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이용관 -평론
현재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활약하고 있는 이용관의 영화이력이 비평가의 길에서 시작되었음을 아는 젊은 세대는 많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90년대 한국 영화비평사를 재구성하고자 할 때 우리는 이용관이라는 이름이 정확히 교통의 요충지와도 같은 위치에 놓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 그의 활동의 텍스트에 해당하는 비평들과 그 컨텍스트에 해당하는 저널 모두가 하나의 시대가 접히고 또 다른 시대가 펼쳐질 수 있게 해준 경첩과도 같은 기능을 했다는 뜻이다. 이용관이 비평가로서 지낸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주목 받아 마땅한 이유도 바로 그와 같은 역사성에 힘입어서다.
19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 영화비평사는 50년대 이래로 일관되게 견지되어온 리얼리즘론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물론 지금 우리는 당시의 리얼리즘 영화비평의 존립 근거가 오직 억압적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정신이었을 뿐, 그 논리적 정합성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느슨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주류 상업영화, 구체적으로는 할리우드 영화의 장르 관습과 스타일에 대한 반감과 폄하, 유럽 예술영화 전통에 대한 호감과 지지를 골간으로 하는 50년대 이래의 리얼리즘 영화론은 90년대 중반 포스트모더니즘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강제되기 전까지는 비교적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다만 90년대 한국 영화비평사가 이전 시기와 달랐던 점은 기존 리얼리즘 비평담론의 틀거리 안에 있으면서도 좀더 정교한 비평적 세공의 노력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인상 비평에서 형식 비평으로의 전환이었다. 그리고 이용관은 그러한 노력의 선두에 서 있었다.
이용관의 평론작업은 계간지 『영화언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1989년 봄에 창간된 이 잡지의 편집진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전양준, 정성일, 정재형, 조재홍, 강한섭, 김소영, 박평식, 변재란, 신강호, 양윤모, 이충직, 이정하, 이효인, 김영진 등, 가히 이후 한국영화계 주역들의 모임이었다. 그 속에서 이용관은 영화 텍스트의 스타일 분석에 입각한 작가주의 비평으로서 좀더 고유한 색채를 부각시켰다. 그가 『영화언어』에 처음 기고했던 글 「<바보선언>에서 드러나는 대안적 측면」은 그의 이러한 비평적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상당히 긴 이 글에서 이장호를 한국영화에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는 작가로 간주하면서 그 근거로서 <바보선언>의 장면 나누기, 서술구조, 장면화, 촬영법, 편집 등을 두루 검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특히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의 분석방법론을 참조했다. 하지만 보드웰의 논의가 영화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접근을 차단하면서 온전히 텍스트의 형식적 차원이 관객과 어떠한 인지심리학적 관계를 형성하는가에 몰두했던 데 반해, 이용관의 비평적 목표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미학을 정착시키고자 함”이었다는 점에서 은연중 민족주의적 기미를 띠고 있었다. 아마도 그러한 경향성은 80년대를 거쳐온 세대가 보유할 수밖에 없는 시대정신의 한 단면이었을 것이다.
이후 그는 스타일 분석에 도움이 될 많은 영화이론서들을 번역하는 한편, 비슷한 방식으로 배창호, 장선우의 작가성에 주목했으며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과 장길수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형식적 타협을 비판했다. 이처럼 영화를 문학처럼 읽어내는 게 아니라 영화로서 보아내는 데 충실했던 그의 비평은 당대의 비평가 그룹에게, 또 비평가 지망생들에게 의미 있는 영향을 끼쳤다. 90년대로 접어들어 이념적 지향이 모호해진 상황에서, 영화비평이 주제비평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면서 텍스트의 형식적 의미작용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은 상당 부분 이용관의 공이었다. 그렇게 『영화언어』와 이용관은 운동 진영 출신 비평가들과 시네필 출신 비평가들에게 공존의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한국 영화비평사에서 그토록 간명하게 자기 시대를 압축했던 평론가를 나는 이용관 외에는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