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공간 위에 시간이 흐르는 순간

[칼럼]공간 위에 시간이 흐르는 순간 대표 이미지

전에는 국철 승강장에서 담배를 피웠었다. 승강장에 서서 담배를 물면 담배재들이 바람결에 철로로 흩어졌다. 외대역은 몇 년 전만 해도 모양이 달랐다. 출근길 분주한 사람들의 움직임은 ‘댕강댕강’ 소리를 내는 건널목의 포즈에 잠시 멈췄다. 

몇 해 전 이른 아침 외대역 전철 승강장에서 문득 풍경을 보았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 건너 텅 빈 승강장을 보았던 순간이다. 인천행 지하철이 서는 내 자리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서울의 중심으로 달리는 지하철이기 때문. 그리고 건너 의정부행은 서울의 외곽이기에 인적이 없다. 초로의 노부부만 승강장 벤치에 앉아있었다. 가득한 것과 텅 빈 것이 철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이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두 승강장은 다른 겨울의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다면 그 어느 겨울 보았던 풍경을 사진으로 남겨보려 했겠지만 나는 영화로 남기고 싶었다. 그 공간에 시간의 개념을 더하고 이야기를 덧대고 싶었다. 순전히 그 이유로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곳에서 영화를 찍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본 그날의 사건들, 고등학교 때 땡땡이 치고 하릴없이 거닐던 거리들, 길게 살던 동네에 있는 대학교의 낡은 건물 학보사, 어릴 때부터 보아오던 북촌의 골목들, 오래된 슈퍼가 있고 목련이 좋게 피던 봄의 산책길들. 때로는 ‘내가 어떤 영화를 찍고 싶어’의 첫 번째 이유가 ‘내가 좋아하는 어떤 공간을 남기고 싶어’ 가 된다. 

사소한 기록의 욕구가 그 영화를 만드는 제1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영화는 저마다 그 자신의 상업적 가치 혹은 예술적 가치를 향해 달려간다. 결국 그 안에서도 작은 취향이 스며들어 보다 큰 것들을 만들게도 되지만 영화의 덩치가 커질수록 그 작은 애정이 끼어들 자리 또한 작아진다. 

내 보잘것없는 작업들이 가진 큰 의미는 내가 스쳐간 그 많은 순간들을 다른 방식들로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장소의 한 시절을 영화만의 방식으로 기억해볼 수 있다. 거리에 그 거리의 사람들에게 카메라가 서고 세팅 되지 않은 채 그 장소의 우연성은 존중 받는다. 좋은 우연이 가끔 그 공간에 들어오면 기적을 만난 듯 맘이 움직인다. 내가 좋아하고 매일 지나는 골목에 배우와 스탭을 부르고 그들에게 사인을 주면 그 골목은 원래 있던 데로, 원래의 시간 데로 흐르고 그 안에서 배우는 이야기를 만든다. 배우가 대사를 말하는 동안 목련이 지고 슈퍼를 찾는 아이가 뛰어가고 마을버스가 거리를 지난다. 바람에 진 꽃잎이 배우의 손등 위로 나리기도 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배우의 대사에 묻어 들리기도 한다. 그럼 난 그 장소를 그 시간을 가진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장소와 시절이 결국은 모양을 바꾸고 사라진다 해도 그 하나의 인상이 영화 속에 자리 잡아 언제나 되돌아올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장소와 계절에 애정을 느낀다는 것, 단지 그 작은 이유 만으로도 영화를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게 독립영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배운 소중함이다. 은밀한 편지쓰기로 영화를 시작했다. 때로는 다수가 아닌 나와 소통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의한 연서처럼도 만들 수 있다. 그러한 영화는 훨씬 비밀스럽다. 그리고 작은 애정이 근본이 된다. 그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는 작은 단위에서 영화를 시작했다는 것은 나에게 커다란 행운이다. 그 아름다움에서 어쩌면 영화가 시작됐을 지 모른다. 하지만 요즈음의 영화가 가진 속도로는 품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들꽃이 지는 아쉬운 순간을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소박하고 깊은 맛은 여전히 작은 영화들 사이에서 지켜지고 있다. 그 영화를 만드는 이와 그 영화를 즐기는 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사소한 기록이 그 안에 있다.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