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누가 자유의 스크린을 두려워하는가?
한국영화의 지난 2년간 관객 2억 명을 돌파하고 자국영화의 점유율이 50%를 넘어서며 제2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세계적으로 뒤지지 않은 영화시장, 불과 30여 년을 돌아보았을 때, 지금의 상황은 한강의 기적에 비견된다. 그러나 화려한 성취 이면에 대기업이 주도하는 영화산업은 심각한 시장 불균형에 놓여있다. 수직계열화와 독과점에 따른 병폐에 중지를 모아야 할 때, 영화계는 최근 또 다른 난처한 위기를 겪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영화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관료적 개입이다. 이러한 징후들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 정부 독립영화를 둘러싼 퇴행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민간단체들은 자립성을 세우며 이를 돌파해 왔다. 이러한 자율적 흐름은 지역으로 확산되어 독립영화의 저변 확대로 이어져 갔다. 민간과 정부는 다시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며 영화문화의 로드맵을 그려 나갈 때였다. 하지만 무엇이 우리의 발목을 가두고 있는가. 이를 논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몇몇 작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천안함 프로젝트> <다이빙 벨>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등등, 유령처럼 배회하던 어떤 힘들이 몇몇 영화에 대한 구체적으로 노골적인 탄압을 통해 실체화되는 듯하다. 지극히 합당하고 상식적인 제도와 규칙 속에 충분히 가능했던 것들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보편타당했던 시스템이 관료 체계 속에서 일그러지는 순간을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는 듯하다.
2015년 접어들면서 영화계가 겪는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빈곤을 반영하고 있다. ‘지원하니, 간섭하겠다’는 낡은 논리와 으름장의 향연! 부산시의 부산국제영화제 운영 개입, 영화진흥위원회 심의면제추천 개선 의지에 따른 일부 영화들의 상영보류, 예술영화전용관과 다양성영화개봉지원 사업에 대한 석연찮은 움직임. 각각 개별적인 로드맵에 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너무도 간명하게 하나의 주제를 향하고 있다. 영화 표현의 자유!
영화단체들은 일련의 사태를 근심하며 즉각적인 입장을 밝히고 연대하고 있다. 50여 개 단체들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 영화인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하였다. 존경받는 원로영화인에서부터 현장의 젊은 영화인까지, 영화제작사와 영화단체, 영화제를 포괄하는 대책위는 영화에 있어 표현의 자유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더불어 한편으론 현명하고 합리적으로 영화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귀한 에너지가 길바닥에 뿌려지는 것이 못내 울화통이 들지만, 한결같은 영화인들의 단호한 태도는 표현의 자유 없는 영화의 신체를 부여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네마로써 정신과 신체를 가지고 있는 유기체이다. 한국영화 역시 영혼이 표류하던 보잘것없는 신체를 가졌던 적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 오늘 우리 영화의 정신과 신체는 어떠할까?
얼마 전 부산국제영화제 미래 쇄신안을 논의하기 위한 공청회에 임권택 감독이 참석했다. 딱딱한 공간에 선뜻 어울리지 않는 노장은 자신이 무슨 정책을 얘기 하겠냐며, 그저 거들러 나왔다고 말을 시작했다. 과거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해외에 갔을 때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나라의 영화 예술가로서 꽤나 주눅 들어 내내 구석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마도 80년대를 기억하시는 듯했다. 이어 그는 현재와 같은 한국영화의 위상은 부산국제영화제로부터 비롯되었다며 후배들을 옹호하고 지지하였다. 102편의 영화를 연출한 거장의 소박한 말씀에 인간적인 존경의 마음이 먼저 일었다. 그 자신은 더 혹독한 예술의 시대를 통과했을 터인데, 시대를 온몸으로 체현한 그의 말에 무게를 두고두고 생각했다.
지난 1월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는 <앙리 랑글루아의 유령>을 상영했다. 시네마테크 운동의 대부 앙리 랑글루아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관한 다큐멘터리 필름이었다. 210분간의 시간 동안 나치의 눈을 피해 지켜낸 영화들, 누벨바그의 친구들, 시네마테크 관장 해임 파문과 이에 맞섰던 거대한 저항들, 이후 죽기까지 그의 영화적 행보가 펼쳐졌다. 랑글루아 해임 건은 결국 유럽 전역을 흔든 68혁명으로 이어졌고, 전 세계 영화인들의 지지와 연대 가운데 앙리 랑글루와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로 복귀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여기까지는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나,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를 통해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 문화부 장관 앙리 말로에 의해 주도되었던 랑글루아의 해임은 영화 수집가와 프로그래머로서의 그의 자질을 애써 무시하고 정부 지원금의 사용과 행정의 서투름에 대한 것으로 집중되었다는 것. 기세에 눌려 그를 복귀시킨 대신,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대한 지원금을 대폭 삭감하였다는 것. 그로 인해 시네마테크는 어려움에 처했고 랑글루아는 강의와 번외 활동을 통해 힘겹게 공간을 지켰다는 것. 세계적인 영화문화의 자산을 가진 나라치곤 유치한 과거사이다.
문화선진국들이 그러한 것처럼, 한국 역시 꾸준히 영화의 역사를 축적해 나가고 있다. 한국영화의 오늘도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지금의 과정이 미래에 부디 뼈아픈 과오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인들은 어서 빨리 현장으로 새로운 작품과 사투를 벌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자유의 스크린을 통해 투사되어야만 한다. 누가 이것을 가로막으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