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의 OST
[비장의OST]캔디맨 (버나드 로스, 1992)
작곡가: 필립 글라스 Philip Glass
‘도시 전설(Urban Legend)’이란 게 있다. 근거는 없지만 사실처럼 떠도는 이야기들. 얼마 전 인터넷에선 모 우유 회사의 어느 감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그의 이름이 찍힌 우유가 다른 감수자들의 우유 맛보다 조금 진하다는 것. 이에 한 매체가 취재한 기사에 따르면 전혀 근거 없는 낭설로 밝혀졌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언제든지 주변을 떠돈다. 그게 조금 무서운 이야기라면 더더욱 흥미를 자아내고 인기를 얻는다. 한국 폐가로서는 이례적으로 CNN 뉴스까지 탔던 곤지암 정신병원을 비롯해,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만날 수 있다는 소복 입은 여자 괴담이라든지, 엘리베이터 한층 밑에서 내려 칼을 들고 계단을 뛰어오르는 아저씨에 대한 괴소문 등과 같은. 진위나 타당성 따윈 상관없이 오로지 관심과 재미로만 소비되는 이 구전 신화는 대중의 호기심과 확증적 편향에 따른 결과물로 알게 모르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캔디맨> 역시 이런 야담과 실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리고 이를 굉장히 잘 활용한 호러영화다. 유명한 호러작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클라이브 바커의 단편 「The Forbidden」을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도시 전설을 다룬 영화답게 입소문을 타며 흥행에도 제법 성공했다.

캔디맨
도시 전설을 연구하는 헬렌. 그녀가 관심을 가진 건 거울 앞에서 ‘캔디맨’을 소리 내 다섯 번 부르면 등 뒤에서 갈고리를 찬 흑인이 나타나 배를 갈라 죽인다는 소문이었다. 실제 사건이 일어났다는 장소를 찾아 탐문하던 그녀는 이 이야기가 1890년 남북전쟁 후 부를 축적한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난 남자의 죽음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노예 출신이었지만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상류사회에서 성장한 다니엘은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따랐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부유층의 초상화를 그리며 명성을 얻었다. 그러던 중 어느 부유한 지주의 부탁을 받아 딸의 초상화를 그리다 그녀와 금지된 사랑에 빠져 임신시키고 만다. 이에 격분한 지주는 그의 죽음을 사주했고, 다니엘은 곧 붙잡혀 오른손을 잘리고 온몸에 꿀이 발린 채 벌에 쏘여 죽게 된다. 그 시체는 불태워져 카브리나 그린 지역에 뿌려졌는데, 지금까지도 그 원한을 잊지 못한 그가 나타나 보복을 하고 있다는 것. 헬렌 역시 그런 캔디맨과 조우하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그녀 주변에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현대인의 소외와 도시의 공허함, 사랑과 운명을 잿빛 톤으로 담아낸 버나드 로즈의 연출은 현대음악의 거장인 필립 글래스의 스코어와 만나며 더욱 명징하고 강렬하게 꾸며졌다. 스티브 라이히와 라 몬트 영, 테리 라일리 등과 함께 미니멀리즘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필립 글래스는 1937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현대음악가로, 시카고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하였으나 무조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며 뉴욕의 줄리어드 음대에서 본격적으로 작곡을 공부했다. 그러나 조각나고 무질서한 우연의 음악과 복잡한 불협화음의 모더니즘에 싫증을 느낀 그는 유럽에서 ‘음악가의 음악가’라 불리는 나디아 불랑제에게서 화성학과 대위법을 배우고, 인도의 시타르 연주자인 라비 샹카르와 타악기 연주자 알라 라카 등을 만나면서 자신의 방향성에 대해 깨우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멜로디와 화음, 리듬에 있어서 놀랄 만치 진보적이라 말할 수 있는 단순함(minimal)이었다. 그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1960년대 말부터. 20세기 중엽 고전음악의 화성과 음조의 특징적인 복잡성을 배제하고, 하나의 코드, 짧은 모티프 등 최소한의 소재에 집착하며 단조롭게 반복되지만 조금씩 변주되는 형태의 협주곡들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작고 단순한 리듬과 멜로디가 끊임없이 반복되며 변화를 수없이 거듭해 급기야 트랜스 상태까지 이끌어내는 이 일련의 종교적이고 초월적인 느낌의 조화로운 소리들은 전후 예술사조 전반에 불었던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표현했을 때 현실과 작품과의 괴리가 최소화되어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믿음’과 맞아떨어지며 각광받기 시작한다. 글래스는 이에 멈추지 않고 행위예술과 발레, 오페라 그리고 영화와 영상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 손대며 최근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필립 글라스는 이 영화를 위해 파이프 오르간과 합창단을 대동한 고딕 스코어를 완성해냈다. 그러나 호러영화에서 자주 들리는 음향과도 같은 전위적인 사운드나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던지는 스케일의 압박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단출하지만 아름다운 피아노와 영혼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코러스의 위력이 만만치 않다. 우중충하고 몰개성적인 도시의 획일적인 풍광에 그의 장중하고 거룩한 선율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미니멀리즘의 반복되는 단순한 멜로디 라인은 도심의 비슷한 외형에서 오는 고독과 공허, 소외감에 밀접하게 맞닿아있고, 그 속에서 조금씩 섬세하게 변주되는 과정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을 상징한다. 점층적이고 고조되는 리듬의 진행은 드라마를 야기하고 서사를 부여하며 새로운 도시의 신화를 창조해간다. 글래스는 이미 이전의 고드프리 레지오 감독의 <코야니스카시>와 <포와카시>를 통해 현대인의 다양한 초상과 사회에 대해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경이와 감동을 표현한 바 있기에, 이 기시감을 통해 전혀 다른 전율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현재의 헬렌은 거울을 통해 과거의 다니엘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되는데, 그들의 대칭적인 위치와 배경(백인과 흑인, 여성과 남성, 글을 쓰는 대학원생과 그림 그리는 화가, 배우자의 불륜과 강제로 헤어진 안타까운 사랑)에 대한 균형감을 잡는데 글래스의 반복과 변형은 커다란 중추로 작용한다. 일반적인 영화음악처럼 미키마우징이나 언더스코어 역할에 그치지 않고, 미니멀리즘이란 형식 자체가 영화의 주제에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완성본을 처음 본 필립 글래스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애초 버나드 로즈가 음악을 부탁하며 건넸던 창조적인 함의의 스크립트와 달리, 예산의 한계로 인해 엉성하게 만들어진 뻔하디뻔한 할리우드 호러/슬래셔 영화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편에 실망했음에도 스튜디오에서 기획한 속편을 위해 그는 4개의 큐들을 새로 작업했고, 원 스코어를 편곡해 전편과 이어지면서도 독자적인 매력을 갖춘 사운드를 완성해냈다. 그의 스코어는 속편에서도 여전히 고딕적이고 장엄하며, 아름다우면서도 소름 끼치는 선율을 들려주었다. 1편의 ‘헬렌의 테마’에서 피아노와 합창을 통해 숭고하면서 비장한 슬픔이 묻어났다면, 2편의 ‘애니의 테마’에선 피아노와 솔로 소프라노로 처연한 아름다움과 운명론적인 굴레를 보여주었다. 글래스의 스코어는 단순히 싸구려 호러로 전락할 수 있는 영상에 진중한 주제의식과 무게감을 부여했고, 굴곡진 역사의 아픔 속에서 산화되었다가 20세기말 핏속에서 부활한 캔디맨에게 어울리는 오라토리오를 선사했다. 그의 <캔디맨> 스코어는 <싸이코>의 ‘The Murder’나 <오멘>의 ‘Ave Satani’, <엑소시스트>의 ‘Tubular Bells’이 가진 전위와 공포감과 또 다른 무시무시한 마력을 전달한 스코어로 기억될 것이다. 이후 글래스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의뢰를 받아 토드 브라우닝의 1931년 걸작 공포영화 <드라큘라>의 새로운 스코어를 작곡하며 자신의 호러적인(?) 역량을 다시 한 번 과시했고, 영화음악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화와 요청에 못 이겨 2001년 그간 미발매 상태였던 <캔디맨> 1, 2편의 음악을 함께 담은 사운드트랙을 발매했다. 사실 필립 글래스의 우려와 달리 <캔디맨>은 평범한 할리우드 슬래셔 호러로 전락하지 않았다. 비디오용으로 출시된 3편의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버나드 로즈의 뒤를 이어 속편을 완성한 빌 콘돈의 2편 역시 캔디맨의 근원에 대해 장르적으로 접근하는 독특한 질감과 분위기를 가진 호러가 되었다. 원작이 가진 캐릭터의 힘이나 감독들의 연출력보다는 필립 글래스가 걸어놓은 압도적인 주술의, 완벽한 저주와도 같은 음악 덕분이 아닌가 감히 생각해본다. 미묘하게 변해가는 단순한 선율을 통해 세상의 이치와 가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부단한 노력은 캔디맨처럼 영생을 얻었다. 그 사랑과 고통의 찬가는 달콤하고 짜릿하다. (사운드트랙은 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F-0751)에서도 접할 수 있다.)
‘The Murder’ by Bernard Herrmann
1. Music Box
CANDYMAN SUITE
2. Cabrini Green
3. Helen's Theme
4. Face to Razor
5. Floating Candyman
6. Return to Cabrini
7. It Was Always You, Helen
FROM CANDYMAN II
8. Daniel's Flashback
9. The Slave Quarters
10. Annie's Theme
11. All Falls Apart
12. The Demise of Candyman
13. Reverend's W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