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나의 불만 ? 죽여주는 단편 영화 보고 싶다
올해는 수확이 괜찮은 편이었다. 열정적인 영화광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챙겨보는 관객인 나는, <무산일기>, <애니멀 타운>, <파수꾼>, <혜화, 동>, <엄마는 창녀다> 등의 영화를 보며 기분이 좋았다. 이 영화들은 상업영화에 전혀 뒤지지 않는 완성도와 재미를 가졌으며, 성찰의 기회를 덤으로 얹어주는 뿌듯한 꾸러미였다. 앞으론 ‘돕는 기분’으로 독립영화를 보러가는 일이 줄어들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무척 기뻤다. 하지만 그 기분이 계속 유지되지는 못했다. 서울독립영화제, 미장센 영화제 등을 찾으며 느낀 낭패감은 앞서 느꼈던 즐거움을 다시 고민하게 만들었다. 아, 어쩌지. 재미가 없는데.
이상하게도, 과거 단편영화에서 이루어졌던 실험들이 근래에 들어선 오히려 장편영화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최근의 단편들은 세련된 연출과 높은 퀄리티의 장비들로 보기는 훨씬 좋아졌지만 보고나서 내가 뭘 봤는지 자문했을 때 스스로 답을 내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가장 많은 종류는 스타일에 함몰돼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잊고 있는 부류이다. 몇몇 영화제에서 이런 류의 영화가 무려 상까지 받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들 편먹고 짜고 치고 있는거 아닌가?’라는 극단적인 상상까지 해보기도 했다. 물론 아닐 것이다. 그만큼 나는 이해가 안 갔다. 정말, 상 줄 영화가 그렇게 없었단 말인가?
단편영화의 매력은 과감함과 새로움이다. 적은 제작비와 짧은 시간으로 치고 빠지는 이 제작 형태에서 들어있어선 안될 것이 ‘안전함’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제를 찾았을 때 시간이 없어서 단 1편만의 영화를 볼 수 있다면 난 항상 단편 모음을 선택하고는 했다. 3-4편의 영화 중에 무조건 1편 정도는 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너무 안전하다는 느낌이다. 단편영화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하나의 작품이 아닌, 장편 영화를 위험 징검다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만약 그렇다면 단편은 장편을 위한 이력서에 불과 하지 않는 것인가? 그럼 단편 영화는 투자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단편 영화도, 그런걸 보고 실망한 나도 너무 불쌍하다.
관객은 앞질러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영상을 섭취하고 있는 것이 이 나라의 관객들이다. 그들은 판단할 뿐 아니라 온갖 플랫폼으로 자신의 의견을 설파한다. 게다가 성격도 고약해서 좋은 소리도 잘 안한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다. 잘 보이려고 해봤자다. 누구나 접할 수 있고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어설픈 흉내와 주류에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이 빚어내는 것은 지루함 뿐 이다. 일개 관객에 불과한 내가 굳이 자료원의 페이지를 빌려 주제에 어울리지도 않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죽여주는 단편영화가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멋진 단편을 발견해 주변에 알리고, 그 감독이 진짜 멋진 작품을 찍어 냈을 때 ‘나는 이미 알아봤다.’고 말하는 쏠쏠한 재미를 이제 포기해야하나? 상상만 해도 인생의 재미가 반감되는 느낌이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맛있는 음식은 먹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영화를 고민하고 있는 많은 감독들에게 말하고 싶다. 두려워 말라고. 관객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어떻게 하면 보기에 좋고 더 받아들이기 편한 영화를 만들까. 부탁이니, 본인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바란다. 영화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일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가 아니다. 감독이 내게 줄 수 있는 것은 감독이 가진 목소리로 형성되는 단 하나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단편을 장편으로 넘어가는 이력서로 생각하지 않는 그런 감독이 만든 살아있는 단편 영화를 보고 싶다. 나는 계속 극장을 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영화가 출연한다면, 매우 기뻐하며 힘닿는 한 주변에 알릴 것이다. 곧 만나게 되길 빈다. 죽여주는 단편영화. 날 좀 죽여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