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물레방아
이만희, 1966
이만희 감독의 <물레방아>는 1966년 문예영화의 붐 속에서 제작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당시 “본능에 사는 여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원색을 표출”(한국일보, 1966.11.8)하는 “향토색 짙은 애욕의 비극”(조선일보, 1966.11.10)으로 “격조 높은 문예영화”(경향신문, 1966.11.12.)라는 호평을 받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을 연상시키는 카메라워크가 지적받기도 하고, 금분(고은아)이 신치규를 받아들이는 데 설명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관객 동원에도 성공하고 해외영화제에도 출품되며 1960년대 예술영화를 대변하는 ‘문예영화’ 중 하나로 남는다.
후대에 이 영화가 재발견되는 것은 2000년대에 불완전판으로 공개되면서부터이다. 영화평론가들에 의해, “이만희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정성일), “한국영화사상 가장 신비로운 영화”(허문영), “이만희 영화의 또 다른 경지”(김영진)라는 극찬을 받으면서 이 영화는 이만희의 장르 영화와 문예영화의 범주를 넘어서는 독특한 영화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그러나 현재 음성이 부분적으로 유실된 상태인 데다 마지막 부분이 개봉 당시와는 다른 형태로 남아 있어서, 이 영화는 이만희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본격적인 비평에서 조심스러운 면이 있으며 그에 따라 한국영화사 안에서의 위상도 안정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걸작이라는 소문에 비해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도 그러한 데에서 기인한다 하겠다. 그러나 불완전판만으로도 <물레방아>는 충분히 독보적이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연유한다. 첫째, 밑도 끝도 없는 인간의 욕망을 한국영화사상 가장 절실하게 설득해낸다는 점이고, 둘째, 그 속에서 아웃사이더의 비애를 처절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물레방아>에 대해서는 원작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차용하지 않은 영화라는 말이 있으나 그것은 표면적인 서사 차원의 문제이고 실제로는 오히려 원작의 본의에 가장 충실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원작은 이방원과 ‘그의 처’ 혹은 ‘계집’으로 지칭되는 여인의 지독한 사랑을 다룬다. 그 사랑은 여인이 지닌 본연의 고혹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원작에서 “새침한 얼굴이 파르족족하고 길다란 눈썹과 검푸른 두 눈 가장자리에 예쁜 입, 뽀로통한 뺨이며 콧날이 오똑한 데다가 후리후리한 키에 떡 벌어진 엉덩이가 아무리 보아도 무섭게 이지적(理智的)인 동시에 또는 창부형(娼婦型)으로 생긴 것이다.”라고 형용되는데, 그 치명성으로 인해 도발되는 남성들의 정욕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물레방아’로 상징되는 자기 집중적인 정념의 세계를 샤머니즘적 홀림으로 번역한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바닷가의 여름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사람을 죽였다고 하듯이, 방원(신영균)은 햇살이 부서지는 여름날 제의에서 만난 여인에게 매혹되어 신들린 것과 같은 상태에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여기에서 그러한 방원의 행동을 관객이 설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애초부터 이성이나 의지를 지니지 않은 듯한 무구한 요부의 이미지와 그것에 홀린 우직한 남자의 불가항력적 행보이다. 왜 병자한테 시집을 갔느냐는 질문에 “왜는요? 보내니까 갔죠.”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거나, 내연의 대가로 받은 고무신에 대해 묻는 남편에게 “주인이 사줬어.”라고 무심하게 말하고, 자기로 인해 신치규(최남현)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는 방원을 보면서 “왜 자꾸 때려요?”라고 천진하게 되묻는 여자(고은아)의 모습은 그 자체로서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을 보여준다. 그러한 매력이 중심에 있는 이상 방원의 비이성적인 행동은 설득력을 얻게 된다. 그리고 비이성적 행동을 이끄는 방원의 신들린 욕망은 버선, 발, 속옷 등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는 페티시즘적 카메라워크와 빛과 어둠의 현란한 대비를 통해 형상화된다.
게다가 영화의 결말을 보다 처절한 파국으로 밀고 가는 인자는 주인공이 떠돌이라는 점이다. 원작에서 남자 인물은 ‘이방원’으로, 여자 인물은 이름 없는 계집으로 제시되는 것과 달리, 영화에서는 오히려 방원이 자신의 성씨를 모르는 인물이 되고 여자는 ‘금분’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는 방원과 금분의 사회적 위상을 상징한다. 원작에서 계집은 방원과 바람이 나서 함께 다른 마을로 도망친 인물이지만, 영화에서는 금분이 있는 마을에 떠돌이 방원이 찾아들게 된다. 금분은 마을에서 가장 어여쁜 여인으로 마을 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청상과부이다. 떠돌이가 금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일이며 그 무리한 일에 매달릴수록 방원이 감내해야하는 박해는 강화되어간다. 방원의 우직한 사랑에 대한 마을 남성들의 야유는 질투에 찬 분노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것이 외화 되었을 때 방외인에 대한 집단적 폭력의 양상을 띠게 된다. 방원이 분이를 죽인 뒤에 마을 사람들이 분이의 시신만을 수습해가는 마지막 장면은 감히 탐할 수 없는 것을 탐한 방외인의 결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레방아>는 사회 문제를 정면을 다루지 못한 채 문예영화라는 이름 아래 자연과 유비된 인간의 본능에 탐닉하거나 에로티시즘으로 에둘러야 했던 시대에 오히려 원초적 욕망과 정면 승부한 영화이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욕망의 분배 면에서 제 몫이 없었던 방외인의 비애를 절실하게 드러내는 아이러니를 성취한다. 존재의 무상(無常) 내지 인간의 구경(究竟)이라는 보수적인 세계로 귀의하지 않으면서 저돌적인 욕망과 그 부조리한 결과에 대해 논리를 넘어서는 개연성을 이만큼 부여한 영화는 한국영화사상 없었다. 이는 이만희 감독의 천부적인 영상 감각과 그 감각에 내장되어 있는 진정성의 기율에서 비롯된 놀라운 성취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