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쿼바디스
시절이 하수상하니 잠도 잘 오지 않는다 했던가? 요즘의 영화판을 보자면 도무지 어떤 법칙으로 흘러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판이다. 상업영화들도 투자가 메말라 작품수가 줄어들고 있고 좀처럼 신인작가나 실험적인 작품들이 나올 수 없는 구조에서 마케팅에 더 열을 올리는 작품들이 양산되고 독립영화는 그야말로 완전히 독립된 조건에서 영화를 만들어야하는 극단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시장의 위축이 기본적인 전제이지만 독립영화 역시도 예전의 작품들에 비해 도전과 모험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더군다나 지원은 아예 바라지도 않고 탄압만 하지 않기를 바라는 지경이니 세월의 시계가 한참이나 되돌려진 것 같다. 다른 예술영역들도 고전하기는 마찬가지겠지만 기술의 발달로 많은 부분의 일손을 덜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영화는 기본적으로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예술장르다보니 더욱 어려운 지경이다.
문화체육관광부로 위시되는 정부의 문화정책 전반이 퇴행적 기조로 흐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은 없겠지만 영화의 영역에만 한정해서 보면 영화진흥위원회가 갈지자 행보를 걷다 못해 이제 더 걸을 수도 없을 것 같으니 ‘아님 말고’식으로 아예 없애자는 발표까지 나오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예술이라는 것과 정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충되는 가치라 할 수 있다. 가장 자유로워야할 창작의 영역에 어떤 하나의 방향과 기조를 골간으로 하는 정책이라는 개념은 어울리기 힘들고 어울린다 해도 불륜을 피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일정하게 시계추가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보면 영화문화 그 자체에 대한 몰이해와 밀어붙이기식 행정이 도를 넘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의 중요성을 한류나 걸그룹으로 대표되는 상업적 수출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이 정책을 만드는 자리에 있고 그나마 그런 사람들도 다 채울 수 없어 그 지향을 떠나 기본소양과 전문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인사들이 행정을 좌지우지하니 이런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아시아에서 가장 우수한 영화정책과 지원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진흥위원회를 없애고 시장기능을 중심으로 단순한 행정지원센터 정도를 만든다는 발상은 어떤 뇌구조에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인지 정말 개연성과 서사가 떨어지는 장르영화 한편을 보는 듯하다. 산업적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부분은 시장기능을 중심으로 행정규제를 대폭 줄이고 간접지원을 하는 방식을 취하고 예술성과 창작성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들은 다양한 소재로 많이 만들 수 있게 직접적인 지원과 이러한 영화들이 다양하게 유통될 수 있게 각 주제별로 해당 부처와 함께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면 양과 질에서 우리 영화는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인데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 현실은 정말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제발 순수이성으로 돌아가 보자.
비단 영화뿐만 아니겠지만 얼마 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민주당 최종원 의원의 경우 한 평생 연극에 몸바쳐온 예술인이자 한국영화에 다양한 캐릭터를 심은 뛰어난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고향에 예술촌을 만들려고 심혈을 기울였는데 이를 문화부가 관광중심 사업으로 만들면서 계획안이 완전히 달라져서 제도개혁이 없이는 안 되겠다는 판단 하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고 한다. 물론 양자의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니 그 사실 진위를 여기에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평생을 예술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예술이 아닌 정치의 영역으로 가서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뭔가 뒤틀려도 한참 뒤틀린 현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배우의 손에 대본이 들려있지 못하게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호프 한잔 마시며 갑론을박하는 영화인들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시민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단편영화를 보고 웃기도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일상에서 함께하는 영화와 그 영화가 일상에 힘을 주고 그 일상이 영화를 만들어 나갈 때 우리는 영화로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런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게 북돋우는 정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비극의 시나리오를 쓰고 싶지 않기에 영화인들의 손에는 시나리오와 촬영장비와 영사기가 들려 있어야 한다. 그들의 손에 촛불이 들려 있을 때 영화는 이미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이 불행의 서곡이 계속 울려 퍼지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