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파리에 도착한 <매혹의 서울>
약간은 더위의 기미가 남아 있던 10월 중순의 서울,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12시간 지나 도착한 파리는 단번에 가을의 핵심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스며드는 서늘한 기운과 흩날리는 나무이파리에 먼 곳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파리의 도심으로 향한다. 한 여름 더위 속 씨름하며 준비했던 한국영화특별전의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파리의 중심부 포럼 데 알Forum des Halles에서는 매일 한국 영화가 상영 중이다. ‘한-불 상호 교류의 해 130주년’을 맞아 영화부문에서 첫 번째로 진행되는 행사가 바로 ‘매혹의 서울’. 포럼 데 알의 지하에 위치한 예술영화전용극장 ‘포럼 데 지마주Forum des Images’에서 9월 15일부터 11월 1일까지 한달 반에 걸쳐 76편의 한국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한국 영화 포스터, 영화를 보기 위해 줄지은 사람들, 파리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마주하게 된 이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문득문득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의 20대에는 프랑스 영화가 있었다. <줄 앤 짐>을 보면서 자유를 꿈꿨고, 감기는 눈을 비비면서라도 <네 멋대로 해라>를 끝까지 보아냈다. 그렇게 그 영화들은 내 청춘의 자산이 되었고, 영화를 공부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나 이제 반대로 한국영화를 관람하는 파리 관객들의 진지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포럼 데 지마주 관객
세계화 혹은 전지구화라는 말은 거듭되어 이제 진부해지고, 파리의 중년 여성들도 ‘샤이니’를 아는 현재, 파리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수용하는 방식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우리 관객들이 웃었던 즈음에서 웃었고, 비슷하게 숨을 죽였고, 우리나라 영화제에서도 들었음직한 질문을 꺼내놓았다. 역시나 우리나라의 흥행작이었던 <괴물> <국제시장>에 많은 관객이 몰렸고, <휴일> <청춘쌍곡선>과 같은 고전영화에는 희끗희끗한 머리의 관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산일기> 같은 최근 영화에는 젊은 관객층의 비율이 한결 높아 보였다. 다수의 영화에서 “일상적 폭력의 수위가 높다”,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며 최근 한국영화의 표현적 특징을 짚어내기도 했다.
게스트로 초청된 배우 예지원 씨는 <귀여워> <생활의 발견> 상영에 참여해 관객들과 성심 성의껏 대화를 풀어나갔고, 샹송과 아리랑, 전통무용을 선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유머코드로 활용되는 그녀의 샹송은 프랑스관객에게는 자국문화에 대한 관심이었고, 한국의 대표 배우이자 예술인으로서 관객들과 정중한 시간을 만들었다. 상영이 끝나고 몇몇 프랑스 관객은 한국어로 질문을 하며 한국대중문화에 대한 오랜 공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예지원
하지만 여전히 한국이라는 비서구를 경이롭고 낯선 타자의 위치에 놓으려는 그림자도 엿보였다. 영화제 기간 동안 많은 관심을 받았던 영화는 <마돈나> <영도다리>였다. 여성 육체에 대한 폭력을 통해 한국을 과잉된 폭력으로 물들어 있는 현실로 재현하는 이 영화들이 우리에게 관습의 정서적 한계를 묻는 독립영화적 감수성으로 다가온다면, 프랑스 관객과 평단은 이를 한국영화를 이해하는 진입의 문으로 여기는 듯했다. 과거 <씨받이>가 그랬던 것처럼, 여성에 대해 암묵적으로 용인된 성폭력이 비서구의 정체성을 이루고, 그 표현적 수위에서 한국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경계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해이든, 오해이든 한 지역에 대한 깊은 관심은 인상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80편에 가까운 영화를 모아 상영하고 묻고 토론했다. 이 도시특별전은 포럼 데 지마주의 전통과도 관계가 깊은 것이었는데, 포럼 데 지마주가 위치한 포럼 데 알은 파리 1구로 오랜 중심지이자 흥망성쇠를 거쳐온 곳이었다. 서울로 치면 종로쯤 되는 이 지역은 활발한 시장이다가 한 때는 아무 것도 없는 공터이다가 현재는 거대한 규모의 리모델링중이었다. 포럼 데 지마주는 포럼 데 알에 대한 영상자료를 모으며 아카이브로 성장했고, 점점 범위를 넓혀 파리에 대한 자료는 어떤 차별 없이 모으고, 외국인 저널리스트가 관광객의 눈으로 기록한 영상까지 회수하면서 차근차근 자료를 축적해왔다. 그리고 이제 그 눈을 다른 도시로 돌리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역사에 대한 충실한 관심에서 비롯되는 타자에 대한 관심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행지에서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 낯선 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는 이중의 여행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멀리 날아간 파리에서 우리 영화를 보는 것, 그리고 우리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어딘가 도돌이표 같은 여정이었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세계를 보는 혹은 친숙한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보는 시선의 여행을 끝마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