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단발머리
김수동, 1967
1921년에 기생 강향난은 머리를 단발로 깎고 고학생의 무리에 뛰어들었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단발하고 학생이 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녀는 사회주의자로, 다시 여배우로 전신(轉身)을 거듭했다. 말하자면 그녀의 단발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바로 그 순간에 세상을 향해 자신의 굳건한 의지를 선언하는 표식이었던 셈이다.
조선 ‘단발랑(斷髮娘)의 비조(鼻祖)’로 불리는 강향난 이후에 가장 유명했던 단발랑은 역시 기생이었던 강명화였다. 대구 부호 장길상의 아들 장병천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애 끝에,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했던 강명화는 유약하기만 한 연인을 무뢰배들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삼단 같은 긴 머리카락을 스스로 끊었고 이 일화는 호사가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었다.(그녀의 비극적인 연애 이야기는 1924년 <비련의 곡>과 1967년 <강명화>로 영화화되었다.) 사랑의 진정성을 증명하고 그것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단발은 이후 한량과 사랑에 빠졌던 여러 기생들에 의해 반복되었다.
단발머리가 그저 여성들이 선택하는 여러 머리모양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던 1960년대에도, 자신의 실존을 단발머리를 통해 표현했던 두 명의 여성이 있었다. 영화 <단발머리>(김수동 감독, 1967)의 유선하(김혜정 분), 유미하(남정임 분) 사촌자매가 그들이다. 뒤늦게 도착한 1960년대의 ‘단발랑’들 또한 세상의 인습적 시선에 기꺼이 싸움을 걸고, 자신의 의지와 욕망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선배들과 닮았다. 잡지사 취재기자인 미하는 처음부터 단발머리로 등장한다. 일에도 사랑에도 적극적이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는 그녀에게 단발머리는 활동적인 커리어우먼의 상징과도 같다. 그녀는 세상에 나가 남성들과 겨루고자 한다는 점에서 단발랑의 후예지만, 또한 맹랑하고 도발적이며, 도시의 향락문화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는 점에서는 1950년대 아프레걸의 후예이기도 하다.
그녀는 유부남이고 사촌언니의 애인인 취재부장 박무영(신영균 분)과, 자신을 길들이려고 하는 동료기자 지철우(이순재 분) 사이에서 감정적인 줄타기를 하지만, 현명하게도 유부남에 대한 동경은 첫사랑의 추억으로 돌려버리고 지철우를 선택한다. 그녀는 세상과 불화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영악한 단발랑이다. 그녀의 번민은 가볍고 세상은 그녀를 거부하지 않는다. 남자랑 댄스홀에서 차차차를 추다가 외박을 해도, 사촌언니와 사랑의 도피를 택한 박무영이 자신의 첫사랑이었음을 그에게 밝히는 순간에도 그녀는 당당하다. 외박은 했어도 남자와 동침은 하지 않고, 첫사랑 남자의 볼에 가벼운 키스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추스릴 줄 아는 그녀는, 세상이 허용할 수 있는 단발랑의 도발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따라서 강명화가 걸었던 단발랑의 비극적 운명은 틀어올린 머리모양에 한복을 입고 조신한 아내/어머니로 살아왔던 선하의 몫이다. 그녀는 첫사랑 무영과 재회한 후 은밀한 만남을 지속하다가 그 현장을 남편에게 들키고 만다. 머리를 깎아 집안에 가둬두겠다는 남편이 아무렇게나 잘라버린 머리카락을 스스로 단발로 다듬고 난 후에 그녀는 한복을 벗어던지고 양장으로 바꿔입는다. 남편의 말마따나 ‘전축과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갖춘 집에서 “남자한테 얻어먹는” “제일 편한” 여자 팔자를 내던지고, 그녀는 무영과 함께 섬으로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 그녀를 찾아온 남편과, 돈을 구하러 서울로 갔다가 마음을 바꿔먹고 돌아온 애인이 함께 그녀를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려고 하자, 그녀는 이렇게 외친다. “이 개자식들아, 난 뭐냐? 난 너희들의 장난감밖에 안되니? 주고받고, 맘대로 농락해버리고.... 여자도 너희하고 같애. 나도 내 맘대로 살 수 있어”
그녀의 분노는 오히려, 바로 직전까지 자신이 선택했다고 믿었던, 자신이 정말로 갖고 싶은 세상 단 하나의 것이라고 믿었던 애인 박무영에게로 향한다. 남편이 들고온 칼로 무영을 찌르고나서 그녀는 자살한다. 칼에 찔린 무영이 아내와 미하가 지키고 있는 병실에서 의식을 회복하는 마지막 장면은 대중영화가 취할 법한 타협적인 결말이지만, 선하의 마지막 일갈은 그러한 결말을 덮어버릴 만큼 강렬하다.
여성의 단발이라는 오래된 문화적 클리셰를 불러온 것에서도 드러나지만, 이 영화는 식민지시대 이래 지속되어온 대중문화의 자산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대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잡지사와 잡지에 연재되는 소설과 비평적 폄하에도 불구하고 저잣거리 저학력층에게 오랫동안 애독되곤 했던 딱지본 소설은 각각 잡지사 취재부장이자 인기 소설가인 박무영과 시장통에서 라사점(양복점)을 운영하는 고루한 현실주의자 남편의 세계를 상징한다. 선하는 집에 돌아오면 주판을 놓으며 돈계산을 하거나 “늙은이 같이” 딱지본 소설 <옥단춘>을 소리내어 읽는 남편의 고루한 세계에서 벗어나, 세련되고 낭만적인 도시 젊은이들의 직업세계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녀의 욕망은 잡지 연재소설과 딱지본 소설이라는 위계화된 문화적 지형도를 통해 정확하게 형상화된다. 그런 점에서 <단발머리>는 <미몽>(1936)에서 <자유부인>(1956)과 <애마부인>(1980)과 <정사>(1998)와 <해피엔드>(1999)에 이르기까지 한국영화사에서 끝없이 반복되어왔던 ‘바람난 유부녀’ 이야기의 계보 안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여성들이 선택을 놓고 갈등하는 남성들은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문화적 위계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단발랑에서 잡지 소설과 딱지본 소설, 바람난 유부녀 이야기까지 <단발머리>는 말하자면, 식민지시대 이래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온 문화적 자산들의 역사를 훑어가는 영화인 것이다.
조선 ‘단발랑(斷髮娘)의 비조(鼻祖)’로 불리는 강향난 이후에 가장 유명했던 단발랑은 역시 기생이었던 강명화였다. 대구 부호 장길상의 아들 장병천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애 끝에,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했던 강명화는 유약하기만 한 연인을 무뢰배들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삼단 같은 긴 머리카락을 스스로 끊었고 이 일화는 호사가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었다.(그녀의 비극적인 연애 이야기는 1924년 <비련의 곡>과 1967년 <강명화>로 영화화되었다.) 사랑의 진정성을 증명하고 그것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단발은 이후 한량과 사랑에 빠졌던 여러 기생들에 의해 반복되었다.
단발머리가 그저 여성들이 선택하는 여러 머리모양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던 1960년대에도, 자신의 실존을 단발머리를 통해 표현했던 두 명의 여성이 있었다. 영화 <단발머리>(김수동 감독, 1967)의 유선하(김혜정 분), 유미하(남정임 분) 사촌자매가 그들이다. 뒤늦게 도착한 1960년대의 ‘단발랑’들 또한 세상의 인습적 시선에 기꺼이 싸움을 걸고, 자신의 의지와 욕망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선배들과 닮았다. 잡지사 취재기자인 미하는 처음부터 단발머리로 등장한다. 일에도 사랑에도 적극적이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는 그녀에게 단발머리는 활동적인 커리어우먼의 상징과도 같다. 그녀는 세상에 나가 남성들과 겨루고자 한다는 점에서 단발랑의 후예지만, 또한 맹랑하고 도발적이며, 도시의 향락문화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는 점에서는 1950년대 아프레걸의 후예이기도 하다.
그녀는 유부남이고 사촌언니의 애인인 취재부장 박무영(신영균 분)과, 자신을 길들이려고 하는 동료기자 지철우(이순재 분) 사이에서 감정적인 줄타기를 하지만, 현명하게도 유부남에 대한 동경은 첫사랑의 추억으로 돌려버리고 지철우를 선택한다. 그녀는 세상과 불화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영악한 단발랑이다. 그녀의 번민은 가볍고 세상은 그녀를 거부하지 않는다. 남자랑 댄스홀에서 차차차를 추다가 외박을 해도, 사촌언니와 사랑의 도피를 택한 박무영이 자신의 첫사랑이었음을 그에게 밝히는 순간에도 그녀는 당당하다. 외박은 했어도 남자와 동침은 하지 않고, 첫사랑 남자의 볼에 가벼운 키스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추스릴 줄 아는 그녀는, 세상이 허용할 수 있는 단발랑의 도발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따라서 강명화가 걸었던 단발랑의 비극적 운명은 틀어올린 머리모양에 한복을 입고 조신한 아내/어머니로 살아왔던 선하의 몫이다. 그녀는 첫사랑 무영과 재회한 후 은밀한 만남을 지속하다가 그 현장을 남편에게 들키고 만다. 머리를 깎아 집안에 가둬두겠다는 남편이 아무렇게나 잘라버린 머리카락을 스스로 단발로 다듬고 난 후에 그녀는 한복을 벗어던지고 양장으로 바꿔입는다. 남편의 말마따나 ‘전축과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갖춘 집에서 “남자한테 얻어먹는” “제일 편한” 여자 팔자를 내던지고, 그녀는 무영과 함께 섬으로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 그녀를 찾아온 남편과, 돈을 구하러 서울로 갔다가 마음을 바꿔먹고 돌아온 애인이 함께 그녀를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려고 하자, 그녀는 이렇게 외친다. “이 개자식들아, 난 뭐냐? 난 너희들의 장난감밖에 안되니? 주고받고, 맘대로 농락해버리고.... 여자도 너희하고 같애. 나도 내 맘대로 살 수 있어”
그녀의 분노는 오히려, 바로 직전까지 자신이 선택했다고 믿었던, 자신이 정말로 갖고 싶은 세상 단 하나의 것이라고 믿었던 애인 박무영에게로 향한다. 남편이 들고온 칼로 무영을 찌르고나서 그녀는 자살한다. 칼에 찔린 무영이 아내와 미하가 지키고 있는 병실에서 의식을 회복하는 마지막 장면은 대중영화가 취할 법한 타협적인 결말이지만, 선하의 마지막 일갈은 그러한 결말을 덮어버릴 만큼 강렬하다.
여성의 단발이라는 오래된 문화적 클리셰를 불러온 것에서도 드러나지만, 이 영화는 식민지시대 이래 지속되어온 대중문화의 자산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대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잡지사와 잡지에 연재되는 소설과 비평적 폄하에도 불구하고 저잣거리 저학력층에게 오랫동안 애독되곤 했던 딱지본 소설은 각각 잡지사 취재부장이자 인기 소설가인 박무영과 시장통에서 라사점(양복점)을 운영하는 고루한 현실주의자 남편의 세계를 상징한다. 선하는 집에 돌아오면 주판을 놓으며 돈계산을 하거나 “늙은이 같이” 딱지본 소설 <옥단춘>을 소리내어 읽는 남편의 고루한 세계에서 벗어나, 세련되고 낭만적인 도시 젊은이들의 직업세계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녀의 욕망은 잡지 연재소설과 딱지본 소설이라는 위계화된 문화적 지형도를 통해 정확하게 형상화된다. 그런 점에서 <단발머리>는 <미몽>(1936)에서 <자유부인>(1956)과 <애마부인>(1980)과 <정사>(1998)와 <해피엔드>(1999)에 이르기까지 한국영화사에서 끝없이 반복되어왔던 ‘바람난 유부녀’ 이야기의 계보 안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여성들이 선택을 놓고 갈등하는 남성들은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문화적 위계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단발랑에서 잡지 소설과 딱지본 소설, 바람난 유부녀 이야기까지 <단발머리>는 말하자면, 식민지시대 이래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온 문화적 자산들의 역사를 훑어가는 영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