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우디 알렌이 수상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다는, 이 오래되고 진부하기까지 한 말이 너무도 실감나는 요즘인 것 같다.
얼마 전 ‘너구리’라는 라면을 끊여먹는데, 그 안에 하나씩 들어있어야 할 미역조각이 두 개나 들어 있었다. 그 사소한 일에 대해 마치 하늘에 해가 두 개 뜬 것처럼 기이한 느낌이었다고 말하면 너무 과장하는 것이겠지만, 신라 승려 융천사처럼 <혜성가>라도 지어 불러야할 듯싶을 정도로, 세상은 지금 4월의 폭설만큼이나 기묘한 사건들에 휩싸여 있다.
세상이 뒤숭숭할 때면, 혹은 세상을 좀 더 뒤숭숭하게 만들기 위해 늘 등장하던 간첩사건,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조만간 조직사건도 하나 터질지 모른다. 이름은 아마도 늘 그렇듯이 상투적인 ‘자주대오’가 아닐까? 너무 자주 나오는 대오다. 이러다가는 우디 알렌의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도 간첩사건으로 엮일지 모른다. ‘자주’니깐. 입국을 거부당하는 우디, 거물간첩으로 조사받는 알렌, 잘하면 그의 영화보다 더한 코미디도 가능할 듯싶다.
이제 더 이상 독립영화하면 독립운동을 떠올리거나, 인디영화하면 <인디아나 존스>요? 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독립영화에 대한 그런 인식의 저변확대와는 무관하게 독립영화의 제반 조건은 현재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독립영화를 마치 충무로 상업영화의 마이너리그쯤으로 여기는 말하자면 ‘독립영화 2중대론’(독립영화는 한국영화를 살리기 위해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경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지금은, 지면 관계상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겠지만, ‘독립영화 핫바지론’이라 부를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지금 여기저기 좌파 솎아내기 작업이 한창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좌파란 무엇인가? 이란의 영화감독 좌파르 파나히(Jafar Panahi)? 아니면 미국 가수 프랭크 좌파(Frank Zappa)? 이러다가는 옛날 <웃찾사>의 ‘화상고’도 좌파 개그가 되겠다. 그 코너에서 키 작은 개그맨이 권법 수행 시에 외치는 구호가 이러했으니 말이다. “좌파! 좌파!(쭤뻐쭤뻐)” 어쨌거나 여기 독립영화진영에는 좌파가 없어서 다행이다. 아니 불행인가?
사실 모든 독립영화는 다 혁명적인 것이다. 그것은 독립영화감독이 혁명적이거나 그들이 혁명을 원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독립영화가 담고자 하는 ‘진실’이라는 것 그 자체가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진실을 발설하려는(혹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자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혁명적이 되는 것 아닌가?
아무튼 이 모든 상황을 하나의 ‘톰과 제리’로, 아니 ‘통과제의’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물론 엎어진 김에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독립영화 내에서 자생적 철학이 생겨날 수 있는 때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본능적으로 독립영화인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