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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용삐용B무비]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정진우, 1981

[삐용삐용B무비]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대표 이미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를 사실 경박하게 ‘삐용삐용’ B무비로 언급하는 것은 무척 난감한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실제로 보지 않은, 하지만 영화제목만은 다 알고 있을 사람들은 대부분 B스럽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처럼 한국영화계에서는 뜻하지 않게 B의 운명을 타고난 영화들이 있다. 대부분 영화제목 때문이다. 입으로 울어야 할 앵무새가 몸으로 울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 앵무새가 영화 속에서 언어장애인인 정윤희를 비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처럼 슬픈 제목이 없다. 대사로 자신의 슬픈 내면을 드러내야 할 정윤희가 그저 하염없이 말 못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외모만 탁월하고 연기가 부족한 정윤희를 위해 그런 앵무새 설정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정윤희는 앞서 만들어진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와 더불어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두 편으로 2회 연속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뭐랄까, 한국영화사를 통틀어 단 한 명의 ‘여신’을 꼽으라면 단연코 정윤희다. 
 

일단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는 도입부부터가 B스럽다. 알다시피 정진우 감독은 한국영화사에서 <율곡과 신사임당>(1978)을 통해 최초로 동시녹음을 시도한 선구자다. 그래서 매번 영화가 시작할 때마다 당당히 그 사실을 공표했는데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또한 ‘제6회 동시녹음 작품’이라는 대문짝만한 문구를 선보이며 시작한다. 자랑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바로 카메라 자랑으로 이어진다. ‘TODD-AO 카메라 제1호 작품’이라는 문구도 뜨는 것. 더구나 뒷배경으로는 본 영화와 전혀 상관없이 전장의 폭발 장면이 보이고, 손현채 촬영기사가 촬영부 퍼스트로 보이는 인물과 함께 한 바퀴 뱅그르르 돈다. 왠지 당시 활동했던 분들은 ‘촬영감독’이 아니라 ‘촬영기사’라 불러야 그 아우라가 살아나는 느낌인데, 아무튼 화려한 필모그래피에 비해 한국영상자료원 데이터베이스에 증명사진 하나 없는 손현채 촬영기사의 얼굴을 그렇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초분>(1977), <피막>(1980), <뽕>(1985), <내시>(1986) 등 이두용 감독과의 작업으로 유명하다.
 
기술의 과시
기술의 과시

영화는 홀아비 최영감(황해)의 회한 가득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벌판에서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내려오는 문(최윤석)과 수련(정윤희)의 환상을 본다. 그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자신의 혈육이 아닌 문과 수련을 데려다 키웠는데, 바깥에는 친남매로 알려진 그들이 사랑에 빠지게 됐고 최영감은 내내 그것을 막으려했다. 어떻게 보면 요즘 TV 막장드라마(?)의 흔한 설정으로 느껴지는데, 어쨌건 그 무엇도 그들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사랑 앞에서 무엇을 감추랴? 대자연도 숨죽인 강렬한 육체언어!”라는 포스터 카피가 인상적이다. 결국 최영감은 “제발 인간 좀 되라”며 문을 서울로 보내버리는데,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괜히 지나가는 행인들과 어깨를 부닥치고 멀쩡한 전봇대를 부여잡으며 서울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던 그는 결국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렇게 두 사람이 모처럼 다시 만나는 장면이 압권이다. 저 멀리 쓸쓸한 표정으로 있는 수련을 발견하자마자, 문은 마치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물속으로 뛰어든다. 당시로선 보기 드문 수중 정사신이 그렇게 탄생했다. 이 장면을 위해 오대산 금강연에서 산소통을 메고 촬영에 임했던 손현채 촬영기사는 15번에 걸친 NG 끝에 호흡기를 놓쳐 심폐소생술로 살아났다 한다(그런 그에게 대종상은 촬영상을 안겨주었다).그렇게 그들은 뭍으로 나와서도 대충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는 서로의 몸을 탐한다. 
 
뭍으로 나온 그들
뭍으로 나온 그들

이후 정윤희의 팬으로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하지만 영화적으로는 더욱 드라마를 풍성하게 해주는 설정은 바로 어느 순간부터 문을 쫓아다니게 되는 숙(김형자)의 등장이다. 사실상 영화 속 대사의 절반 이상을 책임진 숙은 시도 때도 없이 문에게 들이댄다. 그러면서 자신의 얘기를 구구절절 들려준다. 어려서 살던 섬을 떠난 그녀는 부푼 꿈을 안고 뭍으로 나왔지만 결국 건달과 엮여 인생이 꼬이게 됐다. “저 하늘에 구름이 왜 이리 많을까요”부터 “인간은 고무공과 같을지 몰라. 이리저리 튕겨나가고 싶으니까”라며 거의 시적인 대사들을 남발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는 관심도 없이 걷고 있는 문을 향해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천당인가요? 지옥인가요? 아니면 좀 쉬어서 가요”라고 말하는 그 모습이 처음에는 지겹다가도 어느덧 적응하게 되는데, 김형자 역시 이 작품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어쩌면 이 영화의 주제도 떠다니는 삶에 대한 회한을 담은 숙의 대사다. “저 기차는 어디로 가는 기차일까요. 기차를 오래 타면 엉뎅이가 아파요. 그래서 마음 내키는 대로 걷다가 다시 타고 내리고 반복하죠. 그러다 해가 저물고 다음날이면 트렁크를 들어다주는 말없는 사내를 만나게 되요. 그게 인생인 거예요.” 그런 숙이 기어이 문을 성(性)적으로 굴복시킨 다음, 자신의 기둥서방과 문이 뒤엉켜 싸우는 장면과 숙이 화장을 고치는 모습을 교차 편집시키는 대목은 압권이다. 마치 ‘에라이, 남자들이 원래 그렇지 뭐’ 라는 생각으로 지켜보던 숙은 “됐어요, 이제 그만!”하며 불쑥 그 싸움을 말린다. 싸우는 남자들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다. 괜히 큰 사고라도 나면 자기만 귀찮아지니까. 그리고는 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바이바이” 떠난다. “여기가 우리들의 종착역인가 봐요. 어차피 내릴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첫 번째 정거장에서 내리는 게 나아요. 어쨌건 당신은 내 가슴이 여전히 뛰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멋진 남자에요. 세월이 흐르면 별난 추억이 될 거에요. 그럼 안녕~.” 실로 멋진 퇴장이다. 그렇게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를 보고 그 속편의 느낌으로 정윤희에게 하트를 뿅뿅 발사하며 본 영화였다가, 뜻하지 않게 김형자를 발견하게 된 영화였다. 
 
김형자, 김형자, .... 김형자
김형자, 김형자, .... 김형자

끝으로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도저히 볼 수 없는 나이로 이 영화를 보면서 충격 받았던 두 개의 장면을 얘기하며 마무리할까 한다. 알부자로 소문난 최영감이 동료 철도노동자들과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최영감을 흠모하고 있던 술집 여주인이 “과부 사정은 홀애비가 안다”며 느닷없이 최영감의 바지를 풀어 손을 쑥 집어넣는다. “과부 사정은...” 운운하는 대사야 워낙 익숙했지만 사람들이 가득한 술집에서, 그러니까 파티션도 쳐져 있지 않은 술집에서 직접 바지를 풀어버리는 그 여주인의 기개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는 최영감이 귀갓길에 사온 핑크빛 ‘신식 고쟁이’를 정윤희에게 선물하고 바로 입어보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전후한 이야기의 진행을 전혀 떠올리지 못할 만큼 강렬했다. 그러니까 정윤희가 초반에 나뭇잎으로 몸을 두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런 란제리가 없었기 때문인 것. 게다가 아무리 딸이라도 피 하나 섞이지 않은 딸이 그 차림새로 아버지의 등도 밀어주고 비누칠도 해주니, 그 장면이 줬던 묘한 긴장감은 그야말로 살벌했다. 그야말로 어린 나 또한 그 장면에서 몸으로 울고 말았다.

정윤희
황해
최윤석
김형자

감독: 정진우
각본: 김강윤, 김성화

개봉극장: 피카디리(서울)
관람인원: 169,381명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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