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영화걸작선]길소뜸

임권택, 1985

[한국영화걸작선]길소뜸 대표 이미지

어떤 영화는 한 장면으로부터 기억된다. 서사가 집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가 지닌 과잉성이 서사의 한계까지 침범해 서사를 붕괴 직전으로 몰고 가는 위태로운 장면. 내가 알고 있는 위대한 장면은 대체로 그러하다. <길소뜸>이 훌륭한 영화라면 그것이 모든 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이라기보다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을 내 기억에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은 이렇게 등장한다. 어린 연인이었던 동진(신성일)과 화영(김지미)은 한국 전쟁으로 헤어진 지 30여 년 만인 1983년,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만나 그들의 잃어버린 아들 석철(한지일)을 찾아 춘천에 간다. 폐물 더미 옆의 더러운 판잣집에서 야비한 짐승처럼 살고 있는 아들과, 그 비천한 모습에 마음이 열리지 않는 부모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하룻밤. 동진이 방 안으로 들어간 뒤, 화영은 집 옆에 세워둔 차에서 자겠다며 운전석에 말없이 앉아 있고, 석철은 평상에서 소주병을 들이킨다. 

이 장면은 차 안에 있는 화영의 시점으로 촬영되었다. 평상에서 석철이 소주를 들이붓는 모습이 보인다. 석철의 아내가 석철에게 다가와 그만 마시라며 만류하자 석철은 아내를 강제로 평상에 누이며 옷을 벗기려 한다. 화영의 시선을 눈치챈듯한 석철의 아내는 석철의 손길을 뿌리치며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머쓱해진 석철은 벌떡 일어서더니 화영의 차 쪽으로 서서히 몸을 돌린다. 그러자 화영은 차를 빼 다른 곳으로 간다. 

이 장면이 충격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의 외설성 때문이다. 임권택의 영화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관심을 가진 적이 거의 없다. 더구나 이 영화는 이산가족이라는 한국현대사의 비극적 소재를 다루고 있다. 혈연을 향한 본능과 의무, 그것을 무화하는 삶의 냉기가 경합하는 서사에 난데없이 리비도가 최악의 형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자신의 자궁으로부터 생산되었으나 30여 년 만에 처음 조우한 핏줄이 지금 발기한 성기의 형상으로 여인 앞에 서 있다. 

이것은 과도한 해석이 아니다. 석철은 거의 사회화되지 않은 존재이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이 물에 빠져도 죽은 다음에야 건져 올린다고 말할 때, 그는 단순히 비윤리적 인간이 아니라 아버지의 율법을 내면화한 적이 없는 인간이다. 차에 치여 피 흘리며 죽어가는 개를 먹겠다며 끌고 와 화영을 소스라치게 만들었던 이 사내는 전술한 장면 직전의 식사 장면에서 친부모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콩을 어머니라고 생각하며 쏴 죽였으며 그래도 어머니가 자꾸 되살아나더라.”고 태연하게 술회한다. 그리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자식이나 실컷 싸질러놔야겠다는 생각으로 (베트남여인들에게 정액을) 마구 갈겨댔다.”고 덧붙인다. 

이 원시적 남성의 언어에서 총알-정액과 계열과 베트콩-어머니-베트남여인의 계열이 각각 동일화되고 있음은 분석의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양자는 고스란히 성 충동과 성적 대상의 관계이다. 그렇지 않다면 석철이 부모나 아버지를 원망한 게 아니라, 어머니를 떠올리며 총을 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더구나 이 영화에서 화영은 남성들의 유일한 성적 대상이다. 화영의 남편은 회상 장면에서 이미 중년이 된 화영에게 능청스럽게 구애하며, 초로의 동진은 화영을 여전히 욕망의 눈길로 바라본다. 

만취한 상태로 아내를 범하려다 실패한 석철이 화영에게 몸을 돌릴 때, 그것은 명백한 성적 위협의 순간으로 드러난다. 이 순간은 아찔하다. 그가 만일 차의 문을 열고 생모에게 달려들었다면 이 서사는 완전히 파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만일 그가 생모의 곁에 앉아 온순하고 동정적인 모습으로 돌변했다면 이 서사는 불만족스러운 진부한 결말에 이끌렸을 것이다. 임권택의 선택은 화영이 그 자리를 피하는 것, 그럼으로써 표현되지 않은 위태로운 리비도를 끝내 괄호 안에 묶어두는 것이었다. 

가족과 혈연에 연관된 주류 담론과 지배적 감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길소뜸>은 역사, 계급, 성의 단일 담론으로는 결코 온전히 해명되지 않은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영화이며, 임권택의 민족적 리얼리즘이 자연주의에로 확장되면서 빚어낸 걸작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지 몇 년 뒤에 시작된 소위 한국 뉴웨이브가 이 영화로부터 더 많이 배웠어야 했다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