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돌아온 인디스페이스와의 기다려지는 스킨십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독립한지 올해로 10년째가 되어 간다. 그 기간 동안 총 3개의 집을 거쳐 갔다. 원룸이 한번, 오래된 연립이 한번, 그리고 조금 덜 오래된 연립이 지금의 집이다. 아무래도 내가 집의 유일한 거주자이다 보니, ‘집’이라는 것이 예전에 부모님과 함께 살던 때와는 조금 다른 개념처럼 느껴지곤 한다. 단순히, 피곤한 내 한 몸 고이 누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동거인’과 같은 개념으로서 느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행이나 영화 촬영처럼 오랫동안 집을 비우거나 소홀히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마치 토라진 여자 친구마냥 차가운 기운만 내뿜는다. 왠지 휑하고 썰렁한 그런 기운 말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집에 머물며 정성어린 손길과 관심을 쏟아 주면 냉랭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토라진 마음을 돌리는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면 바로 가구 배치를 바꿔주는 일이다. 생활 패턴이나 계절 변화 등의 이유로 가끔씩 가구 배치를 바꿔주면 왠지 어린 자식 목욕탕에 데려가 목욕과 이발을 동시에 시키고 난 기분이 든다. 집 역시 나에게 목욕 후 요쿠르트를 먹는 것과 같은 상쾌한 기운으로 답례해준다. 내가 집에 대해 더 많이 신경 쓰고 보듬어줄수록, 그 에너지가 포근한 기운으로 반사되어 나오는 느낌이랄까.
실제로 내가 아는 한 작가님은 새 집에 이사를 오게 되면, 그 집 구석구석뿐만 아니라 집 앞의 풀과 나무와도 인사를 하고 하나하나 손으로 쓰다듬어준다고 말씀 하셨다. 그 스킨십이 공간과 사람 사이에 친화력을 만들어내고, 그 친화력에서 애정이 생겨나며, 그 애정은 좋은 기운의 형태로 다시 사람에게 돌아온다는 말씀이셨다. 그만큼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생명체와도 같은 존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이런 긴 서론을 주저리주저리 쓴 이유가 있다. 바로 오는 5월, 독립영화의 ‘집’이 생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또 많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민간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광화문에 있는 ‘미로 스페이스’에서 개관을 하게 된 것이다.
너무 기쁜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집에 이사를 왔으니, 이제부터는 ‘인디스페이스’라고 하는 소중한 공간과 어떻게 친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해 봐야할 것 같다. 인디스페이스가 ‘독립영화인들만의 집’으로서가 아니라 보다 많은 관객들을 함께 포용할 수 있는 조금 더 넓은 의미의 집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또한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딱딱한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관객과 함께 독립영화를 호흡할 수 있는 일종의 ‘동거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부산에 있는 독립예술 영화전용관인 ‘국도예술관’이 좋은 예인 것 같다. 작년 <혜화,동> 개봉 당시 몇 차례 방문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관객들이 극장의 주인처럼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관객이 GV의 사회를 보고, 관객이 주도하여 뒤풀이 자리를 만드는 등의 모습을 보며, 이 극장이 단순한 ‘공간’을 넘어 사람들과 함께 살아 숨 쉬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과 객의 구분이 없고, 영화와 공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느낌. 물론 이는 단시간 내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도예술관의 경우도 오랜 시간 온라인 까페를 통한 활발한 교류와 ‘올빼미 상영회’같은 이 극장만의 신선한 기획들이 쌓여져 만든 결과이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를 발굴하고, 새롭고 신선한 기획들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관객들을 내 식구로 만들고, 보다 많은 이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쏟는 것. 이러한 것들이 바로 집을 만지고, 집 앞의 나무를 만지는 행위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작고 소중한 스킨십들이 쌓이고 쌓이면 새로 개관하게 될 ‘인디스페이스’라는 공간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의미의 ‘스킨십’도 잊지 말자. 5월! 새로 개관하게 될 인디스페이스에 가게 되면, 극장 건물과 나눔 자리 이름으로 새겨진 좌석과 스크린의 끄트머리들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첫 인사를 나누고, 우리의 애정과 기운을 듬뿍 불어넣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