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이성철 - 배급
<이영일의 한국영화사를 위한 증언록>은 이필우, 유장산 등 식민지 시기부터 활동한 영화인들의 구술채록을 담은 서적이다. 이 구술채록은 1960년대 후반 <한국영화전사> 집필을 위해 영화사가 이영일이 구술 자료로 수집, 기록한 것이다. <증언록>에는 6.25전쟁 당시 피난지인 부산에서 영화인들이 뉴스영화를 제작하는 것을 지원하고, 환도 후 문화영화 제작을 의뢰하고,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1955) 제작 당시 35mm 미첼카메라를 대여해준 공보실 영화과의 행정 관리가 등장한다. 60여 년 전 공보처(공보실) 영화과의 젊은 관료였던 이 인물이 바로 한국영상자료원의 ‘2009년 생애사’ 구술자인 이성철이다.
1950~60년대 공보처 영화과는 한국영화의 지원정책뿐만 아니라 검열 등의 통제정책을 주관했다. 따라서 공보처 영화과는 당시의 한국영화를 이야기함에 있어 중요한 기관이지만 정책과 산업 분야에서만 특정하게 언급되는 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은연중에 정책과 산업 그리고 작품과 인물이 구분 지어진 상황에서 이성철의 구술은 당시 한국영화계 내부의 여러 요소를 연결해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의미가 있다.
한국영화사의 가려진 역사를 수집하다
1922년생으로 2009년 구술 당시 88세였던 이성철 선생은 건강한 모습으로 무려 60여 년 전의 공보처 영화과에 대해서 생생한 기억을 풀어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영화인들이 술회했던 피난지 부산에서의 기억과 <춘향전>의 기억은 그의 입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되었고, 1950~60년대 아시아영화의 큰 행사였던 아시아영화제 관련 자료에서 제외되었던 공보처 영화과와 아시아재단의 면모가 구체적으로 드러났으며, 국립영화제작소의 인력과 문화영화들이 개별적으로 호명되었다. 또한 공보처 영화과의 개별 사례를 통해 1950년대 대한원조정책의 진행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부분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이성철의 구술채록은 그동안 한국영화사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영화행정가 이성철의 이력이 존재한다. 1942년 경성세무감독국 고원으로 행정업무를 시작한 그는 광복 후 총무처를 거쳐 1951년 전쟁 중에 영화과 계장에 임명되며 영화과와 연을 맺었다. 이후 1961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영화과장을, 1962년부터 1963년까지 국립영화제작소 소장을 역임한 이성철은 1950~60년대 한국 영화 행정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력으로 인해 그의 구술은 중흥기를 맞이한 상업 극영화뿐만 아니라 공보선전을 위한 문화영화에 대해 알려준다.
따라서 구술에서 드러나는 영화과장 이성철 혹은 국립영화제작소 소장 이성철의 정체성은 1950년대 또는 1960년대 초반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행정가, 검열관, 공보관, 영화 프로듀서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인물로 다채롭게 해석할 수 있다. 1950년대 한국영화는 열악한 제반 환경으로 인해 공보실 영화과와 국방부 영화과 등의 정부부처나 미공보원과 아시아재단 등의 대외기관에서 일정 부분 지원과 원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영화과장 이성철의 역할도 경우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그가 “영화과 업무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검열’의 담당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인들이 <증언록>에서 이성철을 검열관이 아닌 조력자로서 기억하는 데에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제1공화국부터 제4공화국까지 영화과장, 국립영화제작소 소장, 주일공보관장,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이사, 주LA총영사관 문화원장을 역임한 구술자가 대한민국 정부의 공보선전정책의 기조와 목표를 바탕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에서는 행정가, 공보관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국립영화제작소를 캐나다 국립영화제작소(National Film Board of Canada)를 역할모델로 삼아 영화 인력을 육성해 예술로서의 문화영화를 제작하는 기관으로 만들려 했다는 술회, 그리고 그러한 목표가 좌절된 것에 대해 반복적으로 아쉬움을 드러내는 그의 태도에서는 영화인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1942년부터 1979년까지 40년 가까운 시간을 행정관리로 재직하고, 공무원 퇴임 후에도 포스트프로덕션을 운영한 그의 활동 이력은 6회의 구술채록으로 충분히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식민지 시기부터 광복과 전쟁, 4.19와 5.16, 한일회담, 코리아게이트에 이르는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에 관한 구술과 더불어 행정 관료로서 영화과의 검열 및 지원 정책, 대한원조프로그램에 따른 아시아영화제 참가와 미국연수프로그램에 대해 상세히 풀어놓은 그의 구술은 어찌 보면 한국 현대사 그 자체일 수 있다.
이와 같이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다양한 결로 접근할 수 있는 이성철의 구술은 비단 화려한 이력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의 구술은 식민지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삶을 드러내는 개인사이기도 하다. 과거의 일들을 증언하고 회고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구자와 함께 과거의 사건을 토론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며 성찰적인 자세를 보여준 이성철 선생의 구술은 구술채록연구가 단순히 수집?기록을 위한 사료가 아니라 구술자와 연구자의 공동작업이라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