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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어려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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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절(Hard Times)’. 찰스 디킨스의 소설 제목이 이즈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발흥하는 자본이 인간을 짓밟으며 산업화에만 박차를 가하던 어두운 날들을 묘파한 19세기 소설 제목을 굳이 곱씹게 되는 이유가 무얼까. 바다를, 하늘과 땅을 둘러봐도, 온통 마음이 시렸던 추운 봄을 겪었기 때문일까. 

독립영화 진영도 예외 없이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독립영화인들의 십 년 염원이 낳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작년 말 휴관하면서, 독립영화를 개봉관에서 만나는 기회가 확 줄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독립영화계는 많은 작품을 내놓는 활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정부가 영화 지원 역할을 위임한 범국가 부문 전문 기구(Wider State Sector)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지원에 일정 정도 힘입은 바 크다. <시> <하하하> 등이 상을 받은 올 칸국제영화제에서도, 외신 기자들은 한국영화 ‘경쟁력’의 진원지로 영진위 등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지목했다. 그러나 올해 초, 독립영화 배급과 제작의 중추인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영진위는 불공정 논란에 휘말렸고, 독립영화 제작 지원 심사 과정도 물의를 빚고 있다. 

6억4천만 원을 지원하는 이번 독립영화 제작 지원 심사 문제의 진원지는 당혹스럽게도, 심사를 공정히 진행해야 할 지원 주체인 영진위 위원장이다. 2010년 상반기 독립영화제작지원 1차 심사가 진행 중이던 5월 13일부터 나흘여 동안, 칸국제영화제 출장 중이던 조희문 위원장이 심사위원 9인 중 일곱 명에게 국제전화로 특정작품을 지원작으로 선정해달라고 요구했다 한다. 이는 지난 5월 20일 열린 ‘영화진흥위원회 상반기 독립영화제작지원 심사 과정 중 자행된 조희문 위원장의 불공정한 외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심사위원 9인 명의로 발표된 회견문에 적시되었다. 심사위원 9인은, 조희문 위원장이 ‘내부 조율’ 혹은 ‘발란스’를 언급하며 “특정 접수 작품을 심사위원에게 강요하였다”며, “이러한 행위는 심사위원 9인 모두에게 인격적으로 불쾌함을 주었으며, ‘공정 심사’란 대의명분에 실로 중대한 도발이었”다고 밝혔다. 또,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기를 원하며, 그러기 위한 주무관서의 대책 혹은 방지책을 엄히 요구”하고, “그간 자행된 인격모독 및 심사 불공정 행위에 대하여 조희문 위원장 본인의 ‘공식 사죄’를 정히 요구”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를테면 선거를 공정히 관리해야 할 선거관리위원장이 부정 선거를 자행한 셈이다. 게다가 조 위원장이 선정을 요구한 세 작품 중 다큐멘터리 한 편에는 위원장 자신이 인터뷰이로 출연하는 등 제작진과 관련이 있음이 알려져, 지원작 선정에 영향을 미치려 했던 행위가 ‘업무상배임(業務上背任)’에 해당한다며 규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조 위원장은 칸영화제가 한창이던 5월 19일 급거 귀국, 이튿날 따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심사위원들에게 특정작품에 대한 의견을 전달했음을 인정하면서도 결과적으로 그 작품들이 선정되지 않았기에 문제가 없으며, 앞으로도 위원장으로서 한국영화계의 균형을 위해 끊임없이 의견을 피력하겠다고 했다. 이 발언에 사태가 수습되기는커녕, “공공기관의 수장으로 해서는 안 될 직권남용을 정당화한 행위”라는 영화계의 항의만 빗발쳤다. 외압에도 예심에서 함량 미달의 영화를 솎아내고 공정한 1차 심사를 완수한 공은 심사위원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할 터인데, 기이한 논리를 편다는 비난도 드세졌다. 

일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영진위 감독관청인 문화체육관광부는 5월 27일 기자 간담회를 열어 “부적절한 일을 한 조희문 위원장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으면 좋겠다”며 위원장 사퇴를 공개적으로 시사했다. 적이 걱정스러웠던 이번 사태가 이렇게 일단락될 듯하니, 앞으로도 영진위가 “한국영화의 미래를 창조하는 베스트 파트너”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는 않는다. 다만, 같은 자리에서 “영진위가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직접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영화 제작 펀드를 확대하거나 인프라 구축, 국제 시장 진출 등 간접 지원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마련하길 기대한다”던 신재민 차관의 발언에, 기대와 함께 불현듯 기우도 품게 된다. 십 년 전쯤 충무로를 풍미했던, 예컨대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차 몇 천 대 수출과 맞먹는다”던 언술이 공연히 떠올라서다. 다시 한 번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을 곱씹는다. 인간을 경제적 단위, 통계적 수치로만 판단했던 당대 현실을 고발한 디킨스의 비판 정신을 굳이 되새길 일 없는 시절을 누릴 수 있기를. 

* 편집자주 : 본 글은 2010년5월31일 기준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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