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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울독립영화제, 지원 없는 2년을 보내며 얻은, 뒷심과 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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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영역에 공적 지원이 씨말랐던 지난 2년간은 누구에게나 혹독했다. 지난 10년간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사업을 운영하긴 했지만, 지원이 뚝 끊긴 지금 당시를 회고해도, 그리 윤택했던 기억은 없다. 지원금은 대부분 사업비로 쓰였기 때문에, 없는 살림은 언제나 팍팍했었다. 그나마 소수의 활동 인력으로 왕성하게 프로젝트 사업을 돌렸으니, 풍요로웠다면 일이 많았던 것이라는 슬픈 결론. 어째든 야박하고 치사하게 지원을 고갈 시킨 오늘 보단 충분히 훌륭했던 시절이었다.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의 역사는 정확하게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출범과 일치한다. 몇몇 싸움을 통해 사람들이 규합되며,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과 같은 조직이 만들어졌고, 다양한 방식으로 공적 영역에 개입하며 지원을 이끌어냈다. 영진위는 이러한 배경 하에 제작뿐만 아니라 투자, 배급, 기반조성 등 다채로운 사업을 실시하였는데, 그 중 한 부분이 당시 ‘한국청소년단편영화제’라고 명명했던 현재의 서울독립영화제를 한독협과 공동주최한 것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재원으로 사업을 치루며, 서울독립영화제는 경쟁독립영화제로서의 위상과 더불어, 매년 12월에 개최되는 중요한 축제로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사랑과 관심을 받던 말든 개의치 않은 이 정부의 불도저식 문화정책 하에선, 반정부적인 영화들이 생생이 담겨지는 서울독립영화제 역시 배제의 대상일 수밖에. 스스로 고사되거나, 친구들과 함께 이 시기를 버텨내야 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경쟁영화제이고, 상시적으로 독립영화 사업을 운영해 왔기 때문에, 여타의 독립영화제보다 비교적 큰 규모의 예산이 필요했다. 처음엔 이를 어쩌나 막막했을 따름이다. 돌이켜 보면, 수레를 멈추지 않고 굴렸던 것이 비결이었다. 삐걱거리면 잠시 멈춰서라도, 더디게 전진했던 것.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처했던 상황을 계속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내적으로는 큰 힘이 되었다. 여기에 영화제를 응원하는 친구들이, 정부 지원이 사라진 부분을 촘촘하게 메워주었다. 누군가는 재능기부로, 누군가는 영화수익금의 쾌척으로, 누군가는 시설과 장비를 내어주며, 독립영화가 처한 고단한 길을 함께 걷고자 했다. 그렇게 신기하게도 우리는 ‘독립’할 수 있었다.

한때 정부의 혹독한 민간인 감사정국을 겪으면서, 정부지원금 받는 것이 참으로 구차했다. 무조건 자립갱생해서, 도도히 그리고 큰 소리로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사업을 운영하면서 간신히 버텨왔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서울독립영화제만 하더라도 예산을 절반을 줄여서 운영했다. 수익을 내는 사업을 계획해 봤지만, 10년간 누적되었던 경험들은 대부분 수익과 무관한 것들이기에, 갑작스레 이윤을 창출하는 사업으로 급선회하긴 어려웠다. 무엇보다 수익을 고려하는 순간, 누락되는 부분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 왔다. 

서울독립영화제를 지원 없이 두 번째 치러내면서 양가적 감정에 든다. 독립영화 영역이 정부지원 없이도 잘 버티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서 역할을 맡고 있는 자로서 뿌듯하고, 나를 포함한 수많은 친구들이 비슷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돕는 것에 인색하지 않은 것이 자랑스럽다. 워낙 개념 없이 후원하다 보니, 스스로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같은 우스운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 기막힌 부조의 발견은 지난 시절 깨닫지 못했던 즐거움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더딘 전진을 얘기했지만, 몸을 축소하고 유지하는 동안 어쩌면 퇴보한지도 모른다. 지원이 멈춰있는 동안 역동적으로 시도되었던 많은 사업들이 사라졌다. 독립영화전용관이 휴관한 이래 독립영화 정책과 배급 부분 또한 동력이 떨어졌고, 누적되었던 네트워크과 아카이브들도 희미해 진 것이 사실이다. 정부 지원이 독이 되었던 과거를 교훈 삼아 최근 민간독립영화전용관 설립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것과 별개로 독립영화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공적 분야에 책임을 지워야 하지 않을까. 가뜩이나 어려운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어 내는 창작자들의 지원금을 후퇴시킬 순 없다. 그들을 격려하는 상금을 축소시키는 것은 아무래도 치사하고, 시장에서의 규제 없이, 상업영화와 독립영화가 경쟁하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그것이 ‘독립’이지 않냐는 반문엔, 아니올시다. 

그래서 2012년엔, 정부에 삥을 뜯어보자. 안되면, 지금처럼 또다시 버티며 호흡을 가다듬으면 된다. 다만 아쉬울 것이다. 개인의 감정을 넘어서, 문화라는 지형에 그것이 미칠 영향을 가늠한다면 말이다. 2010년 불공정한 공모로 광화문 미디액트를 내어주며, 활동가들이 들었던 플랭카드의 문구가 떠오른다. ‘영진아, 쿨하지 못해 미안하다. 우리 뒤끝이다!’, 확실한 것은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까칠한 경험들이, 적어도 당분간 독립영화의 뒷심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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