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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줄탁동시>가 개봉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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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김경묵 감독의 <줄탁동시>가 개봉했다. ‘줄탁동시’ 란 제목은 “선종(禪宗)의 공안(公案) 중 하나로,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제목에 걸맞게, 알 속 병아리처럼 어리고 여린, 어미 없는 젊음들이 존재의 불가능이라는 절망을 넘어서는 과정을 치열하고도 아름답게 그린 독립영화가 바로 <줄탁동시>다. <얼굴없는 것들>, <청계천의 개>에 이어, 탈북청소년과 동성애자라는 남한 사회의 소수자와 타자를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지 감독이 치열하고 깊게 고민한 끝에 내놓은 작품이다. <줄탁동시>는 2011년 세계3대 영화제로 꼽히는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을 비롯하여 밴쿠버, 로테르담, 런던영화제 등에 초대되었고, 국내에서는 서울독립영화제에 처음 공개되어 상영 전회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여세를 몰아 3월초 개봉을 준비하던 2월, 의외의 소식이 들렸다. 2월8일,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심의를 신청한 이 작품을 ‘제한상영가’로 분류하여 통고한 것이다. 감독과 배급사는 영등위가 문제 삼았던 장면, 준이 돈을 벌기 위해 공중 화장실에서 구강 성교하는 15초 가량의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해 재심을 신청하고, 개봉 준비를 계속했다. 헌데 2월 16일, 매체 보도 일정을 위해 심의 미필 중에도 시사회를 여는 관례에 따라 마련된 기자 시사회도 등급 미필이라는 이유로 취소되어, 개봉은 다시 한 번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같은 달 20일에야 우여곡절 끝에 수정판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통과되며 영화는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되었다. 

제 살과도 같은 자신의 작품을 손상시킬 모자이크 처리로, 장면을 수정하기로 한 감독과 배급사의 결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절치부심 끝에 완성하여 영화진흥위원회 개봉지원까지 받은 작품의 배급을 포기할 수도, 주인공 준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를 뼈저리게 표현하는 장면을 포기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필자는 서울독립영화제 예심과 관객과의 대화 진행 등을 위해 이 작품을 수정 전에 여러 번 보았다.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자면, 인조성기로 연출했다는 이 장면에서 문제의 남성 성기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필사적으로 삶을 잇기 위해 몸부림치는 준의 몸짓이 애잔하고 측은하기 그지없는 이 대목에서 선정성과 음란함을 느낀 이들의 풍부하고 예민한 감수성이 놀랍기만 하다. 헌데 수정된 개봉 버전을 본 관객들은, 필자의 감상과는 다르게, 모자이크가 가리고 있는 남성 성기와 준의 입에서 포르노를 연상케 하는 기이한 아우라가 새로이 태어났음을 보았다고 전한다. 금기가 가져온 예술적 효과랄까. 

영등위는 제한상영가 결정을 내리며, 이 작품을 “영상의 표현에 있어 선정적 장면이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이 가능한 영화”로 보고, “화장실에서 벌이는 오럴섹스 장면에서의 성기 노출 등 선정성을 고려하여 제한상영가”로 결정했다고 부연했다. 제한상영관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 제한상영가로 분류된다는 것은 개봉을 할 수 없다는 말 외에 다른 의미가 없다. 이러한 실질적인 문제와 별개로, 제한상영가 등급 자체도 법적 존립 근거가 없다. 제한상영가 등급 제도는 이미 지난 2008년 7월 헌법재판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형적으로 존치하고 있는 제한상영가 등급은 정치적,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현 정권이 들어선 뒤 영등위는 독립영화 중 실존 정치인에 대한 풍자가 등장하는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린 바 있고, <줄탁동시>처럼 동성애를 다룬 <종로의 기적> 예고편, 포스터도 반려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선임한 영등위 위원장, 그 위원장이 지정하는 4, 5기 위원의 면면을 보면 이러한 판정이 나올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보수 단체와 교육 단체 출신 위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1,2,3기 영등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든 창작자와 영화전문가의 위원 선임율은, 여러 추측을 불러일으킬 법도 하다. 이를테면 이번 사태에서,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고 그 사회적 책임을 보완하는 자율적 기구로서 제 역할을 찾기 보다는, 학생인권조례 등 논쟁에 붙여진 최근 사안들과 관련하여 문화예술영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파하는 영등위의 욕망을 읽은 건, 미욱한 필자의 오해일까? 대한민국 성인들로부터 격리시켜야 할 지경으로 선정적이라고 <줄탁동시>를 판단했던 영등위원들 자신이 심의 업무를 수행하며 노출, 오염된 ‘선정성’은 어떻게 정화해야 할까? 시대착오적인 영등위의 독립영화 ‘검열’에 불만을 갖는데 그치지 않고, 북한에 대한 농담을 즐기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한 예술가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기준을 블로그에서 비판하다 기소당한 변호사, 유해 매체로 지정되었다는 웹툰 등의 사례가 이번 사태와 궤를 같이하며,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증거한다는 인식은 과대망상일까? 예술 표현의 자유와 동성애를 함께 억압했던 대표적 위정자가 히틀러와 스탈린이었음을 이즈음 계속 상기하는 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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