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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질투는 나의 힘

박찬옥, 2002

[한국영화걸작선]질투는 나의 힘 대표 이미지

<질투는 나의 힘>은 분명 이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마초 남성들에게 한 방 먹이는 구석이 있는 여성 영화이다. 더 가만히 이 영화를 들여다 보면 이 영화의 인물들, 특히 남자들의 행보를 붙잡는 결정적인 욕망의 법칙중의 하나는 권력이라는 게임의 술수이다. 즉 원상과 윤식은 그들이 만나는 관계가 남성이냐 여성이냐, 수직적인 관계냐 수평적인 관계냐에 따라 아주 다른 태도를 보인다. 인간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심지어 그들이 물을 대하는 태도와도 아주 흡사해서 아무런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그들의 행동에 묘한 일관성을 부여한다. 윤식은 수돗물은 똥, 오줌으로 모두 오염되어서, 생수만 마신다고 하고, 원상은 성연의 집에 가서 수돗물을 마셔야 하자 냄새를 맡아보고 주전자로 끓여 먹는다. 

이 와중에 인간에 대해 혹은 사물에 대해 불편부당하지 않게 대하는 유일한 사람은 사진작가 성연이다. 한국 영화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성연은 자유주의자면서 독립적이고 애정이나 결혼이라는 관계의 금위에 매여 있지 않다. 그러나 성연은 외로워한다. 성연의 속내가 가장 절절하게 감지되는 대목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우리 여관 가요. 누가 한 말 반대로 하고 싶어‘라고 했던 오뎅 먹는 장면이 아니라, 그후 그녀가 택시안에서 ’집에 가고 싶다‘고 하는 장면이다. 

나에겐 바로 그것이 보였다. 많은 남성 평자들이 원상과 윤식이 나란히 누워 오이디푸스적인 연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즐거워 할 때, 그것은 거꾸로 감독의 독설로도 들렸다. 주인공들이 먹고 자고 하는 장면을 쉬지도 않고 보여주다 마침내 두부 조림을 나눠 먹는 두 사내로 마무리 되는 마지막, 윤식의 딸의 시선으로 처리된 이 관계는 결코 이 둘이 서로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과 외부자의 시선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측면에서 나는 박찬옥이란 여성 감독이 원상의 편에서 남성들을 마냥 너그럽게 관찰하는 그런 감독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스타일이 참으로 매혹적인 까닭은 그녀의 영화적 어법이 깊게 숨겨져 인간을 따뜻하게 참아 주다가도 어느 순간 무척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사이의 틈을 벌려 놓는다는 것이다. 혜옥과 정사를 벌일 때 원상과 그녀의 정사를 잡아 내는 카메라의 냉랭함이라니. 그리고 어느 빈 술집에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 걸어 결국 딴 여자와 하룻 밤을 보낼 때 장인은 죽고, 뒤 늦게 ‘그냥 다소곳이 듣고 있을 껄’이라면서 후회하는 윤식이 보이는 바보스러움. 더 나아가 어쩌면 심장이 약한 장인의 죽음이 단 한번 뿐이 스쳐 지나가는 듯 마주친 성연과의 만남 때문일 수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잠재하고 있는 부조리한 인생의 틈들 말이다.

박찬옥의 영화의 핵심은 영화를 미적하는 것이 아니라 쌓고 또 쌓는 중층의 묘미, 적분의 마법에 있다고 본다. 영화 형식의 측면에서 그녀는 정말 끝까지 가야 속을 내주는 브람스 음악과 비슷하고. 또 잔인한 유머 감각의 측면에선 우디 알렌을 닮았다. 박찬옥이 창조한 신경망같은 인간관계의 그물에서는 한 사람의 삶이 전혀 얼굴도 보지 못한 다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그들 모두는 인간적인 원형과 각자의 특질을 함께 가지는 복합체로 구성되어 있다. 

“싸구려 양주. 자꾸 마시게 되. 근데 괜찮아.” 우디 알렌이 애니 홀에서 “이 집 음식은 맛이 없어. 근데 양도 적어”라는 결정타를 날린 이후, 나는 인생에 대해 이처럼 근사한 은유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제발 박찬옥을 여자 홍상수라 부르지 말라. 후속작 <파주>에서 다시 입증했듯이, 그녀는 제 1의 박찬옥이며, 앞으로도 쭈욱 그러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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