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임자 없는 나룻배
이규환, 1932
개봉 직전 재 검열 소동 일으킨 항일 표현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
세상에 실체(필름)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명화가 있었다.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아리랑>(1926)을 비롯한 <임자 없는 나룻배>(1932), 해방 후의 <십대의 반항>(1959, 김기영 감독)과 <젊은 표정>(1960, 이성구 감독), <잉여인간>(1964, 유현목 감독), <만추>(1966, 이만희 감독) 등이 그런 예에 속한다.
그 가운데서도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유신柳新키네마주식회사 제작)는 나운규의 <아리랑>(1926)과 더불어 해방 전 한국영화사를 대표하는 불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필름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영화는 1932년 9월 18일부터 4일간 단성사에서 상영되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자칫 첫 상영이 무산될 뻔했다.
그때는 낮 흥행 없이 밤 상영만 일곱 시에 있었는데, 이미 여섯 시 쯤 되자 극장은 설자리가 없을 만큼 성황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에 들떠 있는 이규환 감독에게 극장 직원이 “검열계에서 급히 필름을 갖고 오라”는 말을 전했다. 상영시간이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영문을 모른 채 광화문 조선총독부 도서과 검열계로 달려간 그에게 검열주임은 그날 배달된 석간신문을 내던지며 ‘임자 없는 나룻배’란 조선민족을 암시한 것이 아니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 신문에 실린 <임자 없는 나룻배>의 시사 평 가운데 “조선민족의 혼이 죽지 않고 빛나고 있음을 암시해준 영화”라는 대목이 그를 자극했던 것이다. 이 감독은 어렵게 문제가 되는 마지막 필름 한통만 다시 보이기로 타협하고 주인공 춘삼이 철로를 때려 부스는 장면 1백50여자를 잘라내는 것으로 재검열의 곤욕을 치렀다. 그가 서둘러 극장으로 달려왔을 때는 개봉시간이 40여분이나 지난 뒤였다.
(이규환의「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영화 60년」, 중앙일보, 1979, 12, 18 1980, 3, 8)
그렇다면 ‘항일표현’으로 의심받은 <임자 없는 나룻배>는 어떤 영화일까.
농부인 정춘삼(나운규 분)은 가뭄과 수해 등 겹치는 재난으로 살 길이 막연해지자 아내(김연실 분)와 더불어 서울로 올라와 인력거꾼이 된다. 하루는 춘삼이 집에 돌아오니 만삭(滿朔)이 된 아내가 난산을 겪고 있다. 병원비가 없어 남의 집 돈을 훔쳤다가 뒤쫓아 온 순사에게 잡히고 아내는 길거리에서 아이를 낳는 처지가 된다. 그 뒤 형기를 마치고 나온 춘삼은 자동차 운전수와 동거생활을 하는 아내로부터 어린애를 빼앗아 안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 동안 딸(문예봉 분)은 아버지의 뱃사공 일을 도울 만큼 다 자란 처녀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들 부녀에게 큰 어려움이 닥친다. 그들이 사는 강가 한 가운데에 철교가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손님들이 내는 배 삯으로 생활을 해왔던 것인데, 이제 그 수입의 기반마저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춘삼은 딸에게 욕심을 품고 괴롭히는 공사장의 감독(임운학 분)을 보다 못해 도끼로 찍어 죽이고, 달려오는 기차에 치어 죽음을 맞는다. 아울러 그가 집에서 달려 나올 때 방바닥에 넘어뜨린 석유등잔이 불길로 번지면서 잠을 자고 있던 딸 애연(愛蓮)마저 삼키고 만다.
이 영화는 관객과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음은 이 사실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조선 영화계에서 일찍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독과 명쾌한 촬영으로 된 영화이다. 아마도 이때까지 나온 조선 영화의 패권을 잡을 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만치 단순한 스토리로 그만치 성공한 것은 감독, 촬영, 연기의 우수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운규가 주연하는 춘삼이란 한 개 농부 노동자의 슬픈 이야기를 우리는 한 개인의 이야기로 보지 말고 조선 민족이라는 한 민족의 이야기로 볼 때 비로소 그 감격이 커지는 것이다.
재산을 빼앗기고 일을 빼앗기고 아내를 빼앗기고 또다시 생명의 줄과 딸을 빼앗기고야 말 운명에 처해 있으면서도 거기 대항할 아무런 복안도 없이 오직 신명께 기도나 올리고 있는 춘삼이 그것은 곧 조선 민족의 한 전형이다. (중략) 조선인으로는 한 번 보지 않으면 안 될 사진이다.
(허심,「유신 키네마 2회작 ‘임자 없는 나룻배’ 시사평」동아일보, 1932, 9, 14.)
―「임자 없는 나룻배」! 여러 가지 조선 영화에서 가장 시적 표현인 제목이다. (중략)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으로 일관하여 있다. 농촌 생활에 파경을 당한 자의 막연한 상경은 늘 이러한 비극을 지어내기 쉬운 것이다. 생계를 잃어버린 농군들의 도시 진출, 거기에는 항상 빈곤과 도회적 유혹이 쫓아다닌다. 이 빈곤과 유혹 사이에 끼여 싸우는 자, 또 이러한 비극을 빚어내는 자, 어찌 춘삼의 아내뿐이랴. (중략) 나는 이 작품을 가리켜 조선의 현실을 잘 표현한 온건한 작품이라고 하고 싶다.
(송악산인(宋岳山人), 매일신보, 1932년 9월 14~15일)
한마디로 <임자 없는 나룻배>는 민족적 비애의 정서를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그린 탁월한 영화였다. <아리랑>과 함께 이 영화의 필름을 찾게 되는 그런 날이 언제쯤 찾아올까, 평생에 꿈같은 이런 희망을 가져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