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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망령의 곡

박윤교, 1980

[한국영화걸작선]망령의 곡 대표 이미지

화창한 날이거나 무더운 날이었던 것 같다. 평소에 극장 나들이를 즐겨 하시지도 않았던 어머니가 왜 그날 극장에 가셨고 여러 영화중에서도 왜 그 무서운 영화를 혼자 골라 보신 것인지 알 수 없다. 아직은 그런 영화를 볼 나이도 아니었을 여섯 살 혹은 일곱 살짜리 아들을 함께 데리고 간 것을 보면 우연히 보았건 의도적으로 보았건 극장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 당신께서도 적잖이 무서웠던 건 아니었을까 짐작될 뿐이다. 그날에 대해서 훗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잘 알지 못하셨다. 하지만 나는 평생을 잊지 못했다. 그날 느낀 극장에서의 공포감을. 수십 년이 지나도 그 영화의 기본적인 내용과 몇몇 장면은 잊히지를 않았다. 그것이 내 기억에 존재하는 나의 생애 첫 번째 영화였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제목은 떠오르질 않았으니 답답한 일이었다. 그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0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회고전에서였다. 유년의 기억이 돌아와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박윤교의 <망령의 곡>(1980)이었다. 

대를 이어내려는 가부장적 재벌가의 강요로 젊은 새 며느리(점례)가 아이를 낳은 다음 세상을 떠나게 되고, 한 맺힌 그녀가 가문에 복수를 감행한다는 내용은 무섭지만 실은 상투적이다. 박윤교는 ‘며느리’와 ‘한’만 있으면 공포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내는 감독이었으니 그의 영화 인생 후반에 속하는 이 영화의 내용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또렷이 기억하는데 내게 공포의 근원지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실은 다른 두 가지였다. 점례의 관 위에 덮인 붉은 천, 그러니까 점례의 괴기한 출몰이 아니라 그녀가 죽어서 그 안에 있다는 걸 상상하게 하는 그 붉은 천이 참으로 두려웠다. 그것이 죽음이라는 것에 관한 나의 첫 번째 인식이었음은 훗날 돌이켜본 다음에야 알게 됐다. 

영화 속 돌산의 풍경과 그곳에서 벌어진 사건을 볼 때의 공포감은 그 관의 붉은 천 보다 더 강력했다. 죽기 전 며느리 점례는 마지막 소원으로 말하기를 제발 자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고 했다. 그 부탁만 지켜졌어도 점례는 여귀가 되어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회장의 지시를 받고 점례의 관을 옮기던 회사쪽의 직원들은 그녀의 관을 그냥 회사 소유의 개발부지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매장해버린다. 점례가 여귀가 되어 돌아오자 직원들은 그녀의 관을 다시 찾으려 하는데 그 관이 묻힌 위치를 알 길이 없다. 이미 땅은 개발의 초입에 들어서 전부 파헤쳐져 있고 사방에는 돌과 붉은 흙만 널려 있을 뿐이다. 직원 한 명이 점례의 관을 찾으러 그 돌산을 헤매다가 하필이면 발파 장소에 이르러 다이너마이트의 폭파와 함께 몸이 산산조각 나던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끔찍했다. 유년 시절에는 그 장면이 이유 없이 무서웠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의미심장하여 음산하다. <망령의 곡>의 한은 양지 바른 곳에 소박하게 묻히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하고 황폐한 돌산 그 아래 묻힌 자의 한이다. <망령의 곡>의 여귀도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 때문에 찾아왔다. 개발 독재 안에서만 가능했던 그 돌산의 살풍경은 오래도록 잊기 힘든 것이었다. 

다른 방식으로 박윤교와 <망령의 곡>에 관하여 조금 더 덧붙일 수는 있을 것이다. <망령의 곡>이 박윤교의 가장 큰 흥행작 중 한 편인 것은 알려져 있다(그러니 극장에 잘 가지 않던 가난한 아기엄마까지도 극장으로 불러들였을 것이다). 몇 장면에서 두드러지는 어딘가 투박하지만 단호한 플래시백의 유용성에 대해서도 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플래시백의 경험치를 놓고 역으로 관객과 게임을 벌이는 어떤 장면 효과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와 무속과 기독교를 고루 개입시키는 전략 및 저예산 공포영화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셋트와 로케이션의 활용도 말할 만한 것이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장르영화의 노림수를 넘어서는 진짜 죽음의 기운이 어느 때부터인가 감돈다. 그것이 전적으로 의도적이고 능숙한 연출에 의해서가 아니라 피할 길 없는 시대적 반영에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고 해도 그렇다. 어처구니없이 강력하고 위태롭고 돌이킬 수 없는 전멸적인 결과로서 도처에 널린 죽음의 기운들. 그 기운들이 <망령의 곡>에 떠돈다. 인과응보에 해당하는 이 영화의 결말은 그러므로 사족에 불과하다. 

박윤교의 <망령의 곡>이 비범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망령의 곡>은 마치 마리오 바바의 어떤 저예산 B급 공포영화가 그러하듯이 영화 내내 조악하다가 한 순간 심연의 무엇을 길어 올리는 경험을 전한다. 그것이 나의 미숙한 유년의 기억에 빚진 착각일지라도 나는 그 조악함이 불러들인 음산함에 원초적 힘이 있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참으로 일찍이 죽음에의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이 영화를 내 생애 첫 번째 영화 혹은 나의 첫 번째 길티 플레저로서의 걸작이라고 말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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