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추격자
나홍진, 2008
치밀한 시나리오와 연출력 그리고 무엇보다 ‘80년대성’이라는 역사적 현실과 시대적 감수성에 대한 의미심장한 영화적 환기를 통해서 크게 성공을 거둔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이 스릴러의 산업적 가능성과 더불어 사회심리적 유의미성을 제기해주었다면, <추격자>야말로 <살인의 추억>을 잇는 최고의 적자라고 할 수 있다.
<추격자>의 성공 이유는 대략 네 가지 측면을 꼽을 수 있다.
첫째, ‘느와르적인 스타일’의 효과적 활용.
둘째, 괴물인 연쇄살인범과 그 추격자를 중심으로 한 ‘심리적 긴장감’의 성공적 구축.
셋째,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과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지닌 강한 설득력.
넷째, 희생자 여성의 묘사방식을 통한 ‘무의식적 쾌락’의 은밀한 환기.
이 요인들이 말해주는 것은 이 영화가 한편으로는 스릴러의 ‘장르적’ 핍진성은 물론이고 강하고 설득력있는 ‘현실적’ 핍진성을 더한 결과라는 점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범죄를 중심으로 한 사회 스릴러와 고어(gore) 이미지 및 ‘희생자 여성’에 기반한 공포 스릴러를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추격자>는 텍스트적 측면과 관객성의 측면 모두에서 이중의 구조를 효율적으로 작동시킴으로써 풍부한 의미화 작용을 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사회적(의식적) 차원과 심리적(무의식적) 차원에서 복합적인 쾌락을 선사하고 있다.
<추격자>의 주된 배경을 이루는 어둡고 타락한 도시의 밤거리, 그 이면에 존재하는 파괴적인 충동과 일상적인 폭력성 그리고 인간의 타락한 욕구와 성이나 물질에 대한 본능적인 집착 등에 대한 묘사는 세기말적인 어두움과 광기 그리고 정신적인 혼란과 사회적 격변을 배경으로 하는 묵시록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또한 빛과 어두움의 교차, ‘비’라는 모티브를 통한 인간 내면의 단절감과 비애의 표현 그리고 ‘추격자’의 시선과 동일시된 카메라의 불안정한 앵글과 움직임 등은 등장인물들을 압박하는 편집증적인 심리나 실존적 불확실성에 둘러싸인 시대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더구나 개인의 윤리적 약호에 따른 부조리한 도덕적 선택 그리고 권력이나 제도가 무능하거나 부패하여 희망 없는 어두운 세계라는 영화의 주제의식 역시 느와르적 특성을 환기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성공은 ‘캐릭터의 성공’에 기반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연쇄살인범 ‘지영민’의 악마성과 그를 추격하는 ‘엄중호’의 영웅성이 모두 모호하고 복합적인 동시에 특히 ‘지영민’의 경우에 남성의 자아와 성 심리에 대하여 많은 함축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스릴러로서의 <추격자>가 깊이 있는 현실 인식과 비판적 메시지를 제시함으로써 영화보기의 또 다른 쾌락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엄중호’가 직면하게 되는 한국 사회의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영화의 날카롭고 핍진성있는 묘사에서 비롯된다. <추격자>는 마치 한 편의 사회 드라마처럼 영화 속에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현실을 배치시키며 이를 스릴러라는 중심축과 조화롭게 결합시켜낸다. 그런 점에서 ‘엄중호’는 살인마와의 대결이나 살인 범죄의 입증이라는 지배적인 플롯보다는 비도덕적이고 비효율적인 권력 시스템과의 대결이나 자신의 사적 진실의 입증이라는 부차적인 플롯 속에서 더 많은 서사적 시간을 소모하는 동시에 더 강력한 서사적 쾌락을 발생시키게 된다.
따라서 <추격자>가 보여준 장르적 성취는 충분한 주목과 평가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스릴러 영화와 같은 비상업적 장르의 영화적 완성도를 높이고 심리적 호소력를 확장함으로써 그 산업적 가능성을 가시화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적 텍스트에다가 특정하고 설득력있는 사회적 의미망들을 성공적으로 삽입함으로써 장르 영화의 사회적 핍진성을 제고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