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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지옥화

신상옥, 1958

[한국영화걸작선]지옥화 대표 이미지

예술가는 종종 남다른 전기적 사실로 자신의 예술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반 고흐처럼 자살하고, 슈베르트처럼 병사하고, 파졸리니처럼 타살되고···. 그 명단은 제법 길게 이어질 수 있다. 잔인한 운명에 내몰린 이들의 공통점은 통념에 역류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 영화계에서 그런 특별한 전기적 사실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이 신상옥이다. 냉전시대에 남북한을 통과한 사실 하나만 기억하면 될 듯하다. 납북(?), 탈북, 미국망명, 귀국으로 이어지는 행보는 자기 의지 너머의 운명의 명령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신상옥 감독에의 관심은 우선 이런 전기적 사실의 특별함에서 시작됐다. 통념을 무시하는, 혹은 비웃고 넘어서려는 듯한 태도와 행동에서 보이는 이탈과 도전의 비장함이 그의 영화에는 새겨져 있다. 그런 태도를 한 눈에 알게 하는 작품이 <지옥화>(1958)이다. 동아시아의 지역성에 매몰되지 않고, 세계영화의 흐름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열정이 되어 관객까지 감염시킬 정도다. 사실 당시의 많은 한국영화들이 인과율도 제대로 맞추지 못할 때였는데, <지옥화>는 단숨에 동시대의 표현 양식을 갖추고 있다.

이 영화를 볼 때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이 떠오른다. 일본영화의 전통에 서양영화의 역동성을 끌어들인 획기적인 시도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지옥화>는 갱스터 장르와 필름 누아르, 그리고 멜로드라마의 특성까지 버무려 놓았다. 한탕을 노려 성공하려는 시골 출신 건달 영식(김학)이 시커먼 뻘밭에서 최후를 맞이하고(갱스터), 그의 운명을 시궁창에 빠뜨린 팜므 파탈 소냐(최은희)의 치명적인 매혹이 있고(필름 누아르), 그리고 형 영식의 탈선을 막고 그를 가족의 품으로 데려가려는 동생 동식(조해원)의 애절함이 있다(멜로드라마). 

신상옥 감독은 동경예술학교(동경예대의 전신)에서 미술을 전공한 탓인지, 미장센의 아름다움과 남다름을 담아내는 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다. 몇 개의 뛰어난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의 미덕은 오래 남을 것 같다. 먼저 할리우드의 필름 누아르를 보는 듯한 미군부대 클럽의 춤 장면이 있다. 기지촌의 소위 양공주들과 미군들이 한데 엉켜 있고, 무대 위에서는 무희들이 선정적인 춤을 추고 있다. 나이트클럽 같은 이런 장면은 범죄와 욕망이 뒤엉키는 누아르 특유의 클리셰인데, 한국영화에서 퇴폐적인 춤동작을 이렇게 어른스럽게 표현한 경우는 지금도 대단히 드물다. 그리고 뭐랄까, 이 장면은 앙드레 바쟁이 말하는 리얼리즘의 정수처럼 보인다. 영화의 허구적 재현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그대로 제시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로셀리니가 이 장면을 본다면, 자신과 미학적 입장을 공유한 동양의 한 감독에게 반가움을 느낄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갱스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추적 장면의 묘사도 압권이다. 기차, 트럭, 그리고 지프들이 함께 달리고, 이를 트래킹으로 찍은 모습은 서양영화의 형식적 완성도에 뒤지지 않으려는 청년 신상옥(당시 32살)의 안간힘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 부분이 특히 <라쇼몽>과 비교된다. 도입부에서 나무꾼이 산을 오를 때의 역동적인 트래킹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종결부도 갱스터 장르의 전형을 이용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문법에 따르면 사회의 제도를 무시한 갱스터들은 결국 비참한 죽음으로 처벌 받는다. 그래서 밤에 비오는 더러운 뒷골목에서 갱스터 주인공이 개처럼 죽는 게 윌리엄 웰먼의 <공공의 적>(1931) 이후 하나의 관습이 됐다. <지옥화>는 갱스터의 종말을 뻘밭에서 진행한다. 시커먼 뻘이 얼굴을 뒤덮고 온몸을 더럽힐 때, 처벌로서의 죽음의 순간이 함께 오는 것은 '지옥'을 생생하게 현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뻘밭에서의 갱스터 영식과 팜므 파탈 소냐의 최후,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든 동생 동식과의 주먹다짐 등은 우연스럽게도 2년 후에 공개된 루키노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을 예견케 한다. 팜므파탈로 인한 형제살해의 위협과 근친상간이라는 멜로드라마적 테마까지, 두 영화는 유사점이 많고, 그래서 종결부는 더 없이 풍부한 독해의 가능성까지 열어놓았다. 

<지옥화>는 지역의 한계를 넘어 세계와 경쟁하려했던 한 열혈청년의 도전의 결과이다. 그 열정이 얼마나 순수한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옥화>는 점점 더 사랑 받고, 평가 받는 작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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