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도인’의 길을 따르는 ‘두물머리 픽쳐스’
2013년 7월 어느 여름날, 동네(경기도 양평군) 묵집에 들렀다. 두부와 도토리묵을 직접 제조하고 식당도 겸하고 있는데 바로 옆집이어서 술 땡기면 내 집 드나들 듯 들리는 곳이다. 그리고 늘 오는 동네청년(시골은 나이 4~50은 넘어야 청년 소리 듣는다)들을 만난다. 근데 그 날은 못 보던 머리 희끗한 동네청년이 묵집 마당 파라솔 밑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분 역시 같은 동네 주민으로서 이 집 단골이었다는데 같은 동네 살면서 직접 마주친 건 그 날이 처음이었다.
함께 합석한 자리에서 그는 대뜸 나에게 “1월생 아니냐?”며 “12월부터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몇 해 전 신을 영접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지금 아주 강력한 호랑이 신이 내려 나의 미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고 했다. 난 그 사람을 ‘도인’이라고 부른다.
사실 그 때만 해도 앞이 안 보이는 시기였다. 2005년 <핑크팰리스>, 2007년 <작은 여자 큰 여자 그 사이에 낀 남자> 이후 7년 가까이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2008년 일제고사 갈등으로 해직된 전교조 교사들의 저항과 복직과정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2009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지역에서 또 다른 싸움을 기록하게 됐다. 대한민국 유기농업의 발원지로 알려진, 그래서 김문수 (전)경기도지사가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까지 개최한 팔당 두물머리 유기농지가 4대강 사업에 포함돼 공원과 자전거길 조성을 위한 수용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역의 유기농민들이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나에게 찾아와 4대강 사업으로 농지가 수용당할 위기에 처했다며 이 상황을 대외적으로 알려낼 짤막한 홍보영상을 부탁했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 농민들의 3년 4개월간 끈질긴 저항 끝에 결국은 ‘사회적 합의’를 일궈내면서 본의 아니게 그 전 과정을 함께하게 됐다. 그사이 해직된 전교조 교사들은 복직했고 3년 치 촬영테이프가 고스란히 담긴 박스 옆에 두물머리 저항 350여 시간의 촬영테이프가 또 겹겹이 쌓였다. 두 자녀가 있는 한 가정의 아빠로서 7년 촬영에 매달리며 아내에게 집안 생계를 떠맡긴 심정은 말해 무엇하랴!

<두물머리>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꼬박 1년을 <두물머리> 편집에 매달렸다. 7년 만에 발표하는 작품인데 반응 없으면 더 이상 영화로 아내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그만큼 절박했고 오랜 시간 편집으로 지쳐 있었을 그 더운 여름날, 그만큼 그 도인의 말 한마디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반갑고 솔깃했다.
난 그간의 <두물머리> 작업을 설명했고, 도인은 영화가 반응 있을 것이고 그 영화가 나의 영화작업 기반이 될 테니 앞으로 딴 거 생각하지 말고 영화만 하라고 했다. 실제로 영화는 그해 12월 서울독립영화제서 ‘관객상’을 받고 이후 계속되는 국내영화제 상영과 수상, 세월호 이전까지 활발하게 공동체상영이 이루어지면서 약 5천여 명의 관객이 극장개봉 없이 영화를 봤다. 덕분에 상금과 상영료를 조금 모아 보증금을 마련하면서 양수리 두물머리 인근에 사무실을 얻고 ‘두물머리 픽쳐스’라는 독립영화 제작사까지 차렸다.

토요다큐멘터리 영화학교
영화사 명칭에 지역을 내세운 만큼 지역에 기반해서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경기문화재단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공모지원사업’을 알게 됐고, 공모에 당선돼 지난 한 해 ‘토요 다큐멘터리 영화학교-토닥토닥’를 운영했다. 지역 초, 중등 학생 25명이 5개조 프로젝트팀으로 나누어져서 약 9개월간 다큐제작기초과정을 배우며 작품을 만들고 학생들 손으로 직접 영화제를 개최해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반응이 좋아 지역의 예술가와 학생, 학부모가 만나는 학교 밖 예술교육프로그램으로 정착시켜나갈 계획이다. 내친김에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 하는 영화제작스쿨도 차려볼까 한다.

<명령불복종 교사>
그렇게 지역에서 기반을 잡아갈 즈음, 그간 묵혀 두었던 전교조 해직교사들의 250여 시간을 다시 내들었다. 숙제였다. 이 숙제를 마치지 않고서는 다음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래전 이야기라 시의성이 너무 떨어진 것 아닌가, 망설이고 있을 때 그 도인이 말했다. 영화가 필요한 상황이 다시 도래할 테니 꼭 제작하라고. 오히려 <두물머리>보다 더 나을 수 있다고.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교조에 대한 정부탄압이 노골화됐고 편집을 서둘러 <명령불복종 교사>라는 제목으로 다시 2014년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하면서 숙제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더 잘해보라고 ‘심사위원상’을 줬고, 2013년에 폐지됐던 초등 일제고사가 새해 다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 여전히 끝내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얼마 전에 다시 만난 도인이 그랬다. “앞으로 좀 바빠지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