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성우 유감

[칼럼]성우 유감 대표 이미지

의외로 애니메이션은 ‘듣는’ 매체다. 때론 강렬한 시각적 자극보다 청각적 호소력이 훨씬 강하게 작동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라디오 방송에서 뽀로로 역을 연기한 성우가 출연해 아이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코너를 들었다. 뽀로로를 철썩같이 믿는 아이들의 마음이 참 귀여웠지만 그보다 먼저 성우의 연기에 감탄했다. 아이가 뽀로로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건 단지 동심의 상상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애니메이션은 목소리만으로 캐릭터에 피와 살이 돌게 하는 몇 안 되는 표현방식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눈으로 움직임을 감상하고 귀로 캐릭터를 상상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만큼 애니메이션 성우들은 적지 않은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성우의 목소리는 곧 애니메이션 캐릭터 그 자체다. 캐릭터에 대한 사랑은 성우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애니메이션 전반의 팬덤으로 확장된다. 팬과 연기자, 좋은 작품의 삼박자를 갖추면 산업은 절로 순항하기 마련이다. 아쉬운 건 이처럼 단단한 팬덤이 늘 긍정적인 쪽으로만 작동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얼마 전 <겨울왕국>의 흥행과 함께 제기된 국내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더빙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만 몇 해 전부터 해외 수입된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편수는 급격히 늘었다. 아동 시장의 확대, 교육용 애니메이션 열풍, 비교적 저렴한 수입가격 등 몇 가지 요인이 맞물리며 경쟁적으로 수입을 한 탓이다. 애초에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한만큼 더빙은 필수였고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한정된 시장에서 적은 비용으로 경쟁하려니 고육지책으로 짜낸 것이 소위 ‘연예인 더빙’이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마케팅 효과까지 노릴 수 있어 대다수 수입사들이 연예인 더빙에 집중했다. 하지만 비슷한 영화들이 양산되면서 이내 목소리 연기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짧은 기간 더빙을 해야 하는 환경 상 질적인 하락을 피해가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 전문성우를 기용한 <겨울왕국>이 크게 흥행하며 찻잔 속 태풍으로 그쳤던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이다. 일각에선 <겨울왕국>의 흥행에 성우들의 연기력도 결정적인 요소였다는 분석을 내놓았고 이에 맞춰 작품의 질을 위해 전문성우를 기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전문적인 기량을 요구하는 분야인 만큼 성우들의 숙련된 연기가 작품의 질을 높인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겨울왕국>으로 한동안 소외되었던 성우업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긍정적이다. 다만 성우팬덤을 중심으로 종종 그 정도가 지나친 지적들이 있어 조금은 걱정스럽다. 가령 그간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부진과 질적인 하락을 전부 연예인 더빙 탓으로 단순화시키는 태도가 그렇다. 상대적으로 억눌려 왔던 성우 팬들은 간혹 이 문제에 대해 공격적으로 나설 때가 있다. 심지어 특정 연예인, 혹은 비전문 성우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단지 방향이 바뀌었을 뿐 연예인 더빙 일색이었을 때의 일방적인 논리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숙련되지 않은 연예인 더빙, 날림으로 녹음한 사례가 없진 않다. 하지만 반대로 기존 연기자나 스타가 녹음한 작품이 훨씬 좋을 때도 있다. 심지어 드림웍스, 블루스카이 같은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들도 상황에 따라 전문성우와 스타를 번갈아 기용한다. 일반화시킬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이는 당장 속은 후련할진 몰라도 결국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게으름으로 이어진다. 차라리 누가 녹음하는가 보다는 어떻게 녹음하는가를 먼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성우 더빙, 연예인 더빙 이전에 캐릭터를 제대로 파악하고 진심으로 연기하는지부터 봐줬으면 좋겠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성우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착보다는 더빙과 자막판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먼저 주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황에 따른, 취향에 따른 유연한 표현방식의 선택, 그리고 다른 방식에 대한 너그러운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제야 애니메이션을 넘어 외국영화들까지 극장에서 더빙으로 볼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의외로 애니메이션은 ‘듣는’ 매체다. 때론 강렬한 시각적 자극보다 청각적 호소력이 훨씬 강하게 작동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라디오 방송에서 뽀로로 역을 연기한 성우가 출연해 아이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코너를 들었다. 뽀로로를 철썩같이 믿는 아이들의 마음이 참 귀여웠지만 그보다 먼저 성우의 연기에 감탄했다. 아이가 뽀로로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건 단지 동심의 상상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애니메이션은 목소리만으로 캐릭터에 피와 살이 돌게 하는 몇 안 되는 표현방식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눈으로 움직임을 감상하고 귀로 캐릭터를 상상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만큼 애니메이션 성우들은 적지 않은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성우의 목소리는 곧 애니메이션 캐릭터 그 자체다. 캐릭터에 대한 사랑은 성우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애니메이션 전반의 팬덤으로 확장된다. 팬과 연기자, 좋은 작품의 삼박자를 갖추면 산업은 절로 순항하기 마련이다. 아쉬운 건 이처럼 단단한 팬덤이 늘 긍정적인 쪽으로만 작동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얼마 전 <겨울왕국>의 흥행과 함께 제기된 국내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더빙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만 몇 해 전부터 해외 수입된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편수는 급격히 늘었다. 아동 시장의 확대, 교육용 애니메이션 열풍, 비교적 저렴한 수입가격 등 몇 가지 요인이 맞물리며 경쟁적으로 수입을 한 탓이다. 애초에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한만큼 더빙은 필수였고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한정된 시장에서 적은 비용으로 경쟁하려니 고육지책으로 짜낸 것이 소위 ‘연예인 더빙’이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마케팅 효과까지 노릴 수 있어 대다수 수입사들이 연예인 더빙에 집중했다. 하지만 비슷한 영화들이 양산되면서 이내 목소리 연기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짧은 기간 더빙을 해야 하는 환경 상 질적인 하락을 피해가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 전문성우를 기용한 <겨울왕국>이 크게 흥행하며 찻잔 속 태풍으로 그쳤던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이다. 일각에선 <겨울왕국>의 흥행에 성우들의 연기력도 결정적인 요소였다는 분석을 내놓았고 이에 맞춰 작품의 질을 위해 전문성우를 기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전문적인 기량을 요구하는 분야인 만큼 성우들의 숙련된 연기가 작품의 질을 높인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겨울왕국>으로 한동안 소외되었던 성우업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긍정적이다. 다만 성우팬덤을 중심으로 종종 그 정도가 지나친 지적들이 있어 조금은 걱정스럽다. 가령 그간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부진과 질적인 하락을 전부 연예인 더빙 탓으로 단순화시키는 태도가 그렇다. 상대적으로 억눌려 왔던 성우 팬들은 간혹 이 문제에 대해 공격적으로 나설 때가 있다. 심지어 특정 연예인, 혹은 비전문 성우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단지 방향이 바뀌었을 뿐 연예인 더빙 일색이었을 때의 일방적인 논리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숙련되지 않은 연예인 더빙, 날림으로 녹음한 사례가 없진 않다. 하지만 반대로 기존 연기자나 스타가 녹음한 작품이 훨씬 좋을 때도 있다. 심지어 드림웍스, 블루스카이 같은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들도 상황에 따라 전문성우와 스타를 번갈아 기용한다. 일반화시킬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이는 당장 속은 후련할진 몰라도 결국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게으름으로 이어진다. 차라리 누가 녹음하는가 보다는 어떻게 녹음하는가를 먼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성우 더빙, 연예인 더빙 이전에 캐릭터를 제대로 파악하고 진심으로 연기하는지부터 봐줬으면 좋겠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성우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착보다는 더빙과 자막판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먼저 주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황에 따른, 취향에 따른 유연한 표현방식의 선택, 그리고 다른 방식에 대한 너그러운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제야 애니메이션을 넘어 외국영화들까지 극장에서 더빙으로 볼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