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판타지 세계와 의인화 혹은 동물
극장에서 개봉되는 애니메이션의 이야기 구조는 대부분 두 가지 패턴이 많다. 첫째는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든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을 하는 경우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UP’과 ‘드래곤 길들이기’가 그렇다. 현실에서 판타지로 가느냐 아니면 원래부터 거기 사는 주인공이냐 차이는 있지만 어째든 판타지 세계가 중요한 것이다.
두 번째는 전부 동물 친구들이 나오는 것이다. ‘니모를 찾아서’나 ‘아이스 에이지’ 등등이 그렇다. 아들을 구하러 가건 따듯한 곳을 찾아가건 이 세계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게 모든 등장인물이 동물이다. 물론 두 가지를 배합한 경우가 가장 많다. 그러니까 동물들이 나와서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하는 이야기. ‘니모를 찾아서’의 ‘바다’도 ‘쿵푸 팬더’의 ‘중국’도 사실은 판타지 세계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안 그런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다큐멘터리 형식의 애니메이션인 ‘페르세폴리스’와 ‘바시르와 왈츠를’ 같은 애니메이션에는 판타지도 동물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보통의 상업적인 성과를 노리는 작품은 이 두 가지 패턴이 많다.
왜 이런 단순한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패턴이 정해져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최대한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강점을 추구해서 발전한 결과인 듯하다. 결국은 가족관객을 대상으로 볼거리와 재미를 실사 영화와 다른 측면에서 구현하기 위해 고민하다보니 흥행작품들을 뽑아보면 이런 분류가 가능해진 것 같다.
어째든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다 보면 싫든 좋든 판타지와 동물(의인화)이라는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왠지 판타지와 동물을 빼고 기획을 하다 보면 “이건 실사 영화 같잖아!” 라든지 “타깃 연령이 누구야?”라는 공포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주인공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이제 주인공이 볼거리와 모험이 있는 어디로인지 가야할 것 같은 대......”라는 기분이 들 때 시나리오가 막히고 만다.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 한국의 현실을 놓아두고. 왠지 나는 억지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이 싫다. 여기도 사실은 재미는 없지만 모험은 많다. 25일까지 카드 값을 마련해야 되고 어머니는 곧 임플란트를 하셔야 하고 내일 모레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납품해야 하는데 친한 친구에게서 힘든 일이 있어서 술 마시자고 전화가 온다. 정말 스릴 있게 느껴지지만 시나리오에 쓸 수는 없으니 주인공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특별한 세계로 가는 이야기를 만든다. 하지만 나는 그 세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기에는 현실의 인간 삶의 어떤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면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주인공을 동물 친구로 바꾼다.
시나리오가 다시 시작된다. 내 주인공은 대관령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얼룩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학여행을 온 입시에 시달리는 도마뱀 여고생에게 반하게 된다. 그래서 일단 친해질 요량으로 막 짜낸 시선한 우유를 한잔 권하면서 “공부하는 거 힘들죠?”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수학은 좀 힘들지만 이런 시간도 다 추억이라고 생각해요.”라며 해맑게 웃는 여고생. 둘은 점점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유를 짜낸 내 주인공은 수소다.) 그렇게 짧았던 만남은 아쉽게 끝나고 도마뱀 여학생은 서울로 돌아가고 얼룩소는 사랑을 위한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며칠 후 다시 읽어 보니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네. 얼룩소와 도마뱀 여고생의 종족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누가 보고 싶을까? 그런데 원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였지?”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문제는 왜 생기는 걸까? 판타지 세계를 설정하는 것은 결국 볼거리와 상징의 문제이다. 볼거리의 문제만 생각해서 판타지를 설정하면 결국 빈약한 세계관과 상징으로 관객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모험이 되는 것이다. 또 의인화는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지나치게 주제를 한정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작품의 예술성을 떨어뜨리기 쉽다. 이런 문제로 어린이에서 어른까지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는 어렵다.
로봇에다가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잘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픽사나 판타지 세계를 등장시키면서도 관계와 성장에 관한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들을 보고 있노라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FC바르셀로나 축구팀을 보고 있는 심정이 되어버린다. 세계의 벽은 높다. 히딩크 감독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한국애니메이션의 문제는 이야기의 빈곤이 아니라 체력이라고 말한다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당장 지옥 훈련을 할 텐데. 이야기의 문제는 사실 어떻게 훈련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빈약한 서사의 문제는 무엇일까? 결국은 감독이 시나리오를 써서 생기는 문제일까? 그렇다면 전문가에게 맡기자. 하지만 전문가를 찾을 수 없다. 왜인지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2년에 한편 나올까 말까 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전문 시나리오 작가가 전업하지 않고 남아 있을 리가 없다. TV용 애니메이션 전문 시나리오 작가도 적은 마당에. 그렇다고 실사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에게 시나리오를 맡기는 것도 좋은 선택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실사영화는 어떤 주인공도 대부분 인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간의 특징이나 행동은 그런대로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유바바나 접히면 상자가 되어버리는 월E의 성격묘사를, 업(UP)의 천방지축 새 캐릭터의 특징을, 디자이너와 애니메이터가 관여하지 않고 시나리오 작가 어떻게 혼자 쓸 수 있을까?
결국은 초기 기획 단계부터 스토리텔링에 재능이 있는 감독과 캐릭터 디자이너, 핵심 애니메이터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이해하는 시나리오 작가가 함께 많은 회의를 거쳐 개발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문제는 그런 자본적 여유와 인력을 제작사가 갖추기에는 한국은 시장이 작고 열악하다. 픽사도 토이 스토리를 만들기까지 스티브 잡스의 지원 하에서 10년이 걸렸다. 어째든 환경이 안 된다면 그래도 만들고 싶다는 사람이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판타지와 의인화로 애니메이션적인 재미를 주면서도 현재의 한국과 한국인과 끈을 놓지 않는 이야기를 만드느냐는 것이다. 판타지가 뜬금없지 않고 우리 삶의 축약된 어떤 단면을 보여주며 또 의인화된 캐릭터들이 유치하게 보여서 작품의 문학성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나에게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재능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창작자라면 다들 비슷하겠지만, 한국 관객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으며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만드는 것. 그걸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