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박 터지는 멀티플렉스의 2부 리그
<두 개의 문>이 6만 명의 관객과 만났다. 제작진의 한 사람으로서 몹시 기쁘다. 하지만 동시에 참 낯설다. 독립영화를 개봉하는 모든 이가 꿈꾸는 1만 관객을 훌쩍 넘기다니, 낯설 수밖에. 때로는 비현실적 상황인 요즈음, 그 안에서 ‘어떤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흥행 현상을 경험하면서 <종로의 기적>의 ‘소박했던’ 개봉 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절대적 매커니즘을 목격한 기분이다.
<두 개의 문> 개봉 첫 주의 높은 관객 점유율과 뜨거운 반응 덕분에 우리 모두는 상영관 확대를 기대했었다. 특히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을 통해 ‘독립영화 음영지역’에서도 개봉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두 개의 문>의 기록적인 흥행에도 불구, 멀티플렉스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인 ‘무비꼴라쥬’나 ‘아르떼’ 밖으로 나가긴 쉽지 않았다. 이미 수용 한계에 다다른 전용관이 아닌 일반 상영관에서도 상영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극장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말하자면 <두 개의 문>은 멀티플렉스의 2부 리그 소속이었다. 일반 상영관과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은 철저히 분리된 시스템이었다. 물론 견고한 극장 문이 열리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 문으로는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이 날렵하게 치고 들어왔다. 전용관의 상영작들이 문 밖을 나서는 것은 1부 리그 진출이 아닌 종영을 의미했다. 가끔 지역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먼저 상영을 요청, 일반 상영관에서 짧게나마 개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혜’는 멀티플렉스 본부의 지시가 아닌 현지 관객들의 끊임없는 상영 요청 덕분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부 리그는 박 터질 수밖에 없었다. 사이좋게 멀티플렉스에 진출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들은 전용관 안에서 곧 서바이벌 오디션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우열이 정해졌고, 순번이 매겨졌다. 전국 멀티플렉스 좌석 수의 1%도 안 되는 전용관을 수십편의 독립?예술영화들이 나눠가졌다.
그러다보니 전용관의 동료들이 괜스레 미워지기까지 했다. 유수한 영화제를 석권한 거장들의 아트하우스 작품과 스타급 명배우를 기용한 작가주의 영화들과도 한 배에 올라 경쟁해야 하다니, 이건 좀 불공정하지 않은가? 이왕 전용관을 운영할 거라면 국내파와 해외파,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의 섬세한 구분과 안배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복잡다단한 생각에 이르자 억하심정에 갑자기 분노가 터져 나왔다. “다양한 영화들에게 극장 문을 열면 될 것을, 왜 이런 구별 짓기까지 해야 하는 거냐고!”
포화 상태에 이른 가두리 양식장에 있으려니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여름 블록버스터의 파상공세가 시작되고, <두 개의 문>의 관객 점유율이 떨어지는 시점부터 그 분노는 서서히 안도감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전쟁터 같은 여름 극장가에서 이마저도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고마워라, 멀티플렉스 전용관이여!’ 이 지경에 이르니 조삼모사가 따로 없다. 순간 <돈의 맛>에서 쌍용자동차 진압 장면에서 재벌가의 아들이 이죽거렸던 대사가 떠올랐다. “싸구려 아파트 하나 줘서 중산층입네 하고 살게 했어야 하는데.” 아주 독한 가정이지만, 나는 극장 재벌의 머리 속엔 분명 이런 대사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멀티플렉스가 전용관 하나 던져주면 그 안에서 아웅다웅 독립영화 개봉합네, 예술영화 합네 하며 살겠지.”
전국적인 네트워크, 다양한 관객을 염두에 둔 빼어난 접근성, 최신의 쾌적한 시설의 풍부한 자원을 확보한 멀티플렉스. 장사의 이치에 통달한 극장 재벌들은 자신의 멀티플렉스에서 개봉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에 자족하도록 매트릭스를 펼쳐놓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그들은 ‘두 개의 문’을 절묘하게 배치하여, 영악하게 이용 중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문을 열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척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뽐내고, 다른 한 쪽 문은 굳게 닫은 채 그 뒤에서 게걸스럽게 긁어모은 돈의 맛을 탐닉하고 있을 것만 같다.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도 특별한 감격의 순간은 찾아온다. 머지않아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두 개의 문>의 1만 번째 관객을 만나기 때문이다. <두 개의 문>의 총 6만 관객 중 15% 이상이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경쟁 논리가 아닌 조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가짐, 흥행 스코어에 따라 난잡하게 시간표를 바꾸지 않고 관객들과 충분히 만날 수 있는 꾸준한 상영 회차를 안배하는 고집, 무엇보다 독립영화를 향한 응원의 마음과 무한한 믿음이 왜 중요한지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두 개의 문> 개봉을 앞두고 개봉을 통해 자력갱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작은 바람이라 했는데, 개봉을 경험하며 아주 큰 바람이 생겼다. 내가 만든 영화로 큰 수익을 얻는다면 극장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꿈. 물론 독립영화 전용관으로! 모두들 치기 어린 장래희망이라 했던 영화감독의 꿈도 25년 만에 이뤘으니, 극장을 짓는 꿈은 20년 정도면 가능하려나. 아차, 그러려면 일단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구나. 자! 그럼 저는 이제 차기작 준비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