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연예인들의 애니메이션 더빙
애니메이션은 살아 움직이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이 생명력을 갖는 마지막 단계가 바로 목소리가 입혀지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흔히 더빙이라 불리는 녹음작업을 통해 움직이는 그림에 불과했던 애니메이션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가면서 의지와 감정표현을 하게 됩니다. 애니메이션 시청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되는 거죠.
10년 넘는 세월 동안 그림에 목소리를 입히는 작업을 해오면서 더빙에 대한 주변 분들의 인식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습니다. 한때는 인기가 있기도, 또 한때는 필요악이라는 소리까지 듣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지금 이 순간(지상파 더빙 외화의 인기가 꺼지고, 지상파와 케이블의 더빙 애니메이션의 인기도 초반보다 시들해진!)에도 더빙과 관련한 이야기는 계속 불씨가 남아 있다는 겁니다. 10년 넘게 나오는 단골 아이템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우리말로 더빙한 경우입니다. 일본어판과 한국어판을 비교하며 우리말 더빙을 비판하는 내용이죠. 이러한 내용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냥 일본어판을 한국어판으로 바꾼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논리가 없는 감정만의 표현이죠. 제 입장에선 그냥 웃어넘기는 것도 귀찮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더빙 관련해 새로 등장한 아이템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스타 더빙’입니다. 전문 성우가 아닌 인기 연예인들이 극장용 애니메이션 더빙에, 그것도 주로 주인공으로 기용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일곤 했습니다. 스타더빙이 몇 년 전부터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일찍이 이현세 화백 원작의 <아마겟돈> 녹음부터 간간이 시도됐습니다. 해외 배급 애니메이션도 우리말 더빙에 유명 영화배우를 기용하기도 했죠. 십수 년 전부터요. 하지만 워낙 퀄리티가 좋지 않았고 흥행 면에서도 재미를 보지 못했기에 ‘애니메이션 더빙에 연예인이 참여하면 좋지 않다.’는 선례만 남겨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수년 전 몇몇 작품이 연예인 더빙이 화제가 되면서 흥행 면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자 이제는 연예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더빙이 거의 기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100관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하려면 연예인 기용을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된 거죠. 다행히 근래 연예인이 참여하여 선보인 더빙연기의 경우 예전보다 확실히 나아졌습니다. 이는 연예인의 더빙 실력이 향상됐다기보다는 낯선 더빙에 임하는 자세와 노력하는 자세가 나아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듯싶습니다. 즉,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것’이란 안일한 생각에 느슨하게 임하던 예전 모습은 이제 좀처럼 보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젊은 연예인들은 투니버스 등을 통해 어릴 적부터 애니메이션을 많이 접해서인지 나름 감각도 괜찮습니다. 한마디로 못 들어줄 수준의 연기를 찾기가 힘들어졌죠. 애초에 전문성우가 아닌 것을 감안한다면 업계종사자인 제 기준으로 봐도 괜찮은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요즘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참여한 연예인들의 더빙입니다.
물론 성우들 연기를 좋아하는 분들로서는 여전히 연예인들의 더빙은 달갑지 않을 겁니다. 수많은 더빙으로 단련된 성우들의 연기와 비교하면 분명 세련되지 않고, 캐릭터의 미묘한 감정도 살려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이러한 사실에도, 개인적으로는 그로 인해 더 많은 관객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예인 더빙의 장점을 좋게 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연출한 작품에 연예인 2명이 참여했습니다. 관객은 30만 명 정도 들어왔습니다. 1차인 극장에서 손해 보지 않은 수준의 흥행입니다. 2차(DVD, VOD 등)에서는 약간의 수익을 올렸겠죠. 헌데 그 작품에 연예인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분명 10만 명을 넘기기 힘들었을 겁니다. 여차하면 5만도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더빙 전문 PD로서 당연히 퀄리티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지만, 더빙판을 보다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도 그에 뒤지지 않습니다. 무엇이 옳다는 정의는 없습니다. 다만, 많은 분들을 모두 만족스럽게 하려면 연예인을 기용한 더빙일수록 더욱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높아진 관객 수준은 그저 출연한 연예인의 이름값 때문에 낮은 퀄리티를 묵과하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