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애니메이션의 플랫폼이 바뀌고 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다니던 1970년대,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놀다가도 오후 5시면 어김없이 집에 뛰어들어온다. TV 애니메이션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이제 생각해보니, 모두 일본수입 애니메이션이었지만, 당시로써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TV 프로그램이며, 그 애니메이션이 그려진 만화잡지와 동화책, 그리고 화보집과 캐릭터 상품을 꼬깃꼬깃 용돈을 모아 사모으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방학 때마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기껏 챙겨보던 유일한 극장방문 기억은 <로보트 태권브이>와 <마루치 아라치>와 같은 국산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이었다. 영화주제가를 크게 따라부르며 이제는 뵐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김청기 감독님이지만, 당시로써는 우상이었던 감독님을 연호하던 시절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일본애니메이션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친구들과 캐릭터의 연표와 역사를 우겨가며 싸우던 시간도 있었다. 우리가 경험해온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플랫폼은 이처럼 TV, 극장, 그리고 비디오였다.
애니메이션을 기획할 때마다 가장 먼저 정하는 것은 플랫폼이다. 그 플랫폼에 맞추어 시간과 장르, 캐릭터와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애니메이션 제작펀드를 받기 위해 기획서를 작성하는 프로듀서들은 대개 TV용 시리즈 애니메이션과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그리고 DVD로 배급할 작품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고민한다. 그러나 최근 애니메이션 플랫폼의 대세가 바뀌고 있다. 전환되는 시점을 넘어 이제 주된 배급시장의 유통구조와 제작시스템이 혁신적으로 재배치되고 있다.
TV 시리즈의 경우, 지상파 중심의 타임벨트(time belt, 오후 4시~5시의 애니메이션 방영 시간대)가 급격하게 붕괴되고 있다. 수 십 년 동안 지켜오던 지상파의 애니메이션 고정시간대가 더 이상 맞춤형 관객과 만날 수 없는 시간대임을 자인하기 시작했다. 대개 오후 4시에서 5시까지 방영하던 신규 국산 애니메이션 방영 시간대에 TV 앞에 달려와 애니메이션을 봐줄 관객들이 없다. 대부분 방과 후 수업과 학원 수강으로 프로그램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EBS처럼 취학 전 아동을 위해 아침 8시~9시, 오후 3시~4시라는 맞춤형 시간대 전략을 성공적으로 편성한 지상파 방송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방송사가 애니메이션의 유용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환되었던 방송플랫폼이 케이블의 애니메이션 전문채널 PP(Program Provider)였다. ‘투니버스’로 시작된 애니메이션 전문채널의 인기는 ‘애니원’, ‘챔프’, ‘애니박스’, ‘애니맥스’ 등으로 신규채널의 신설 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채널들도 프라임타임에 집중적으로 배치한 일본애니메이션 붐이 잦아지면서 결국 마니아 중심의 채널로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극장용 장편의 경우, 2014년 초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흥행신드롬이 그나마 플랫폼의 생명력을 연장시켰다. 연속되는 드림웍스의 흥행실패와 새로운 신작 시리즈의 출현이 더뎌지면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도 이제 그 수명이 다 된 것처럼 여겨졌는데, 블루스카이,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 라이카 스튜디오, 소니픽쳐스 등의 영화사들이 신작을 새롭게 선보이고, 역시 디즈니라는 찬사와 함께 2014년의 문을 열었던 <겨울왕국>은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신화를 재현했다. 그러나 여전히 국산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의 기획과 제작, 그리고 배급 및 상영은 힘들고 어둡다.
최근, IPTV를 통한 VOD 배급이 본격화되면서 애니메이션의 유통배급망이 실시간으로 구매하여 스마트기기에 저장하고, 언제 어디서나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VOD 구매로 전환하고 있다. 특히 취학 전 아동 및 유아를 동반한 부모들의 애니메이션 구매는 거의 IPTV와 앱 및 포털사이트의 VOD 구매로 이어진다. 식당, 장보기, 대중교통 등에서 필요한 아이들을 달래주고 봐주는 콘텐츠로 스마트 기기에 저장된 애니메이션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글의 유튜브와 네이버 티비캐스트(tvcast) 등 OTT(Over The Top)서비스를 통해 애니메이션 클립으로 상품을 소비하는 세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결국 무료로 애니메이션을 즐기고 그러한 영상서비스 전에 보여지는 광고를 소비함으로써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즐기는 실속소비자가 애니메이션 수요의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플랫폼의 혁신은 애니메이션 제작 장르의 변화까지 주도하는 추세다. ‘라바’의 성공 이후, 1분~2분 이내의 초단편 애니메이션 클립이 옴니버스식 에피소드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다. 대사 없는 넌버벌(Non verbal), 몸개그를 통한 슬랩스틱 유머, 3D 캐릭터 디자인, 유머러스한 반전과 반복적인 음악 등 장르화 되고 있는 작품의 유형이 국산 애니메이션의 제작 트랜드를 형성하고 있다. 공공 사이니지와 시내버스 및 지하철의 영상방송 등으로 소개되면서 이러한 초단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공략은 스마트한 소비시대에 맞춤형 고객 찾기 라는 새로운 전략을 이해시킨다.
플랫폼이 변하면 콘텐츠도 변해야 한다. 콘텐츠가 플랫폼이 되는 시대, 애니메이션도 이제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