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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용삐용B무비]소림십대여걸

김정용, 1981

[삐용삐용B무비]소림십대여걸 대표 이미지

김정용이라는 분이 계시다. 그는 많은 권격 영화를 연출해 이름을 알렸다. 6~70년대 스크린을 수놓던 수많은 액션 배우들이 그의 지시 아래 주먹을 지르고 발을 휘둘렀다. 그 명성은 무술영화의 본산인 홍콩까지 알려져 비록 공동감독이었지만 당시 최고의 스타 홍금보와 함께 <귀타귀 2>를 만들었다. 또 죽은 이소룡의 영상을 편집해 집어넣어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한 한중합작영화 <사망탑>에 각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하며 걸작을 만드는 데 보다는, 당대에 유행하는 트렌드를 흡수하여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인기를 끄는 타입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짝퉁’이겠고 좀 더 좋게 말하면 ‘재해석’이라 말할 수 있다. 소림사를 무대로 하는 영화들이 인기를 끌자 <소림사 주방장>을 만들어 크게 히트를 쳤고, <취권>이 인기를 끌자 그는 황비홍(성룡)이 아니라 소화자(원소전)의 캐릭터를 가져와 <무림걸식도사>를 만들어 팬들의 뇌리에 큰 인상을 남겼다.(여담이지만, 이 영화에는 80~90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책임졌던 왕룡 감독이 배우로 출연하고 있다. 그는 감독 이전에 액션 배우였다.) 특히 그의 페르소나라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작품을 함께한 정진화는 앞서 말한 작품들은 물론 <복권>, <무림사부대행> 등으로 ‘짝퉁 성룡’이 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짝퉁 성룡 뿐 아니라, 짝퉁 이소룡들의 큰 형님뻘 되는 거룡, 당룡도 그를 거쳐 갔다. (이 영화들은 그나마 그의 작품들 중에서 나은 편이고, 괴작들을 찾는 팬 사이에서 더욱 유명세가 높다. 인디아나 존스와 소림 무술의 기괴한 만남 <아라한>, 한국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더 악명이 높은 강시 무협 <소화성 장의사>, 얼마 되지도 않는 한국 괴수물의 재앙 <비천괴수> 등 대부분은 자료가 없어 볼 수 없는 ‘구전 괴작’들이다.)

오늘 소개할 <소림십대여걸> 역시 그런 종류의 영화다. 소림xx제자, 소림xx방 같은 영화들이 유행하자 우리의 김정용 감독은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꾸어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에 소림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 여인들이 청나라에 ‘공물’로 바쳐지던, 아마도 병자호란 직후의 어느 즈음. 압록강 인근 어딘가에 위치하는 ‘성도사’라는 절에 자매가 비구니가 되기 위해 수련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자신의 일가를 몰락시킨 ‘이귀’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 이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청나라의 부자. 일종의 인신매매범으로 조선 여인들을 납치하여 팔아먹고, 그 과정에서 잔악무도한 짓을 서슴지 않는 악당이다. 이귀는 문화재 절도에도 관심이 많아 그의 아들인 흑풍을 시켜 성도사의 보물인 ‘황금약사여래상’을 약탈한다. 절의 주지 삼장법사는 청나라에 잡혀간 여인들 중 무예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 열을 모아 함께 복수하라고 일러준다. 미후, 미사는 열 명의 여인을 모아 황금약사여래상을 되찾고 이귀에서 복수를 해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헤라클레스’적 고난보다는, 동료를 모으고 그들이 각기 다른 스킬을 가져 도와가며 펼치는 ‘반지의 제왕’ 같은 모험담을 좋아한다. <소림십대여걸> 역시 그런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 꽤 재미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관심은 어떻게 재미있는 그림의 다찌마리를 만들 것인가에 더 치중되어 있다. 영화의 배경을 ‘화냥년’의 배경이 된 시대로 설정하고 여자들에게 무술을 하게 만들었지만 그뿐이다. 남성과는 다르게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점으로 무공을 펼친다든가 하는 것도 없다. 그냥 맞짱이다. 영화의 오프닝에서는 분명 10명의 여걸이 각기 다른 무공을 펼치는 것 같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본 영화에서는 그냥 살이 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좀 남자 같거나... 하는 식의 특징만 주어졌을 뿐 그다지 특별난 무공들은 없다. 사실 마지막 전투까지 진행하면서 그들은 하나씩 몸빵을 하고 퇴장하고 마는 정말이지 으악새.

그러다보니 이게 또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미후 역을 맡은 당시 미녀 권격 배우로 유명했던 김명아 선생이 이 영화의 반을 책임지고 있는데, 아무리 남성과 다를 바 없는 무술이라 하더라도 선천적으로 여성이 가지고 태어난 곡선이 거칠기만 한 격투 장면을 좀 더 우아하게 보이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걸 즐길 새도 없이 여기저기 실소가 터지는 장면들에서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싸우기로 하고 모인 처자들이 힘들다고 도망을 가려 하자 장광설을 늘어놓는 장면 같은 게 그렇다. 심각한 얼굴을 한 미후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우린 여자라고 방관만 해야 옳은가요. 나라가 약한 결과입니다. 나 하나만 편하겠다는 안일한 생각의 결과입니다. 죄송합니다. 제 넋두리였어요... 편히 쉬세요....” 라며 설득인지 뭔지 모를 이상한 대사를 치기도 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시대 배경을 그렇게 하고 보니, 뭔가 이야기는 만들어 넣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껴서 였을까? 어차피 도둑맞은 여래상 찾고 이귀한테 복수만 하면 되는데, 중간에 이야기가 많다. 삼장법사가 죽고, 백년사의 송월법사를 찾아가고, 이귀는 백년사의 사천왕상을 훔치려 하고, 그 와중에 여걸들 중에 스파이가 있는데다가 또 다른 여걸은 잃어버렸던 서방님을 찾기도 하고... 스토리 진행해야지 다찌마리는 채워 넣어야지 게다가 이 영화의 카피가 ‘82년은 여성 코믹 액션의 해!’ 였으니 코미디도 해야 하고... 제대로 굴러가기 참 힘든 상황은 맞는 거 같다.

그래도 권격 영화의 황금기를 보냈던 사람들인 만큼 액션은 상당히 멋진데, 김명아와 정진화 그리고 이귀(배우 이름을 찾지 못했다)의 3인 격투장면은 상당하다. 특히 싸움의 초반에는 이귀가 자신은 장애인이라며(이런 설정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 조금 수세에 몰리니 벌떡 일어나 발차기를 한다) 의자에 앉아 초식을 펼치는 장면이 있는데 박력이 대단하다. 물론, 이런 이귀의 사망이 있는 줄도 몰랐던(언급도 없었다) 함정에 빠져 죽는 허탈한 것이긴 하지만. 이귀가 죽자마자 ‘감사합니다’가 떠오르며 가슴을 두 번 때리는 야속한 우성프로덕숀..

<소림십대여걸>은 무협영화가 조금씩 그 힘을 잃어 갈 때쯤 행해진 여러 시도 중에 하나였다. 역사적 사건에 상상력을 끼얹은 팩션의 형태를 취해보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과연 오늘도 실패다. 전반적으로 허탈한 이야기와 뜬금없는 애국심 그리고 약간의 괜찮은 다찌마리로 대충 빚어진 영화다. 감독 본인이야 안타깝겠지만(필모그라피를 봐서는 그닥 안타까울 것은 없을 듯하나) 이런 영화의 깨알 같은 재미를 찾는 나 같은 관객도 있는 법이니,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는 충분한 것일지도. 김정용 감독은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이어오다가 2001년 <우먼 파트너 놀자>라는 기묘한 제목의 영화를 마지막으로 현장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김명아
김해은
방희정

감독: 김정용
각본: 윤석훈

개봉극장: 아세아(서울)
관람인원: 37,288명

소림십대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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