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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애니메이션, 아는 만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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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자 SF영화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은 살아생전에 “쓰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영화로 만들어 질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말인즉슨, 인간이 상상하며 사유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무엇이든 예술 창작의 모티브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상상력은 어떻게 발현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과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인식의 구조 안에서 한계를 두고 작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출발점은 바로 앎이 형성되는 인식의 테두리 안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즉, 아는 만큼 상상력의 범주도 확장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러시아의 연출가 스타니 슬라브스키에 의해 고안된 창작의 발상법 ‘매직 이프(Magic If)’는 말 그대로 ‘만약에~’라는 상황의 가정에서 출발하여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스파이더맨>은 ‘만약에 내가 거미에게 물려 어마어마한 초능력을 갖게 된다면’이라는 흥미로운 가정에서 출발한 영화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만약에 내가 토끼굴에 떨어져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다면’이라는 동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이러한 발상의 시작은 비단 영화뿐 아니라 게임, 소설, 애니메이션 등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모든 이야기 예술의 창작에 적용될 수 있다. 여기서 ‘만약에~’라는 극적인 발상으로부터 시작되는 전혀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펼쳐지는 인공적이거나 허구적인 세계를 창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초험적 혹은 선험적 지식이 많이 쌓일수록 유리하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확장은 예술의 범주를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으로 진화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개봉한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개인적 관심사이기도 한 심리학과 조우하여 또 다른 상상력의 세계를 작동시킨 작품이라 볼 수 있다. 픽사의 작품들은 일단 믿고 보는 편이지만, 이번 작품은 인간 내면의 무의식과 외면의 의식 사이를 다루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꽤나 나의 흥미를 자극했다. 

‘만약에 내가 11세 소녀 라일리의 무의식 속 감정들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인사이드 아웃>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의 메카니즘을 무미건조한 이론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작품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인 피트 닥터가 인간의 무의식적 감정을 시각적 상상력으로 그려내기 위한 노력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폴 에크만(Paul Ekman) 박사를 찾아갔던 5년 전 그때부터 시작된다. 수십 년간 인간의 감정과 정서 상태와의 관련성을 연구해 온 이 분야 최고의 석학에게 <인사이드 아웃>에서 다루고자 했던 인간 무의식의 심연이야말로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고 한다. 피트 닥터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과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감독 스스로도 3년 이상을 심리학 공부에 매진했을 정도로 <인사이드 아웃>의 작품 곳곳에는 감독의 정신분석학적 통찰로 번득인다. 

그는 감정이 어떻게 의식의 흐름을 통제하고,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11살짜리 소녀 라일리와 같이 이맘때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겪는 감정적 변화가 무엇인지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가장 일반적인 인간의 감정들은 기쁨(즐거움), 슬픔, 공포, 분노, 혐오감 그리고 놀라움이다. 작품 속에서는 놀라움을 제외하고 다섯 가지 감정들이 모두 등장하게 되는데, ‘조이(기쁨)’가 리더가 되어 나머지 감정들을 통제하며 라일리의 외적 인격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라일리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베프와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그리고 부모와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그녀의 내면세계에서는 재미있는 일들이 하나 둘씩 벌어지게 된다. 늘 즐겁고 유쾌했던 소녀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리적 동요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감정들을 외적인격으로 표출시켜 라일리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물론 종국에는 심리적 갈등이 봉합되고 라일리는 한층 더 성장하게 된다.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인위적으로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감정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이면에 살짝 감춰놓고서 말이다. 감독은 그냥 모르고 지나칠 법한 이러한 섬세한 설정들을 심리학적 탐색과 성찰을 통해 소녀의 성장담으로 영리하게 버무려 놓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어떤 애니메이션보다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심리학 전공자나 전문가들의 반응이 열광적일 수밖에 없다. 

유홍준 교수가 자신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책머리에 쓰면서 널리 알려진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이 말이 어쩌면 피트 닥터가 <인사이드 아웃>을 통해 보여준 상상력과 인문적 통찰의 만남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치고 있는 애니메이션과 학생들로부터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어떻게 해야 좋은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그럼 난 늘 이런 말을 건넨다. 장르에 구애받지 말고 많이 보고, 읽어보라고. 뻔하고 식상한 답변이겠지만 그래도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최고의 진리이다. 왜? 예술가는 오롯이 자신이 보고 아는 만큼의 수사적 표현의 세계를 창조하기 마련이고, 또 이를 바라보는 감상자 역시 자신이 보고 듣고 아는 만큼의 세계만을 탐닉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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