봉극장 스카라극장
관람인원 14,275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