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독립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원은 문화의 싹을 틔우는 과정이다.
지난 2008년부터 일본의 주요 도시인 도쿄, 오사카, 나고야에서 한국의 독립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상영회가 매해 개최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문화를 소개해오는 곳이 아닌, 일본의 극장이나 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상영회를 찾는 주요 관객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관계자와 한국의 문화에 관심이 많은 관객들이다. 3월의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우려했던 것과 달리 행사는 무사히 치러진 행사에서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일본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상영회에 가면 일본의 애니메이션 관계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바로 ‘정부의 지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의 결과 높은 퀄리티의 작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 일본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의 부러움 섞인 질문의 요지이다. 이러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언제까지 복잡한 심정으로 웃으면서 들어줄 수 있을지 이제는 의심스럽다. 해외의 많은 독립작가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는 제도이지만, 언제 없어질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애니메이션, 각각의 나라마다 명칭이나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힘들게 작업하고 있는 여건은 비슷하다. 놀랍게도 일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독립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원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기관의 이름이 바뀌면 바뀔수록 정부는 독립애니메이션 제작지원을 ‘산업’의 관점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문화산업이라는 것은 문화를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비판하는 입장이건, 옹호하는 입장이건 간에 문화산업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결국 ‘문화’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말이다. 독립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원은 바로 전제가 되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물론, 모든 독립애니메이션이 산업의 기반이 될 필요도 없고, 될 수도 없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산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던 10년전부터 지금까지 지겹도록 듣고 있는 ‘기획력의 부재’는 다양하고 실험적인 독립애니메이션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보다 자유로운 창작의 과정을 통해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제작지원을 받아 작품 활동을 하던 단편 작가들 중에는 계속해서 단편 작업을 하는 작가도 있고,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나 TV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감독들도 있다.
지금까지의 한국의 애니메이션 관련 지원제도가 제도화 되는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배제되거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로 인해 비판의 목소리들이 있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작가, 배급, 시장 등 어떠한 베이스도 갖춰져 있지 않았던 한국에서 지금의 성과들이 나온 것은 정부의 지원으로 인해 가능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지원의 성과들이 보다 다양한 형태의 애니메이션으로 성장하려고 하는 오늘, 제작지원제도가 없어진다면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온 성과를 단숨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나고야 상영회에는 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의 장편 작품인 <로망은 없다>가 특별 상영되었다. 상영 후 이어진 토크에서는 일본의 유명 영화평론가인 모리 타쿠야씨가 훌륭한 영화적 연출에 대해 평하였고, 상영 이후 일본의 주요 일간지인 아사히 신문의 애니메이션 칼럼에 작품이 소개되었다. 상영 이후의 관객과의 교류회 자리에서 만난 관객들은 한국의 가정의 모습이 일본 가정의 모습과 비슷한 점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하면, 다른 단편들에서 엿본 한국의 문화에 대해 연신 질문을 하였다. 자연스럽게 독립애니메이션을 통한 문화교류의 장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함께 했던 작가들 역시 자극과 의욕을 얻는 장이 되었을 것이다.
독립애니메이션은 산업이기 이전에 문화이다. 성숙한 문화는 또 다른 형태로 발전해나가는 밑거름이 된다. 지금까지는 싹을 뿌리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의 정부의 지원은 튼튼한 줄기가 되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과정일 것이다. 지금까지 키워온 싹이 그냥 죽지 않도록 지속적인 지원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