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독립연애라는 말은 없잖아요
독립영화는 무엇입니까? 많지 않은 스크린 수로 옴니버스를 포함한 몇몇 장편을 개봉한 후 저런 류의 질문을 종종 받는다. 어떤 분들은 저런 질문을 진부하게 반복한다. 가령, 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의 모임에 참석했을 때, 지레 경계하는 멘트 - '영화는 그냥 영화인 거야! 독립영화 한다고 고고한 척 하면 못써!' - 를 준비한 선배들이 무슨 기선제압이라도 하듯 저런 화두를 꺼낼 때는 참 재미가 없다. ‘아니, 누가 뭐랬나? 저도 여기 그냥 놀러왔어요.’ 하나 어떤 관객들이 진심으로 갸우뚱거리며 답을 바라는 표정은 신선하다. 작게 만들어지고 적게 개봉하는, 또는 개봉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급되는 영화를 본 경험이 별로 없는 분들이 ''그냥 재밌게 봤는데 뭐가 다르다는 거지'' 하며 긁적거리는 모습은 오히려 반갑다.
앞서의 질문을 받을 때, 예전엔 뭐라뭐라 열심히 정석에 가까운 상대를 했는데, 요새는 아예 다른 영역을 끌어와 우화같은 답을 한다. 가령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연애를 합니다. 근데 우리가 추운 날 길거리에서 데이트를 하는 사람들이나,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좁은 자취방에서 함께 지내는 이들을 보며 ''오, 너 왜 굳이 독립연애를 하니'' 이러진 않잖아요?”
즉, 연애는 그냥 연애. 기념일엔 당연히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재테크 일정에 혼기를 맞춰야하는 커플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런 기성의 매뉴얼이나 포털에서 전시하는 아포리즘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지금 서로가 예쁘고 소중해서 돈 없이 걷고 룰 없이 만나는 연인들도 항상 있기 마련. 이 썰에서 연애를 영화로 치환해보면 어떨까. 연애라는 개념이 있은 후에 스펙을 갖춘 남녀들의 만남도, 스펙과 무관하게 동행하는 만남도 있는 것. 관습적인 데이트 코스가 ‘연애’라는 개념과 동등한 집합이 아니라 그 양태 중 하나이듯, 영화라는 매체가 있고 그 부분집합으로 상업영화도 있고 독립영화도 있는 것. 현재 ‘상업적인 선순환의 가능성을 제작의 우선순위로 두는’ 상업영화가 필연적으로 득세하고 있지만, 그 바깥 또는 경계에서 영화 자체의 감흥(가끔은 영화를 만드는 감흥 자체)을 여전히 우선하는 원소들을 일컬어 독립영화라 부르는 것. 그러니까 독립영화는 그냥 영화와는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독립영화야말로 ‘그냥 영화’ 어쩌면 ‘진짜 영화’. 아, 오해마시길. 맑은 의도가 질을 꼭 담보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절절한 고집으로 만들어졌는데도 외려 상투성으로 그득한 독립영화들도 있고, 투자자와 매니지먼트와 마켓팅과 배급사와 멀티플렉스를 거치면서도 고유의 짜릿함을 용케 잃지 않은 좋은 상업영화들도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오도카니 작은 방 서로의 체온 밖에는 재료가 없던 연인들이, 자신들의 노력과 몇가지 운에 힘입어, 아파트도 분양받고, 가끔의 여행을 위한 운임도 벌고, 만일을 위한 예금이나 보험도 들 여유도 생긴다면 축하해줄 일. 영화로 비유하면, 고유한 주제를 자신이 옳다 여기는 형식으로 다루면서 적당히 투자도 받고 흠모하던 연기자도 캐스팅해 배급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면 마다하거나 질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런 탐나는 견적을 갖추는 게 요원하더라도 연출자와 그 동행들이 ‘옳다, 재밌다,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지금 여기서 선보여야 한다’ 판단한 기획을 실현시키고 싶다면, 그 견적을 포기하고서라도 만들어야겠지. 돈 없이 지붕 없이 연애를 이어가는 것처럼.
재차 말하지만 결국 영화는 그냥 영화. 그런데도 ‘영화’ 앞에 ‘독립’이라는 라벨을 굳이 붙이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그 움직임은 괜한 촌스러움의 발로가 아니라 ‘영화는 당연히 상업영화여야 한다’ 는 괴상한 전제에 무심히 동의하는 분들이 태반이니 그 앞에서 ‘어, 꼭 그렇진 않아요’ 말을 건네기 위한 운동, 이 가난한 연애의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절절한 고백, 그나마 마련한 원룸도 빼앗기고 작은 기념일의 예산마저 갈취당한 2011년 한국에서는 작지만 당당한 언어게임.
ps. 위의 문단들은, 서사가 있는 극영화 - 극장에서 개봉됐을 때 그 완성도에 따라 관객을 재생산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 위주의 진술이다. 필자가 겨냥하는 청자들은 일반 극장에서 보편적인 드라마 위주의 관람행위를 하던 분들. ''독립영화''라는 개념을 좀 더 적극적으로 사고한다면, 즉, 재구성된 드라마에 한정하지 않고, 현실을 반영하고 기득권의 가짜 질서에 대항하는 미디어 범주로 생각한다면 위의 비유들은 어중간한 게 된다는 걸 미리 인정. 보다 적극적인 독자들이 있다면 여러분의 다음 스텝은 대안적인 미디어로서의 독립영화를 사고하는 것. 이 경우 ''독립''은 경로로서의 수식이 아닌 필수의 깃발이 될 겁니다. 나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