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가난한 다큐멘터리스트의 자력갱생
가난한 독립 다큐멘터리스트에게 1월과 2월은 보릿고개다. 그나마 안정적인 수입원인 대학 강의료는 방학과 함께 사라지고, 계절 탓인지 영화 관련 아르바이트도 다소 뜸해지기 때문이다. 바닥을 드러낸 보릿고개 시기의 통장은 외풍으로 서늘하다. 그런데 2012년의 보릿고개는 서늘하다못해 다소 싸늘하다. 아무런 일감이 없는 것이다! 원인을 곰곰 따져보니 아무래도 내 위치의 변화 때문인 것 같다. 작년 <종로의 기적>을 개봉하며 얻게 된 ‘감독’이라는 직함 때문에 편하게 일을 맡기기엔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물어보았다. 혹시 예전에 하던 알바거리 없냐고.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들이 한결 같다. “어휴, 감독님께 어떻게 그런 알바를 시켜요?”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일의 품격 따지지 않고 열심히 벌어서 정승 같이 쓸 수 있는데, 어느새 정승 나리처럼 일을 부탁하는 것조차 부담스런 사람이 된 것인가. 그렇다고 사람들마다 붙잡고 ‘저는 꽤 저렴한 사람이랍니다’라며 광고를 하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하다. 나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연분홍치마의 다른 감독들도 아마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 연분홍치마는 용산 참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의 극장 개봉을 결정했다. 곧바로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어마어마한 지출 항목들.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수록 빚더미와 다크 써클만 늘어간다. 늘 개탄스러워하던 영화계의 임금 체불과 외상 거래를 우리 스스로가 자행하며 한숨은 더더욱 깊어진다. 고개를 넘으면 또 고개가 있으니, 이 정도면 참으로 혹독한 보릿고개가 아닐 수 없다. 이쯤되면 ‘대체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있나?’라는 회한이 밀려온다. 춥고 배고픈데 수중에 돈은 없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러다보니 꿈꾸게 된다. ‘내가 만든 다큐로 수익을 창출해 생계를 해결하고 차기작 제작비를 확보’하는 지당한 과정을. 그러나, 꿈은 이루어지긴 개뿔, 전설이나 신화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대체 생존과 다큐 제작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나 할까. 결국 안정적인 제작 예산 확보가 가장 시급할 텐데, 비빌 언덕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 제작 지원 정도다. 하지만 정권의 눈치를 보셔야 하는 그 분들께 무언가 기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의 다큐멘터리라면 더더욱.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에서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담은 이 한동안 상영되지 못했던 사건은, 정부를 향해 날을 세우는 독립영화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기회였다. 게다가 이후 새롭게 들어설 정권이 더 나으리란 보장도 없으니, 정부 지원 덕분에 보릿고개를 넘기는 건 로또 맞을 확률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물론 각종 영상 관련 단체와 영화제 등에서도 다양한 제작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일수록 주최측이 요구하는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게다가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피칭’은 멋진 그림이 필요한 주최측의 장단에 맞춰 재주만 부리다 팽 당하게 되는 야속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래, 어디 남의 돈으로 먹고 사는 게 쉬운 일이겠냐만은, 참으로 구차한 삶이다.
그래서 나와 연분홍치마는 2012년의 모토를 ‘자력갱생’으로 정했다. 비록 정부 비판적인 다큐이지만, 그래서 무슨 불이익을 당할 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두 개의 문>의 개봉에 총력을 기울일 참이다. 개봉 과정을 통해 용산참사와 공권력에 대한 우리의 고민을 더 많은 대중과 함께 나누며, 동시에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는 기회를 만들어내고 싶다. 물론 이미 많은 독립 다큐인들이 앞서 걸었던 길이다. 실패담은 차고 넘친다. 예산 규모는 너무나 초라하여 출발부터 불리하다. 쓸 돈은 없으니 마케팅에는 결국 몸을 써야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력갱생,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 같다. 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시도때도 없이 엄습하는 가파른 보릿고개, 이제는 수월하게 넘고픈 이 뜨거운 욕망을 승화시켜 그럴듯한 자력갱생의 사례를 만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도박 같은 개봉, 어찌될 지 모르는 일이니 보험 삼아 한 마디만 덧붙여야겠다. “여러분, 저는 꽤 저렴한 사람이랍니다. 무슨 일이든 일단 맡겨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