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똥파리와 욕
우리는 일상에서 욕을 하는 순간들을 종종 발견한다.
이미 욕은 일상의 우리 언어에 자연스레 안착해 있다.
기쁠 때에
“아 씨발 진짜 좆나 좋다!!” 라고 하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거나 서러울 때에는
“아~ 씨발 진짜 좆나 우울하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욕에는 ‘배설’의 기능도 숨어있다.
“아~ 진짜 우리 회사는 너무 권위적이고 너무 사람 하대하고 월급도 다른 회사에 비해 너무 적어!~ 그저께는 부장님께 서류를 제출했는데, 너는 회사에서 뭘 하냐? 우리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는 아는 거냐? 하며 재떨이를 집어 던지더라구!~ 아~ 진짜 회사 다닐 맛 안 난다.....”
라고 할 말을,
“아 씨발 이 개 좆같은 회사! 니미 씨발 내가 뭘 부족하게 했다고 지랄인데!!~ 부장 씹쌔끼! 너는 씨발놈아!! 개 씨발놈아!!! 재떨이로 마빡을 쪼개 버려야 돼!!”
라고 표현 할 수도 있다.
너무 과격한가?
물론 우리는 이런 과격한 욕을 당사자에게 찾아가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는(못한)다.
(그리고 부장님의 마빡을 진짜 쪼개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최근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독.립.영.화 를 만듦에 있어 때로는 후자의 예처럼 과격한 언어로 영화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로움도 있다.
마치 나를 구박하고 옥죄는 당사자를 향해, 비상식적인 이 세상을 향해 욕지거리를 토해내듯 자신의 의사를 영화 속에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직접 상대를 대면하지 않고서도!
물론 다른 표현법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도 많지만 나의 영화 만듦새는 이쪽에 가깝다
욕은 ‘소통의 일환’ 이기도 하다.
내가 만든 ‘똥파리’ 라는 영화에서 상훈은 자신보다 세 살이나 많은 용역소 사장 만식에게 ‘사장님’ 이나 ‘형’ 이라는 호칭 대신 ‘야! 씨발놈아’ 라고 주로 지칭한다.
만식 역시 상훈에게 ‘상훈아’ 라고 하기보다 ‘씨발놈’ 이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어느 누구도 상훈이와 만식이 서로 싫어하고 증오하기 때문에 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들은 욕이라는 것을 통해 서로와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왜 하고 많은 것 중에 욕으로 소통을 하냐고?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고 많은 언어 중에 욕이라는 것이 최적의 소통의 도구요 배설감의 극치일 때가 있다.
물론 무턱대고 욕을 하는 것은 트러블과 다툼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상훈과 만식은 서로 알고 있다.
어떤 말보다도 그들만의 언어가 서로에게 가장 심적인 마음을 근거로 표현하는 소통의 방식이라는 것을.
자신들이 표현키 어려운 보편적인 말보다, 보편적인 말의 위안보다, 보편적인 생각의 표현보다 오히려 자신들이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욕으로 한바탕 풀어내는 것이 더욱 시원하고 친근하고 깔끔하다 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물론 아무 때나 아무 자리에서나 욕을 한다면 친구의 숫자가 줄어나갈 위험도 있다.
타이밍을 자알 맞추어서 친한 친구와 욕으로 함 소통해 보라!~
궁합이 짝짝 맞아 들어가는 순간 당신은 친구와 함께, 세상에 대해 우주에 대해 시원스레 욕을 하며 해방감을 맛보는 스스로를 발견할 것이다.
시원한가? 시원하다는 거 다 안다!!
세상과 직접 만나서 욕을 하지 않아도 우주와 직접 만나서 욕을 하지 않아도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다!
나는 이렇게 ‘똥파리’ 라는 친구를 통해 욕 하고 싶은 (커다란)존재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영화 안에서 시원스레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이것으로 인해 누군가의 머리를 실제 재떨이로 쪼개지 않고도 그와 흡사한 배설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아마 매번 관객과의 대화 때 상훈이를 연기했던 나에게 욕을 해달라고 했던 그 많은 수의 중년부인과 많은 수의 20대의 청춘 남녀들 많은 수의 중년 남성들도 나를 통해 이런 욕구, 욕망의 배출을 시도했으리라~
이 체험, 여러분들에게도 선사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