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용삐용B무비
[삐용삐용B무비]광녀
박노식, 1975
박노식 감독의 세계를 가장 절묘하게 드러내는 두 작품을 고르라면, 단연 <왜?>(1974)와 <광녀>(1975)다. <왜?>의 경우 박노식의 영화사상 유례가 없는 엽기적 1인 2역을 볼 수 있고, <광녀>는 광녀의 기억을 되찾아주기 위한 처절한 복수의 방식이 거의 ‘광기의 연출’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시작부터가 심상찮다. ‘광녀’라는 글자가 새겨지고 느닷없이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광녀일 것이다. 너무나도 친절한 텍스트와 사운드의 대위법이다. 그리고 거칠게 달리기 시작하는 트럭이 괜히 두꺼비와 뱀을 밟고 지나간다. 정말 잔인하다. 박노식 감독은 굳이 ‘이 영화는 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고한 살상을 감행한다. 박노식, 문오장, 박근형, 최성호, 장혁 등 각자의 범인 서류를 통해 이름을 보여주는 크레딧 또한 명쾌하다. 마치 초등학생 같은 연출 스타일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후의 광기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B무비 감독 박노식의 태도다.

오프닝 크레딧(‘감독 박노식’은 정말 뜬금없이 나온다)
일제 강점기, 은행을 털다가 체포되어 수감된 박동식(박노식) 패거리는 탈옥에 성공한다. 박노식이 연기하는 박동식은 이름에서 한 글자만 도둑질해서 바꿔치기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도둑질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어쨌건 다섯 일행 중 한 명은 돈의 행방을 알고 있다. 그들이 각자 감옥에 갇혀 있는 모습을 수평 트래킹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살짝 과장 섞어 얘기하자면 마치 자크 따띠 감독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연극적 세트다. 세월이 무상하게도 그들 중 ‘꽃할배’ 박근형이 연기하는 ‘광일’이 막내다. 가장 어려서 안전하다는 이유로 그는 돈의 위치를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가장 믿음직한 동식에게만 귓속말로 알려준다. 당연히 나머지 사람들은 돈의 위치를 너무나 궁금해 하고, 돈에 환장한 그들을 시끄러운 돼지들과 무려 한 쇼트로 처리한다. 박노식이 볼 때 굳이 컷을 나눌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비밀장소에 묻어둔 거액을 찾아낸 동식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난다. 세월이 흘러 해방이 되고 서울에 돌아온 동식은 나머지 패거리들이 광일의 부모와 또 다른 일행 송노인을 죽인 후 돈을 착복한 사실을 알아낸다. 더구나 결혼을 약속했던 송노인의 딸 순옥(여수진)은 미쳐있다. 패거리 일당들이 순옥에게 몹쓸 짓을 한 것. 이제 돈에 미쳐버린 그 악당들을 향한 동식의 분노의 복수가 시작된다.

(위에서부터)수평 트래킹, 돼지우리 밖 패거리들, 귓속말, 광녀, 송노인의 죽음,
순옥을 강간한 원숭이들, 복수의 끝은 늘 112
박노식의 연출작들은 하나같이 일관된 흐름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아니, 감독 스스로 그러한 것을 거부하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나마 <광녀>는 윤삼육 작가의 각본 혹은 ‘대륙물’이라는 기본적인 얼개 덕분인지, 복수극이라는 박노식 특유의 테마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의 다른 연출작들에 비해 나름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여러 불가해한 장면들이 주는 효과는 실로 강렬하다. 지난 2011년 6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광녀> 상영 후, 박노식 감독의 거의 모든 영화에 출연했던 원로배우 김영인과 류승완 감독의 GV가 있었는데, 김영인이 얘기하는 박노식 감독의 세계는 명확했다. “박노식은 고증이나 서사의 연결 같은 걸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고, 오직 특정 장면의 힘과 목적만 생각했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보여주는데 설마 몰라?’하는 초등학생 같은 연출과 ‘내가 감독이라서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어쩔 것이여?’하는 안하무인의 연출이 그 영화 안에서 마음껏 충돌할 수 있었다.

김영인 배우 GV (2011)
역시 가장 논란이 되는 충격적 장면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식으로 광녀의 기억을 되찾아주는 장면이다. 정신분열증과 기억상실증이 절대 같은 것이 아닐 텐데, 마치 기억상실증을 치료하는 것처럼(수많은 다른 영화에서 본 것처럼,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재차 또 다른 충격으로 인해 원래 기억을 되찾는 경우) 광녀를 대한다. 말하자면 범인 일행 중 유일한 여자인 미화를 강간하면서 광녀가 제정신이 되는 것이다. 벌건 대낮에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영문도 모르는 관찰자까지 뒤엉켜 벌어지는 그 처참한 복수는 보기에 불편할 뿐만 아니라 ‘감독인 나만 이해하면 됐지, 굳이 관객 모두 납득시킬 필요는 없어!’ 같은 태도를 취한다. 누군가는 그저 두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독창적(?) 복수라 느낄지도 모른다. 어쨌건 정말 끔찍하다.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정신이 돌아오는 순옥
1995년 출간된 박노식 자서전 「박노식 은막 43년의 고백: 뻥까오리 백작」에 따르면, 과거 학창시절 중절모를 일본말로 ‘나까오리’라 불렀는데 박노식은 까까머리임에도 하얀색 중절모를 쓰고 다녔다. 그런데 하도 ‘뻥’을 잘 쳐서 사람들이 ‘뻥까오리’라 불렀다. 어쩌면 <왜?>와 <광녀>를 관통하는 그의 B무비 정신이 바로 뻥까오리 정신이다. 남들보다 튀어 보이기 위해 나까오리를 쓰고 다녔던 것처럼 뒤늦게 감독이 된 그도 무조건 남들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령 <집행유예>(1973)는 술집 웨이터 폭행사건 등 “폭행사건으로 하도 집행유예를 많이 당해서 만들고 싶었던” 영화인데, 여기서 <대부>(1972)에 대한 황당무계한 패러디가 나온다. <대부>에서 돈 콜레오네(말론 브란도)의 요구를 거절한 영화제작자의 침실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말 머리(그 제작자가 아끼던 말의 머리)를 넣어둬 복수한 것처럼, <집행유예>에서는 장인어른이 ‘될 뻔’ 했던 남자의 침실에 잘린 사슴 머리(역시 약혼녀의 아버지가 애지중지 집에서 기르던 사슴의 머리)를 넣어둔다. 자,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다. 나는 여기서 ‘남들은 말을 사슴으로 바꿨다고 해서 양심 없는 모방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를 놔뒀으니 결코 모방이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박노식의 환상을 본다. 그날 GV를 정리하며 김영인은 그 박노식의 매력에 대해 이성적, 논리적 분석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족보 없는 연출’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꿰뚫는 촌철살인의 명언을 남겼다. “박노식은 인간이 되기 이전에 배우가 되고 감독이 된 사람이다.”
박노식
여수진
문오장
장혁
감독: 박노식
각본: 윤삼육
개봉극장: 피카디리
관람인원: 12,584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