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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독립다큐멘터리에 대한 어떤 고민 - 자립을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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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한 해를 시작하는 영화제이고, 다큐멘터리 영화제이기 때문에 많은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한곳에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들이 많다. 필자 또한 한 쪽 귀를 열어 요즘 제작자들의 화두가 뭘까, 엿듣기도 하고 거들기도 했다.

작년하고 다르게 올해 다큐멘터리 하는 사람들에게 ‘제도화’ 진입단계를 넘어서, 이젠 ‘산업화’ 단계로 나아가면서의 느끼는 불안감 혹은 위기의식 같은 것이 감지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광범위한 위기의식이라기보다, 어떤 균열에 대한 예감 혹은 직감 같은... 어찌 되었건, 이미 ‘제도권/비제도권’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한 이야기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극장개봉을 통해 상당 부분 영화산업 내 존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쯤에서 눈 감고 있는 것들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늦은 것은 아닌지. 

1998년 영화진흥공사에서 영화진흥위원회로 개편됨으로써 시작된 유일한 독립영화(다큐멘터리)제작지원은 이제 다양한 형태로 영화제, 재단, 기관에서 제작지원 및 배급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여타의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풍족하다면 풍족할 수 있는 지원 조건들이다. 그리고 2014년 CGV아트하우스와 대명문화공장이 공동 배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같은 다큐멘터리는 “앞으로 <워낭소리>를 넘어서는 다큐멘터리는 없을 거야”라고 단정했던 사람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다큐멘터리는 영화산업에서 나름 성공(?)적인 케이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지원, 배급지원은 시장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확대 재편되고 있다. 재편과정에서 제작자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만들어진 지원제도’에 잠재적 수혜대상이 되었다. 나름 봄날이다. 그런데 한기가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미 만들어진 지원제도’는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 누구나 받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 선택하게 되는 상황, 여기에서 선택과 ‘배제’의 정치학이 작동된다. 누구에게나 과실이 될 수 없으니, 배제와 경쟁이라는 논리가 한층 자연스럽게 작동하게 -피칭의 경우 그것을 전면화 하는 쇼잉- 된다. 또 하나, 제작지원이 많아질수록 잠재적으로는 다큐멘터리 제작환경 자체는 나아졌다고 보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제작자의 생활조건들은 나아졌느냐 하면은 여전히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환경 자체나 나아지겠지만, 현실에서 다큐하는 사람의 삶 자체는 팍팍하다. 이상한 부조합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지원제도가 주는 달콤함에 빠지기 쉬운 상황에서, 지원을 받게 되면 영화를 제작하고 지원을 받지 못하면 제작을 포기하는 상황. 지원받기 위해서 지원하는 상황. 아이러니한 상황은 그동안 오랫동안 고민해온 제작자들의 자립과 자생에 대한 실험들과 고민 그리고 노력과 연대들을 삼켜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뭔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

물론 지원제도는 필요하다. 그것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지원제도들이 개별 영화 혹은 프로젝트 위주의 지원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개별 작품의 성과로만 보일 뿐, 한국 다큐멘터리라는 ‘토양’을 풍족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열매의 과육만 맛보려고 인공비료를 잔뜩 뿌리면, 몇 년 동안은 풍성한 과실을 맛보겠지만 그 이후의 땅은 이전보다 오히려 황폐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결국 제작자들이 지원제도에 의존하지 않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제작자의 조건에 따라 오히려 지원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방향. 자립과 자생이라는 기본 줄기를 속에서 제작자의 삶이 나아질 수 방향으로 우리들의 고민을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토양을 풍성하게 할 방법은 없는 것인지. 민간지원제도 혹은 지원재단을 설립하여 장기적인 독립다큐멘터리를 지원하면서도 다큐멘터리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것도 하나의 방향이다. 이제부터라도 논의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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