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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인터넷 시대의 단편 애니메이션

[칼럼]인터넷 시대의 단편 애니메이션 대표 이미지

■인터넷과 단편 애니메이션

2012년 한국 문화계 최대의 화제라면 역시 가수 싸이가 발표한 곡 `강남 스타일`이 미국 빌보드 차트 7주 연속 2위(2012년 11월 8일 현재), 영국(UK) 오피셜 차트의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이겠다. (김기덕 감독이 영화 <피에타>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베네치아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강남 스타일`은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것을 계기로 전세계 수십 개국의 아이튠즈 음원 판매 상위권을 차지하며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이처럼 ‘로컬’한 콘텐츠가 ‘글로벌’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 많아진 것은 이제 와서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인터넷 시대 이전에도 그런 사례는 많이 있었고, 자국 내에서보다 번역을 통해 소개된 타국에서의 인기가 높았던 작품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그런 사례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으며 평범한 개인에게도 손쉬운 기회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본래 극장 애니메이션이든 TV 애니메이션이든, 많은 예산을 들여 여러 사람들이 제작에 참여해야 하는 산업적 시스템 기반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이 많다. 하지만 훨씬 적은 수의 인원, 때로는 아예 단독으로 제작되는 단편 애니메이션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단편 애니메이션의 문제점은 러닝타임이 짧다 보니 상업적으로 발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극장 단독 상영도 어렵고 TV 방영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짧은 러닝타임 덕분에 상업적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 적은 수의 인원으로도 제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발표의 기회가 적어진다는 이야기다. 과거에는 보통 단편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각국의 영화제에서 상영되거나 해외의 문화원 등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실 매니아나 연구자가 아니라면 구태여 영화제나 각국 문화원에서 상영되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찾아가서 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그런 단편 애니메이션을 일반 관객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당장 포탈 사이트에 가보면 국내의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이 유료로 업로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과거 영화제나 문화원의 상영에서는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금전적인 수입을 얻기가 사실상 어려웠고, 따라서 단편 애니메이션은 상을 타거나 해서 상금을 얻지 않는 이상은 거의 취미에 가까운 제작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물론 유료라고 해도 단편 애니메이션이란 한계 때문에 그리 많은 수입이 있지는 않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과거에 비하면 훨씬 더 쉽게 단편 애니메이션을 발표할 수 있고 그 발표를 통해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 것만은 사실이라고 해야겠다.

■신카이 마코토의 등장

특히 인터넷은 국내에서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그런 기회와 기반을 전세계적인 규모로 늘릴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당장 필자의 경험을 이야기해보자면, 필자가 2001년 신카이 마코토라는 크리에이터를 알게 된 것도 그런 인터넷을 통해서였다. 1990년대 일본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만화적인 일러스트를 발표하는 반 아마추어, 반 프로라고 해야할 만한 크리에이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인터넷에 만든 본인의 홈페이지에 취미 활동으로 일러스트를 올리고, 그것을 본 출판사나 잡지사 등에서 일을 의뢰하여 반쯤 프로로서 데뷔하는 것이다. 혹은 이미 프로였던 작가도 홈페이지를 통해 다른 업무처나 새로운 일을 의뢰받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에도 인터넷은 유용하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많은 이들이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신의 일러스트, 만화, 소설 등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었고, 그런 홈페이지를 알게 된 국내의 매니아들이 동호회 게시판 등을 통해 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도 그렇게 해서 일본의 ‘반쯤 아마추어’인 크리에이터들의 홈페이지를 여럿 알게 되었는데, 그 당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바로 신카이 마코토라는 크리에이터였다.

*신카이 마코토 홈페이지 http://shinkaimakoto.jp

신카이 마코토가 다른 크리에이터들과 다른 점은, 그가 홈페이지에서 발표하고 있던 ‘작품’이 일러스트나 만화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홈페이지에 자신이 거의 혼자 만들었다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올려놓고 있었다. 5분 남짓의 짧은 내용이긴 했지만, 그가 음악을 제외하고는 스토리, 연출, 작화, 심지어 성우까지 전부 스스로 혼자서 도맡아 만들었다는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은 충격적이었다. 그때까지 단편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중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거나 사회 비판적인 작품이 많았다. 보통 일반 대중이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과는 동떨어졌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물론 대중적이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작품도 많이 존재한다. 필자도 1993년 독일문화원에서 열린 독일 단편 애니메이션 상영회에서 본 < Balance >란 작품을 2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기억하는데, 대중적인 취향은 아니지만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독일 출신의 일란성 쌍둥이 애니메이션 작가인 라우엔슈타인 형제가 만든 작품으로, 1989년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라우엔슈타인 형제 홈페이지 http://www.lauenstein.tv

그렇지만 어쨌거나 단편 애니메이션의 상당수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힘든 내용이 많은 편이다. 대부분이 전형적인 ‘학생 애니메이션’이라고 할까. 앞서 언급했듯이 단편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거의 금전적 보답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단편 애니메이션을 가장 많이 제작하는 기반은 외국이나 한국 모두 애니메이션 학과나 학원의 학생일 것이다. 주로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또한 상업적 목적 없이 제작되다 보니 단편 애니메이션은 대개 작가 자신의 내면을 그리거나 개인적인 주제 의식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더라도 그 문제 의식을 타인과 공유하려는 의지, 타인이 접하기 쉽도록 일종의 ‘당의정’으로 만들려는 의식 자체가 부족한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야 할 필요 자체가 별로 없으니 당연한 귀결이겠다.

그러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물론 다른 단편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개인적 취미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보니 신카이 마코토 본인의 취향만을 반영한 개인적 작품이긴 했으나, 많은 부분에서 일반 대중에게 공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문에 필자도 감명을 받았던 것이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당시에 ‘코믹스웨이브’라는 회사에 발탁되어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도록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신카이 마코토의 대중성은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본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신카이 마코토가 아직 게임회사에 다니던 와중에 개인적 취미로 만든 작품이었다. 1999년에 제작하여 2000년에 발표했는데, 홈페이지에는 5분의 풀버전이 아니라 좀 더 짧은, 1분 36초의 다이제스트판이 올라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PC 소프트웨어인 포토샵(Photoshop)과 애프터이펙트(AfterEffects)를 사용해서 만들었다는 흑백 톤의 단편 애니메이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에 필자는 이 작품을 국내에서 좀 더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에서 상영회를 열고 싶었다. 필자는 그 전부터 상영회를 주최했던 경험도 많았고, 마침 당시 한국 최대의 애니메이션 팬들의 동호회에서 1년 임기의 대표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 동호회 내부에서 상영회를 열고 싶다고 하면 충분히 허락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애초에 이미 인터넷 상에 오픈되어 있는 작품이니까 상영회 형태로 하든 하지 않든 얼마든지 볼 수 있었으니 허락하지 않을 이유도 별로 없었다. 상영회를 여는 이유는 오직, 한국어 자막을 넣어 한국의 애니메이션 팬들이 보기 편하게 하는 목적이었다. 자막의 제작과 자막판의 상영에도 기본적으로는 원작자의 허락이 필요한 것이니 직접 신카이 마코토에게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 그래서 신카이 마코토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그와 같은 정황을 설명하고 허락을 얻어 상영회를 열었다.

당시는 신카이 마코토가 처음 일본에서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된 장편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를 발표하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세계 최초의 신카이 마코토 상영회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2001년 8월에는 필자가 직접 신카이 마코토를 인터뷰하기 위해 일본에 가서 만나기도 했다. 그때 이미 장편 애니메이션(<별의 목소리>)를 제작 중이었던 그는, 당시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회사인 코믹스웨이브(mangazoo.com)에서 만나자고 답변을 보내왔다. 도쿄 시부야에 있던 코믹스웨이브 회사 회의실에서 만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 대한 질문을 하며 인터뷰를 했는데, 당시 일본을 포함해서도 필자가 2번째로 인터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필자보다 앞서 인터뷰했다는 곳은 CG 테크닉에 관한 잡지였기 때문에 포토샵 사용법과 같은 소프트웨어 이야기였고, 신카이 마코토란 작가에게 작품에 대해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단편 애니메이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감상하기 
>> http://youtu.be/8-ANtYTLMIY
(c) Makoto Shinkai

필자가 인터뷰를 한지 반년이 지난 2002년 2월, 신카이 마코토는 첫 장편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를 일본의 독립영화 중심의 상영관에서 단관 개봉하며 발표했다. 그때는 자신의 작품이 그렇게까지 성공할지 몰랐었기 때문인지 그는 필자에게도 오프닝 첫 날에 이벤트를 하니까 일본에 올 수 있으면 꼭 찾아와달라는 메일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 뒤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25분 짜리 풀 디지털 애니메이션인 <별의 목소리>는 높은 완성도와 인상적인 내용으로 일본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제 6회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디지털아트부문 특별상, 제 34회 성운상 미디어부문, 제 1회 신세기 도쿄국제애니메페어21 공모부문 우수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는 등 평가도 높았다. DVD가 일본 국내에서 6만장, 해외에서 4만장 이상 판매되는 등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카이 마코토가 독자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작품이다.

신카이 마코토가 <별의 목소리>에서 보여준 감성은 그 이전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서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작품들이 앞서 언급한 ‘전형적인 학생 애니메이션’ 범주에서 벗어났던 것도 필자 생각으로는 신카이 마코토의 사회 경험과 회사 근무 경험 덕분이 아닌가 한다. 1973년 생인 신카이 마코토는 대학 시절부터 이미 니혼 팔콤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1995년에 정사원으로 입사했다. 니혼 팔콤은 1980년대부터 `드래곤 슬레이어` 시리즈, `이스(YS)` 시리즈, `영웅전설` 시리즈 등 다수의 PC게임을 마든 게임제작사인데, 신카이 마코토는 거기에서 `영웅전설 가가브 트릴로지`와 `이스2 이터널`(한국판도 나온 적이 있다) 등 PC게임의 오프닝 무비를 제작했다고 한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만든 것이 1999년이었으니 벌써 4년 이상이나 회사 근무를 했던 것이다. 2000년 작품 발표 시에는 이미 27세, 한국 나이라면 28세나 되는 연령이었으니 당연히 학생 수준의 인생 경험보다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나 입장이 달라졌을 것이다.

- 2001년 8월 필자가 인터뷰를 위해 신카이 마코토를 찾아갔던 당시에 받은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팜플렛. (이 사진 촬영은 한참 뒤에 한 것이라서 배경에 <별의 목소리> 엽서와 <웃는 얼굴> DVD가 보인다.)
- 2001년 8월 필자가 인터뷰를 위해 신카이 마코토를 찾아갔던 당시에 받은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팜플렛. (이 사진 촬영은 한참 뒤에 한 것이라서 배경에 <별의 목소리> 엽서와 <웃는 얼굴> DVD가 보인다.)

■인터넷을 통해 발표된 최근의 단편 애니메이션

또 한 가지 소개하려는 것은, 일본의 애니메이션학과 학생이 만든 <후미코의 고백>이란 작품이다.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화제를 모았다는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시기의 붐을 느끼게 해주는 신카이 마코토의 경우와는 달리, 이 작품은 처음부터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YouTube)를 통해 화제를 모았다는 점이 21세기스럽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이 작품은 2009년 11월 9일에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현재 약 3년만에 재생수 224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 후 2012년 9월 28일에는 DVD와 메이킹북을 포함한 세트가 발매되었다.

▲이시다 히로야스를 중심으로 제작된 단편 애니메이션 <후미코의 고백> 감상하기
>>http://youtu.be/0QqT1P4VO30
(c) ishida hiroyasu

*<후미코의 고백> 메이킹북 홍보 페이지 http://colorido.co.jp/fumiko

내용은 2분 22초 정도로 남자아이에게 고백한 여학생이 거절당하자 달려간다는 내용으로, 딱히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마을에서 여자아이가 뛰어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 공간감과 역동성이 인정받아 일본의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후미코의 고백>을 만든 것은, 일본 최초의 4년제 만화학과 대학으로도 알려져 있는 교토 세이카대학 애니메이션과의 이시다 히로야스를 중심으로 한 학생들이다. 2009년 유튜브와 일본의 동영상 사이트 니코니코동화를 통해 공개되어 화제를 모았고, 제 14회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애니메이션부문 우수상, 2010년 오타와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특별상, 유튜브 비디오 어워드 재팬 2009, 제 9회 도쿄 애니메어워드 학생부문 우수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이시다 히로야스는 <후미코의 고백>에서 감독, 작화, 배경, 3D CG, 편집, 음향을 혼자서 담당했다. 배경과 3D CG텍스처, 모델링, 작화에 다른 4명이 참가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을 이시다 히로야스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카이 마코토 이후 늘어난 ‘개인 제작 애니메이션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워즈>로 유명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도 재능을 인정했다고 하고, 그런 평가 덕분에 이시다 히로야스는 올해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구스코부도리의 전기>(국내에서도 <부도리 전기>란 제목으로 2013년 개봉 예정)에 대학 시절 은사이기도 한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 소개로 참가했다고 한다. 이시다 히로야스는 2011년 3월 졸업 작품으로 제작한 < rain town >도 제 15회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애니메이션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계속해서 화제의 젊은 작가로 주목을 받고 있다.

▲2010년도 교토세이카대학 애니메이션과 제 2기생의 졸업 제작 작품으로 만들어진 9분 55초의 단편 애니메이션 < rain town > 감상하기
>>http://youtu.be/RLAfM1RXwRs

이시다 히로야스는 1988년 생. 1973년 생인 신카이 마코토와는 15살 차이가 난다. 신카이 마코토가 본격적인 개인 애니메이션 제작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1998년 eAT`98에서 특별상을 받은 때로 생각하면 2009년 유튜브에서 화제를 모은 이시다 히로야스는 11년 차를 두고 세상에 나온 셈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1998년 당시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CG콘테스트나 공모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공개하며 인지도를 얻었다. 2009년에 이시다 히로야스는 아직 대학 졸업도 하지 않은 학생으로서 학업의 일환으로 제작한 작품이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주목을 받았다. 이 둘의 공통점은 개인의 취미와 작가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단편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에서, 본인의 의도에 충실하면서도 대중성에 대한 고민을 잃지 않은 작품을 발표하여 초기 단계에서부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자국보다도 한국에서 먼저 인터뷰를 시도했고 이후에도 한국의 SICAF 등 해외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신카이 마코토는 물론이고, 이시다 히로야스가 참가한 <후미코의 고백> < rain town >의 경우에도 유튜브에서 보면 외국인들의 감상이 많다. 이제는 단편 애니메이션도 과거에 비해 화제를 모으고 때로는 국제적인 평가를 얻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신카이 마코토로부터 이시다 히로야스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간의 변화에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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