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애니메이션과 인문학 사이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 -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환경 등 관계나 사이의 소통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인문학이 언제부터인가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기 시작했다. 오늘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최첨단 기술 시대를 살아가면서 인문학을 몰라도 먹고사는데 큰 지장이 없고, 그렇다고 취업에도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소위 경쟁력이 떨어지는 학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인문학자들 사이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 과거에는 없었던 창의적인 결과물을 속속 내놓고 있는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인물들이 하나 같이 인문학적 가치에 주목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인문학이 새롭게 사람들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화두의 중심에는 바로 애플의 전설적인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있었다. 아이폰이 세상에 처음 공개되던 날,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이처럼 창의적인 제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가를 언급하게 된다. 애플은 항상 인문학적 상상력을 융합한 기술적 관점의 교차점에서 가장 발전된 제품을 만들고자 했으며, 사용자가 조금 더 쉽게 이해하면서 즐겁게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인문학적 상상력은 심지어 과학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년 초였나? 영화제 프로그램 때문에 신작 SF 영화 리스트를 살펴 볼 요량으로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서핑하다 우연히 영국 과학자를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설문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었다. 질문의 요지인즉슨 과학자를 꿈꾸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냐는 건데 놀랍게도 설문에 참여한 과학자들 중 70% 이상이 어릴 적 SF 소설이나 영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답변이었다. 언뜻 들으면 이러한 결과에 고개를 갸우뚱 할 사람들도 많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혀 생뚱맞은 결과만은 아니리라. 영화 탄생 이후 인간의 과학적 호기심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혹은 상상으로만 끝났을 것들을 시각적인 영상으로 재현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제시해 왔고, 더군다나 이러한 인간의 기발한 과학적 상상력과 예술적 감성의 만남은 SF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을 하나 둘 씩 현실에서 실현 가능하도록 했으니 말이다. 그 옛날 쥘 베른이 꿈꿨던 소설 속 달나라 여행이 이제 더 이상 작가 혼자만의 ‘공상’이 아닌 ‘실재’가 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분야보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애니메이션 역시 인문학적 사고의 배양은 필수 불가결 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애니메이션에 있어 창의적 스토리의 개발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 핵심이 된다.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 역시 스티브 잡스의 믿음처럼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에 당위성을 두고 최신 컴퓨터 기술의 시각적 현란함과 기발한 상상력, 잘 짜여진 스토리 구성으로 관객들의 정서를 움직이며 재미와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픽사의 성공에는 직원들을 위한 교육 과정도 한 몫하고 있다. 회사 내에 교육기관을 따로 설립하여 직원들이 문학, 역사, 철학 등의 다양한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수강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와의 교류와 경험을 통해 신선한 아이디어와 스토리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 역시 시대적 배경이나 소재 및 스토리를 위해 신화나 역사를 차용하면서 동양적 가치의 철학적 사유를 작품에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중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양한 소재 발굴과 서사전략이 필요하다. 때문에 인문학적 지식의 활용은 풍부한 애니메이션 텍스트를 만들어 내기 위해 유리하게 작용될 수 있다. 물론 가공되지 않은 무차별적인 소스의 삽입은 오히려 작품에 독이 되기도 한다. 인과 관계 없는 인문학적 소스의 남용은 작품을 난해하게 몰고 가면서 몰입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몇 몇 장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 이러한 결과를 경험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런 장애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소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반가운 것은 요즘 교육현장에서 문학을 비롯한 역사나 철학, 심리학 등과 같은 인문학적 통찰을 위한 과목의 개설과 장르 간 통섭이 활발해 지면서 균형 잡힌 교육을 위한 노력이 점차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인문학에 대한 관심만 있다면 온오프라인 상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강연들도 많아졌다.
여전히 철학은 밥 먹고 사는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인문학은 삶의 의미와 연계한 사고와 지혜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미래는 창의력의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인문학적 통찰과 가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당장 책장으로 달려가 곱게만 모셔 두었던 인문학 관련 서적 한 권 꺼내 읽으면서 서서히 미래를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