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서울아트시네마, 서울극장으로 이사 후
언제부터 관객으로서 우리 극장에 드나들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있던 시절, 부천영화제에서 몇 편을 보고 반했던 쇼브라더스의 무협 영화들을 다시 봤고, 무엇보다도 버스터 키튼의 영화들을 보며 열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2003년부터 우리 극장을 다녔다는 얘기가 된다. 2005년 낙원동으로 이사 온 후엔 한동안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칼럼에서 밝혔듯 자크 드미의 <로슈포르의 숙녀들>을 보고 나서야 낙원동 극장에 비로소 마음을 붙였다. 번역 후원회원이 된 게 그즈음이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어느덧 만 4년을 넘기고 5년 차 이곳에서 일하는 정식 스태프가 되어 있다.
낙원동을 떠나 서울극장으로 이사하기로 결정됐을 때, 솔직히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재정적 어려움과 위기를 이미 여러 차례 가까스로 넘겼지만 사정은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이사회를 통해 극장 이전이 결정된 건, 이미 심각한 회의들이 여러 차례 열리고 내부의 진통과 마음 상하는 일들이 연이어 있었던 후였다. 그런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된 방법이 바로 이사였다. 이사 자체가 워낙 큰일이기도 하거니와, 이사를 한다고 과연 사정이 좋아질 수 있을까, 기대보다는 걱정과 우려 때문에 매일 한숨을 쉬었다.

4월 15일 이사를 했으니 이곳으로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가까워져 온다. 그동안 장 으스타슈와 모리스 피알라의 영화들을 ‘비타협’이라는 표제를 내세워 상영했다. 우리의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제목. 작년 늦여름부터 준비해온 오슨 웰스 탄생 100주년 회고전도 치렀다. 전 세계적으로도 오슨 웰스의 생일에 맞추어 올해 5월에 회고전을 치른 단체나 시네마테크가 많지 않다고 자랑에 자랑을 거듭했었다. 지금은 이탈리아문화원과 함께 비스콘티의 영화들을, 그리고 조금 더 주목이 필요한 한국 독립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다. 이제 곧 내가 그렇게 열광하며 이곳에 단단히 홀리는 계기가 됐던 버스터 키튼의 영화들을 상영한다. 올해 여름도 시네바캉스를 개최할 예정이며(이미 준비에 들어갔다), 하반기 프로그램들 역시 대략 윤곽이 나온 상태다.
일단 이사를 와서 좋은 점은 사무실이 넓어졌고 10년 치 짐과 서류들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들도 많아졌다는 점이다. 또한 우리만의 라운지가 생겨 관객들이 조용히 영화 시작을 기다리며 각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제는 술에 취한 채 극장에 입장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저지당하자 사무실로 뛰어들어와 쌍욕을 쏟아붓는 걸 당하거나, 굳이 화장실 밖에서 바지 지퍼를 올리는 할아버지들과 눈을 마주치곤 난처하게 고개를 돌릴 일도 없다. 다른 상영관의 관객들이 우리 관객들을 막 대하는 모습을 볼 필요도 없다. 벽에 가득 꽂힌 책들 때문인지, 관객들은 동행과 웃고 떠들기보다 책을 읽거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라니!

라운지
무엇보다도 극장 안 상영/관람 환경이 좋아진 것이 가장 기쁘다. 이사와 단장과 기계 세팅을 마치고 처음으로 상영을 하던 날, 일부러 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오슨 웰스 회고전 때도 몇 편의 영화를 챙겨 보았다. 낙원동에서의 관람이 나 또한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면, 이사 온 후 아직까지는 ‘극장 관계자로서’ 상영 환경을 체크하는 것에 가깝다. 나뿐 아니라 동료들도 틈나는 대로 상영관에 앉아 영화를 보며 ‘체크’하곤 한다. 의자도 편하고 온전히 영화에 집중할 수 있고 화질도 스크린도 원래의 필름 상태 이상으로 나빠지는 일도 없고, 앞좌석에서 스크린을 가리는 일도 없고, 이제야 비로소 영화를 영화답게 본다는 기분이다. 좌석 수는 줄어들었지만 스크린과의 거리는 조금 더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스크린이 더 크게 느껴진다. 더 이상 영화관 바깥의 공연장이나 다른 상영관에서 틈입해 오던 소음과 진동에 시달릴 일도 없다.
이전보다 설비가 훨씬 좋아지긴 했지만, 영사실에 새로이 들인 기계들에는 역시 적응과 길들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기계에 둔한 나는 잘 모르겠지만, 영사팀은 계속해서 기계의 정밀한 세팅을 하느라 요즘도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 게다가 사무실과 상영관이 떨어진 만큼 무전기 시스템이 도입됐다. 혹시라도 돌발적인 사고가 있을까 봐, 그런 때의 대응은 또 이전과 달라야 하기에, 운영팀은 계속 긴장의 연속이다. 내 경우는 일요일 당직 근무에 걸리면 그 전날부터 긴장하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곤 한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비로소 시네마테크에 대해 내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꿈을, 욕심을, 조금씩 시도해볼 용기가 난다. 다행히 서울시에서도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새로운 상영공간
이사를 온 후 종종 매표수에서 각 회차별 관객수를 확인하곤 한다. 나는 사실, 새로 옮긴 곳에 익숙해지는 기간 동안 관객 수가 대폭 줄 수도 있다고 각오에 각오를 거듭하고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계속 영화를 상영하고 더 열심히 홍보하는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극장에서 고전을 보는 경험을,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생전의 모습이 담기거나 그런 사람들이 만든 영화를 바로 지금 이곳의 극장에서 보는 경험이 왜 특별한지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우리 같은 극장은 영화를 상영하는 이와 보는 이가 크게 구분되지 않는 곳이다. 나를 포함해 내 동료들은 모두 이곳에서 일하기 전 이곳의 관객이었다. 관객들의 특별한 애정과 지속적인 관심 없이 절대로 유지가 될 수 없으며 의미를 찾을 수도 없는 곳, 그게 우리 극장이다.
다행히 관객 수는 낙원동 시절보다 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주 조금 늘어난 것도 같다. 비록 아직도 매진작이 나오진 않았지만, 작년부터 야심 차게 준비했던 오슨 웰스 회고전에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의 관객이 오긴 했지만… 그럼에도, 오슨 웰스 영화를 보기 위해 교복을 입은 채 극장에 찾아온 관객 몇과 마주친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오슨 웰스가 <시민 케인>을 내놓은 25살을 훨씬 넘기고서야 처음으로 <시민 케인>을, 그것도 비디오로 보았다. 10대 때 <시민 케인>을 극장에서 35mm 필름으로 접한 그 관객들은 이 영화를 과연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꼈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그들과 이곳에서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영화가 주는 특별한 경험들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