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인문학을 외면하려는 현실을 보며
대학가가 학과 구조조정 문제로 시끄럽다. 교육부가 추진하는 대학구조개혁평가에 대학들은 저마다 경쟁력 없는 학과를 통폐합하거나 정원 감축에 돌입해 교수, 학생, 교직원 사이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대학구조개혁평가의 기준은 취업률이다. 즉 취업이 잘되는 학과는 더 강화되고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과는 퇴출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쪽은 문학, 역사, 철학 등의 인문학이다. 당장 취업에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정말 인문학이 취업에 필요하지 않는 걸까?
디지털 정보기술이 전 분야에 적용되는 오늘날 기업들은 취업 희망자에게 기술력 이상으로 상상력을 많이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상상력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바탕이 있어야 한다. 불을 피우려면 연료나 땔감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그 바탕이 다름 아닌 인문학적 지식과 정보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애플이나 구글 등 세계적인 대기업 CEO들의 성공담 등을 통해 이미 확인된 바이다. 다양한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상상력을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앞으로는 단순히 물건을 만들어 파는 수준의 장사로는 어렵다고 전망한다. 기업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거나 이기려면 인간의 본성까지 이해해 감동까지 전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인문학은 그 전략을 도모하는 발상의 베이스가 될 수 있다. 하물며 상상력이 중요한 애니메이션 같은 창작 분야에서는 오죽할까!
그러나 현재 우리의 창작물을 보면 깊이도 없이 멀리 뻗어나가지 못하고 그저 자극적이거나 갑론을박에만 매몰되어 있다. 좋은 그래픽 소프트웨어의 사용으로 누구나 캐리커처를 그릴 수 있고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컬러풀하고 화려한 장면을 수작업 때보다 훨씬 쉽게 구현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상상력은 소프트웨어가 채워줄 수 없다. 아무리 반짝거리게 광을 내도 함량이 부족한 상상력은 결국 사람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내수시장이 작아 오래 전부터 제작비 조달에 난항을 겪어온 우리 애니메이션으로서는 해외 판매를 위해서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하는 소재와 이야기가 절실하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작품을 만들려면 그만큼 여러 지역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문화, 역사, 종교, 풍습 등을 아는 것이 유리하다. 아랍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에 돼지고기를 먹는 장면은 금물이다. 이슬람 경란인 코란에 돼지가 부정하고 불결한 동물로 나오는 종교적 이유가 있어서다. 만약 모르고 이런 장면을 넣었다면 이슬람권 나라에 수출할 때 삭제되거나 수출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과거 국내에서 비슷한 유형의 실수는 흔했다. 단편적인 예지만, 영상 제작에서 인문학적 소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그동안 우리는 한국 애니메이션을 말할 때 기술적인 측면을 꾸준히 부각시켜왔다. 하지만 냉혹한 현주소는 ‘저렴한 가격에 빠르게 잘 만드는 하청기지’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좋은 팔과 다리는 있는 반면에 머리가 없는 형국이다. 이 또한 디지털 기술의 평준화로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나라들과 기술적 격차가 사라지고 있어 위기 중에 위기다.
때문에 머리를 만드는 일은 우리의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머리가 나오려면 상상력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상상력의 원천이 되는 인문학이 대학에서조차 외면 받는 상황에서 좋은 창작을 할 수 있는 머리의 탄생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안데르센의 아동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겨울왕국>, 유럽의 신화와 중세를 일본식 상상력으로 버무린 <진격의 거인>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상상력은 21세기 산업에서 필수요건이다. 그러므로 상상력의 원천인 인문학을 외면해서는 절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