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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김호선,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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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의 원작은 이어령이 1979년에 발표한 동명의 희곡이다. 김동훈 연출로 실험극장에서 공연된 바 있으며, 기록에 의하면 영화 외에 TV단막극으로도 만들어졌다 한다. 영화판은 1981년에 동아수출공사가 제작했다. 김호선은 비교적 긴 시간에 걸쳐 일곱 번째 작품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를 준비했다. 실제 이유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선, 실내를 무대로 벌어지는 이어령의 희곡을 영화로 각색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첫 시나리오는 지상학이 썼고, 감독과 홍파가 그것을 재작업하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둘째, ‘영상시대’라는 청년영화집단을 결성해 1970년대의 청년영화를 이끌었던 김호선은 새로운 각오로 1980년을 시작하려는 뜻을 품었던 듯하다.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를 통해 이미 흥행감독으로 자리 매김한 그로선 영화와 사회에 대한 보다 진지하고 진보된 시선을 스크린에 투영하고 싶었을 게다. 그래서일까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의 상영시간은 상업영화로는 이례적으로 2시간 25분이 넘는다.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는 단순한 얼굴 위로 복잡한 표정을 지닌 작품이다. 남자 주인공 김종실은 이펙트맨이다. 효과음 연출이 직업인 그는 가정과 일밖에 모르는 평범한 남자였다. 그는 아랍계 콜라회사에서 의뢰한 광고의 효과음을 담당하게 되는데, 소리가 마음에 든 클라이언트는 독점권을 취득하고자 백지수표를 건넨다. 동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술자리를 전전한 그는 거나하게 술에 취해 집으로 온다. 그런데 아뿔싸!, 805호에 사는 그는 실수로 905호로 들어가고 만다. 당황해 나가려 했지만, 문이 고장 나는 바람에 그는 905호의 여주인공 미아와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에 집으로 돌아가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으면 될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사건이 터진다. 콜라회사의 한국인 직원이 집을 방문해 백지수표에 대해 알려주자, 김종실의 아내는 고민 끝에 실종신고를 해버린다. 이어 납치를 염려해 수사본부가 결성되고, 백지수표를 가진 남자의 실종 뉴스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영화의 도입부는 김종실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경로를 빠른 속도로 일람한다. 동물원에서 아이가 손에 쥔 풍선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그는 엄청난 수의 풍선을 터뜨려 ‘병마개 따는 소리’를 개발한다. 이러한 과정을 자질구레하게 풀어내는 대신 단 몇 컷으로 전후관계를 맺은 다음, 주인공이 만든 소리가 삽입된 CF로 곧장 연결하는 데 불과 몇 분만 소요할 따름이다. 백지수표를 손에 쥔 김종실이 상상하는 것들을 표현하는 데도 서슴없이 몇 장의 사진만 끌어들인다. 백지수표와 우는 아이들 옆에 선 아내와 타지마할의 사진을 번개처럼 교차하는 것으로 그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렇게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에서 우선 돋보이는 건 편집이다. 유영길의 과감하면서도 매끄러운 촬영이 영화를 튼튼하게 지탱하고 있지만, 편집이 유독 중요한 건 원작의 특성 때문이다. 

희곡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는 여덟 장과 (바깥소식을 전하는) 네 개의 인서트로 구성된 작품이며, 8개의 장은 아파트 안에서 두 남녀가 나누는 대화로 채워져 있다. 한 공간과 두 사람의 대화로 상업영화 전체를 꾸밀 수는 없는 법, 영화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는 905호는 물론 바깥 일이 벌어지는 곳으로도 카메라의 눈을 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 공간은 주인공 남녀가 존재하는 곳이기에 영화의 발걸음은 매번 905호로 되돌아와야만 한다. 안팎을 건조하게 나눠 편집할 경우 자칫 영화가 딱딱하고 심심해질까 걱정되는 상황이다. 그런 우려를 비웃듯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는 905호와 805호, 905호와 바깥세상, 현실과 판타지, 현실과 미디어, 시간과 시간 사이를 실로 유려하게 넘나든다. 현동춘의 편집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이밖에도 김호선은 영화의 형식에 두루 신경을 써 세련된 영화를 완성하고 있으나, 사실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의 스타일이 시대를 넘어 평가받을 만한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건, 김호선이 1970년대의 영화작업을 거치며 터득한 대중영화의 화법이다. 이어령은 자신의 희곡작업을 거론하면서 이오네스코와 베케트 등을 언급했다. 그러므로 일정 부분 부조리한 경향은 피할 수 없으며, 그 외에도 알레고리로 가득한 비사실성이 작품을 지배한다. 연극무대의 관객을 겨냥한 이어령 희곡의 지적인 면모는 분명 대중영화의 걸림돌이었다. 이어령은 희곡작업을 일컬어 ‘육체 위에 내 언어를 인쇄하는 것’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렇게 탄생한 희곡조차 그대로 대중영화의 옷을 입기엔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원작의 기본 줄거리를 대체로 유지하는 가운데, 영화는 자연스럽지 않은 대화, 까끌까끌한 이야기, 뻣뻣한 전후관계와 무거운 주제를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편하도록 수정했다. 여기에 당시 최고의 스타와 연기에 능숙한 배우를 적절히 섞고(수사반장으로 나와 TV드라마 <수사반장>의 역할과 비교해 정반대의 이미지를 선보인 최불암이 압권이다), 다소 실험적이면서도 지나치지 않은 주제 음악을 입히고, 2시간 20여분 동안 리듬감을 유지해 지루하지 않게 배려했다. 특히 김호선의 장기인 에로스를 끌어들인 부분이 눈에 띄는데, 원작에서 육체적 관계 밖으로 교묘히 머물던 두 주인공이 한 침대에서 (낙원의 나날을) 지내는 장면을 보며 이어령은 큰 웃음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는 인간과 사건이 엉클어져 나뒹구는 난장판으로 번지기 십상인 소극(笑劇)을 깔끔하고 매끄럽게 정리한, 그리고 주제를 끝까지 또렷이 기억한 훌륭한 예다. 지금껏 블랙코미디로서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보다 잘 만들어진 한국영화는 드물다. 정녕 블레이크 에드워즈의 <파티>가 부럽지 않다. 

얼핏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의 주제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인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이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세상 사람들이 더 신경 쓰는 건 백지수표다. 그 결과 멀쩡한 사람이 범죄단에 의해 납치됐다는 집단 망상을 낳는다. ‘미디어와 공권력의 유치한 행태’는 또 어떤가. TV와 신문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허황된 뉴스를 쫓아다니며 보도하고, 여론에 민감한 경찰의 엉성한 수사 태도에선 어떤 책임감도 느낄 수 없다. 영화는 그들과 우리의 조잡한 몰골을 통틀어 희화한다. 그렇지만 단지 대중과 언론과 공권력의 속물성을 비판하는 데 그쳤다면 영화의 생명력은 짧았을 터,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은 ‘진실의 실종’을 진짜 주제로 삼는다.

몇 편의 희곡에서 이어령은 비가시적이고 추상적인 걸 다루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택하곤 했다. 굳이 왜? 주인공 김종실의 직업인 ‘이펙트맨’은 당시로선 생소한 것이기도 하다. 극중 그는 수백 개의 풍선을 터뜨려 탄산음료의 병마개를 따는 효과를 뽑아낸다. 그러니까 효과음이란 대개 다른 소리를 합성해 조작된 것들이며, 사람들은 가짜 소리를 듣고 진짜라고 착각한다. 그의 직업이 이뤄낸 착각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로 반복된다. 905호 밖의 세상은 온갖 헛소문을 믿으면서도 사실은 믿지 않는다. 예를 들어, 경찰은 부랑자의 허위신고를 조사하면서 정작 김종실의 전화는 장난으로 처리한다. 김종실의 귀가를 직접 목격한 관리인의 증언은 심리적 오인으로 파악하면서, 파도에 떠밀려온 누군가의 시체를 김종실의 것으로 오판한다. 영화는 ‘믿을 수 없는 사실과 믿을 수 있는 거짓말’을 대비시키고, ‘설명할 수 없는 사실은 사실이라도 사실이 아닌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김종실은 문 앞에 설 때마다 (<운명 교향곡>의 첫 소절을 흉내 내) ‘짧게 세 번, 길게 한 번’ 버저를 눌렀다. 하필 버저를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 누른 그날, 그는 낯선 운명 속으로 뛰어든다. 언제나 뒤편에 쳐져 그림자인 양 살아왔던 그는 신기루로나마 세상의 중심에 자리할 뻔했다. 내내 원작의 전개를 잘 따르던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는 결말에 이르러 원작과 전혀 다른 길을 간다. 원작의 결말에선 주인공이 거짓 죽음에 죽음으로 저항하며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뒤집으면 ‘실종’이 되고 마는 ‘종실’이란 이름이 결국 남자의 가련한 운명을 예견하는 꼴이다. 그러나 영화는 죽음을 거부한 채 가족과 종교와 사회를 풍자하는 태도로 돌아선다. 존재의 비극이라는 이어령의 주제가 너무 철학적이어서 다소 두루뭉술한 쪽을 고른 것일까. 아니면 1981년이라는 울분의 시간에 자조보다 의지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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